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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나라2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2

by ZAMBY


화요일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점심메뉴가 화요일은 타코, 라서.

Tuesday Taco!

아이들은 미국에서 타코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타코에게 뭔가 맞지 않는 향이 났던 거 같다.

가끔 타코를 감싸는 토르티야에서 쿰쿰한 냄새가 난다. 발효 냄새인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한국에서 멕시칸 레스토랑을 열심히 찾아다니던 한국인인데

정작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 이곳에서 먹는 타코나 브리또는 한국에서의 내 경험과 좀 괴리가 있다.

그래서,

화요일은 도시락을 싼다.

어떤 날에는 유부초밥을

냉장고에 운 좋게도 시금치가 있으면 김밥을

H마트에 간지 오래되어 코리안 식재료가 없으면 계란말이와 냉동새우튀김. 같은 것들을 도시락에 담는다.

아이들이 유부초밥이나 김밥을 싸간 날에는 항상 스시, 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 이건 한국의 김밥이야. 초밥이야. 설명을 한다.


그런데 사실 유부초밥은 일본음식이 맞다.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유부초밥의 기원을 알 수 있는 기록으로는 1853년경에 기타가와 모리사다(喜田川守貞)가 에도 시대 후기 에도(도쿄), 교토, 오사카 지역 풍속과 사물들을 보고 들은 뒤 편찬한 《수정만고(守貞謾稿)》에 쓰여 있는데 '에도 지방에서 유부의 한쪽 끝을 잘라내고 속에 잘게 썬 버섯, 박고지 등을 밥과 함께 섞어 넣어 만든 초밥을 팔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것이 유부초밥의 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어로 이나리즈시? 이나리스시? 로 불린다. 이나리는 곡식을 상징하는 신.

일본 유부는 달달한 간장맛인데

H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한국식 유부초밥은 새콤한 맛이 강하다.

우리 아이들은 세모난 모양의 한국식 유부초밥을 좋아한다.


헌데 김밥은 상황이 좀 다르다.

적극적으로 한국의 전통음식임을 설명해야 한다.

김밥은 '엄연히' 씨에 따르면 우리 음식이다.

20세기초부터 시장통에서 김밥이 등장했고

전후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단단히 말아먹는 김밥의 형태가 자리를 잡아

야회활동에 도시락 음식으로 활용되었다.

결론적으로,

김밥과 스시는 그 유래부터 만드는 과정, 들어가는 재료들, 그것을 누렸던 사람들의 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이하고 그래서 내 아이들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준엄하게 이것은 스시가 아니라 김밥이야.라고 설명한다.


나는 김밥과 떡볶이를 소울푸드로 삼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아줌마로서 반드시

<김밥&떡볶이의 세계화>에 이바지하고 싶다.

진지한데 조금 웃긴다.

그런데 웃으면 안 된다.

서민음식이라서.

9살의 나조차도 코 묻은 돈으로 쉽게 사 먹을 수 있던 국민학교 앞 분식집 레시피라서.

추운 겨울 시장어귀 어디에나 멈추어 서서 집어 먹을 수 있는 문턱 낮은 너여서.

아무렇게나 일회용 박스에 담아 문 앞에 던져 놓을 수 있는 녀석이라.

그래서 나오는 웃음이라면,

나는 이 가벼운 웃음을 거두고 좀 더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내가 외로운 고시원방에서 소중하게 은박지를 벗겨 한 알 한 알 삼키던 너는

아무렇게 만들어진 듯 천 원짜리 한 장과 교환되었지만

그 안에 든 너의 속살은

희고 고운 밥알. 달고 새콤한 무. 잘게 채 썬 우엉과 당근. 포근하게 부푼 노란 계란. 짭조름하게 입안을 감싸는 쫄깃한 햄. 그 좋은 재료들을 곱게 감싸 안은 얇고 튼튼한 김. 그리고 5평 남짓 방안에 퍼지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기에.

김밥은 세계 어느 레스토랑에 내어놓아도 영양으로 보나 미학적으로 보나 그 레시피의 복잡성으로 보나 부족한 구석이 없는 요리다.


우리 조상들이 너무나 현명하여 동네 아낙이 길에서도 쉬 말아 팔아버리는 바람에 쉬운 음식으로 여기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만들어 보면 볼수록, 어렵고, 난해하며, 아름답고, 건강하다.

밥을 지을 때면 하얀 맵쌀과 찹쌀을 3:1로 섞고 고슬하게 짓는다. 눅진해도 안되고, 너무 까슬거려도 안된다.

적당히 근기가 있어야 모험심 강한 밥알이 굴러나오지 않으니 다시마를 밥물 위에 띄우기도 한다.

지은 밥은 한 김 식혀 참기름과 깨소금, 약간의 식초, 매실액, 소금을 배합하여 보슬보슬하게 뒤섞는다.

김밥을 만들 때, 요리사는 쉬어가는 순간이 없다.

밥을 지으면서 속재료를 준비한다.

우엉과 당근을 채 썰고

간장과 매실액을 섞은 물에 우엉을 조린다.

우엉향이 주방에 가득 퍼지면 불을 끄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려 식힌다.

당근은 기름에 볶아야 비타민a 흡수가 잘된다 하니 소금을 뿌려 단단한 몸이 물러지도록 기름에 달달 볶는다.

계란은 김밥에 부드럽고 포근한 맛을 담당하니 약한 불에 두텁게 부쳐낸다. 가늘게 썰어 여러 줄 포개어 넣으면 그 폭닥한 맛이 입안을 즐겁게 한다.

시금치는 소금물에 데쳐 식히고 소금과 마늘 조금,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려 무친다.

나는 오이를 좋아해 오이로 대체하거나 부추가 맛난 철에는 부추를, 봄에는 미나리무침을 넣기도 한다.

햄은 물에 데쳐 기름기와 짠 기운을 빼고 살짝 보들 하게 만들어 계란부친 팬의 잔열로 노릇하게 익힌다.

단무지는 시장 단무지가 제일로 맛나기에 굵직하게 한 덩이사서 길쭉하게 썰어낸다. (미국에는 H마트)

바삭하고 단단하게 구워진 김을 펼치고

보슬한 밥알을 골고루 편 후

차곡차곡 재료를 쌓아 넣고

대나무 김말이로 꾹꾹 눌러 둥글게 말아낸다.

김밥을 만 김 끝이 떨어지지 않도록 아래를 향하게 하여 참기름을 뿌리고 차곡차곡 쌓는다.


길쭉하고 탱글한 김밥 한 줄을 집어, 잘 벼려진 칼로 성큼성큼 썰어, 접시에 내려놓으면

오색빛깔 내용물을 하얀 몸이 보드랍게 끌어안고, 단단하고 빛나는 김이 그 하얀 몸을 대범하게 감싼다.

그 모양새가 너무나 조화롭고 또 아름다워

수북이 쌓아 올린 김밥 무더기를 바라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온다.

잘게 빻은 참깨를 솔솔 뿌려, 밥상 위에 올리면

어른이고 아이고 남자고 여자고

엄지와 검지를 째깍거리며 집어간다.

그 먹는 모양이 또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더욱 아름답다.

꼬다리에는 밥알은 적고 먹음직한 재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으니

탄수화물을 절제하려는(?) 나는 꼬다리를 먹는다.

키토김밥은 바로 요 꼬다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언제나 자랑스러운 우리 음식.


LVMH 북미지역 총괄 회장을 지낸 폴린 브라운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얼마 전에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음식을 50점으로 평가했다. 대중문화나 뷰티, 패션 분야는 90점인데.

그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 음식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나 같은 보통사람도 어디서나 즐길 수 있고 집에서 만들 수 있기에

더더욱 우리 음식은 널리 알려져야 한다.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내가 파스타의 종류를 다섯 가지 이상 알고 있듯이.

지중해 언저리 어느 마을에 사는 주부도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은 김밥 먹자!' 할 수 있도록.



https://v.daum.net/v/20241115050059717

참고.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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