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 적응하기 7
이혼문화는 적절한 제목이 아닌 것 같지만.
자극적인 제목이 낚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여 붙여보았다.
결혼문화. 배우자 관계. 가족 개념. 사랑의 관념. 여러가지 제목을 떠올려보지만
모든 것이 짬뽕인 사회결과물이 '이혼'이라는 제도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 와서 아이들의 학부모로 성실히 지내다보면
여러 가정을 만나게 된다.
엄마와 아빠, 형제. 남매. 자매가 어우러진 분주한 가정
싱글 대디 혹은 싱글 맘이 각자의 사유로 아이들을 홀로 양육하는 가정
남편의 커밍아웃으로 급하게 새 남자친구를 아이의 생파에 초대한 가정
아빠만 둘인 가정
아이들에게 언제나 친절한 노부부의 가정
최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와 골든리트리버의 가정
아이 없이 젊은 부부와 멍멍이 혹은 야옹이가 살아가는 가정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가족의 모습들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소통하는 문화나 분위기가 달라도
가족의 형태는 특별히 창의적이거나 기이하지 않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각자가 아닌 가족의 단위로 만나면
나는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무리에 끼여 있을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부부들은 같은 민족(?) 끼리만 만나진 않는다는 정도?
워낙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 가정을 이룬다는것.
미국의 아빠들은 대체로 아이들의 육아나 가사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인 듯 하다.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학교 행사나 방과 후 체육수업(축구나 짐내스틱 같은)에 가보면 3,40%는 아빠들이 와있다.
점심 도시락 담당자가 아빠인 경우도 흔해서
종종 우리집 아이들의 도시락이 화려한(?) 비주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 아이들의 단골 점심 메뉴는 피넛 버터 앤 젤리 인데
우리나라의 삼각김밥? 같은 존재다.
식빵에 땅콩 버터와 딸기잼을 발라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식이다.
이런 도시락에는 비주얼이랄게 없다.
아이들에게도 상당히 스윗한 미국 아빠들이지만
이혼 신청은 주로 여성들이 한다고 했다.
저 정도면 괜찮은거 아닐까. 싶어 보이지만 아내에게 거부당한(?) 싱글 대디들이 내 주변에 제법 보인다. 그들은 때로 미국 여성들의 무책임함에 대해 토로하지만 그건 여자쪽 이야기를 들어봐야하는 일이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함께 플로리다의 열대과일을 공동구매하고 지역 축제에 아이들과 함께 가기도하면서
미국도 사람사는 건 다 같구나 싶다.
미국의 남자들도 역시 아내의 인정과 지지를 원하고
아내들은 남편의 다정하고 세심한 배려를 바라는 구나.
잘 차려진 식사와 정돈된 방에서 살고 싶어하고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배우자를 원하는 구나.
알고보면 참 간단하고 단순한 요구들.
알면서도 참 어렵고 난해한 바람들.
친구가 되어버린 화상영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의 결혼문화에 대해 그녀가 물었다.
자신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쇼프로그램은 '나는 솔로'인데
거기서 사람들이 배우자 혹은 파트너를 선택할때 너무나 많은 요소들을 고려하는 걸 보고 놀랐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너희는 어떤데? 라고 물었더니
3살짜리 손자를 가진 50대 중반의 그녀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only physical attractive.
하하.
나는 당황해서 줄곳 농담으로 이후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저 말의 이면에는 결국 남녀간의 사랑만을 본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을거라 믿는다.
(내일 만나면 다시 물어봐야지)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나온 사랑 이외의 요소들도 대부분 '사랑'의 변주 들이었다.
정서적 안정. 삶의 가치관. 생활 양식 등등
이들의 높은 이혼율이 사랑에 대한 성급한 정의가 문제 였는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 사랑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호르몬의 노예이기 때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것저것 다 보고 결혼하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이혼률을 갱신하는 걸 보면.
결혼을 오래 유지하는데 필요한 절대 요소가 있긴 한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꼭 그래야하는지도.
옆집에 본으로 삼고 싶은 동갑내기 노부부가 살고있다.
83세의 두 분은 10살이 넘은 골든리트리버와 각자의 공간에서 하루를 보낸다.
할머니가 나와 차를 마시면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어느곳에서 기침을 하거나 부스럭 소리를 낸다.
아이들이 할머니와 부엌에서 쿠키를 만들고 있을때 할아버지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고 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위해 쿠키를 굽고. 저녁식사 후에 딱 한개만 먹을 수 있게 허락한다.
그리고 노을을 질때 두사람은 개와 함께 산책을 한다.
개도 늙고 주인도 늙어서 걸음은 여유롭고 느긋하기만 하다.
두 사람의 관대함과 따뜻함을 보고있자면 나도 꼭 커서(?)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싶고
저 할머니가 저렇게 이쁜건 다 할아버지가 잘해줘서 그런거야 싶기도 하다.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업적을 치하하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는 시고 떫은 맛이 더라도
내 입에는 잘 맞는 포도라면 그게 바로 신의 선물 아닌가.
나의 영어실력이 속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들어줄만한 수준이 못되어서
미국인들의 부부의 세계에 대해 잘 모른다.
심지어 한국 부부사이도.
나와 남편의 사이 또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시각으로 보이니까.
피지컬 어피어런스만 보고 결혼한다는 미국 부부나
백만가지 조건을 따져서 결혼하는 한국 부부나
결혼 생활이 만만치 않은 건 매한가지인걸보면
애시당초 결혼은 할 때보다 한 후가 더 중요한 제도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일이 그러하듯 운도 작용하는 것 같다.
비혼을 선언하는 한국의 젊은 이들이
운과 노력을 빌어야할 분야가
결혼말고도 너무도 많아서
그걸 피하는가 싶다.
남편이 어느날
"나는 여자로 살기로했어." 라고 말하는 날이 나에게는 오지 않기를 빌면서
내 보기에 가장 좋은 옆집 노부부에게 줄 레몬쿠키를 굽는다.
오븐에서 향긋한 레몬향이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