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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운전 면허란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4

by ZAMBY


한국에서 한 10년 정도 장롱면허를 유지했다.

한국에는 장롱면허 소지자가 1,200만 명이라는 통계를 챗지피티가 알려주었다.

장롱면허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1년 이상 운전을 안 한 운전자를 카운트하였다고 한다.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가 '23년 기준 3,400만명 정도라하니 그중 30%가 장롱면허라면 1,000만명 정도가

면허는 가지고 있지만 운전을 하지않는 인구라는 말이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운전의 필요성보다는 불편함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고, 비싼 주차요금과 자동차 유지비용, 그리고 복잡한 도로사정등으로 인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큰 불편 없이 버스, 지하철, 택시를 이용하며 일상을 영위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도 나는 아기띠를 맨 채 큼지막한 기저귀가방을 둘러매고 택시를 불렀다.

병원에 갈 때도, 조리원 친구들과 카페에 가거나 문화센터에 갈 때도 나는 택시나 버스를 탔다.

낮시간에 어린아이와 대중교통을 타면 어르신들이 늘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아이도 즐거워(?)했다. 버스 한두 정류장 거리는 아기띠를 매거나 유모차를 밀면서 잘 걸어 다녔다.

나의 건강비결은 대중교통 이용이라 믿으며 행복한 장롱면허 생활을 유지했다.


아이가 자라서 직장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 우리는 출근 동반자가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을 시작했다.

남편이 자청한 도로주행 교육은 듣던 대로 헬.이었다.

결국에, 남편이 조수석에 타고 있는 차를 어느 공터에 버리고

혼자 울며불며 걸어서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나의 도로주행 선생님은 시아버지로 교체되었다.

그렇게 나는 성공적(?)으로 뒷좌석 카시트에 만 2세 여자아이를 태우고 자차로 출근하는 도시여자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운전은 마치 게임과 같았다.

전에 어느 책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간이 농경사회로 진화하면서 남성들의 야성적 본능을 억압하게 되었는데

현대사회에 이르러 유일하게 남성들이 수렵인으로 본능을 발휘하는 영역이 운전, 이라는 것이었다.

원거리에 있는 사물을 인지하고 근거리의 장애물을 민첩하게 피하며 표지를 인식하여 길를 찾는 것.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가장 수렵생활과 유사하다는 것.

뭐.

일견 타당하다.

그리고 나는 수렵인의 자질이 무척 부족한 인간으로

운전은 나에게 참으로 힘들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래도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것은 운전 자신감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일단 길을 알면 자신감이 생기고 각종 변수들에 대해서도 제법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운전경력은 장롱 10년 + 무사고 10년 토털 20년을 채웠다.

그리고 나는 미국에 왔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

포드와 테슬라의 나라.

특히 내가 사는 곳은 도시가 아니기에

차가 없으면 슈퍼마켓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미국으로 도착한 즉시 그 유명한 DMV로 갔다.

한국의 운전면허를 인정해 주는 관대한 주들도 있는데

나는 왜 하필 초보운전자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곳에 온 것인가.

한국에서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나무늘보를 보며 큰 감흥이 없었던 나는

미국에 와서 그 장면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DMV가 무엇이냐.

나무위키가 알려준다.

Department of Motor Vehicles

미국 주정부의 차량 관리국. 한국의 도로교통공단과 차량등록사업소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주로 주 공안국이나 교통국 산하에 있다. 미국의 공공기관들은 대체적으로 질 나쁜 서비스로 악명 높지만, DMV는 그중에서도 USPS와 같이 가장 나쁜 서비스로 유명한 미국 공공기관 중 한 곳이다. 이런 악명 때문에 미국의 주요 매체에서도 부정적으로 그려지기 일쑤인데, 배트맨을 죽여버려 삶의 의미를 잃은 조커가 범죄계에서 은퇴하고 취직하기도 하고 주토피아의 플래시처럼 나무늘보에 비유될 극단적으로 느린 일처리가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슨 가족의 셀마와 패티 자매처럼 성격이 파탄난 사람들이 일하는 것으로 풍자된다. 폴아웃 76의 찰스턴 dmv는 자동화되었는데도 로봇들이 무기력한 공무원 목소리를 내면서 대충 일처리를 한다.

미국의 운전면허 및 신분증(Identification card)을 발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방문할 일이 있으니 시민들 입장에서는 미쳐버릴 노릇.

성인이 된 미국 시민권자들이 거의 꼭 몇 년에 한 번씩은 방문하는 흔치 않은 곳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부 주에서는 면허증 관련 업무를 볼 때 투표를 위한 유권자 등록을 함께 하기도 한다.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DMV로 향했다.

미국에서는 보통 필기와 실기시험을 같은 날에 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 명이 필기시험을 한 번에 치르고

합격 후 실기시험을 친다면(나 때는 운전조작능력과 도로주행시험을 나누어 쳤었다)

여기서는 개별적으로 필기시험을 치고 통과하면 그날 바로 도로주행에 임한다.

온라인 예약을 하면 조금 더 편리할지 모르지만

당시 SSN카드도 없는 외국인 신분의 나는 7시에 문을 여는 DMV 앞에 한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

어물거리다간 그날 필기시험만 치르고 집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 그들은 자비가 없고, 그들은 느리다.

각종 신분증명을 위한 자료*들을 들고 인터넷에 떠도는 족보를 읽으며 내 순서를 기다렸다.


1. 여권과 비자

2. 주소증명을 위한 서류 2종(집 계약서, 그 외 우편물 등)

3. 거주증명서

4. 자동차 보험계약서

5. I-94(출입국 증명서)


7시 문을 여는 순간 이미 줄을 선 사람들은 20명 남짓.

아 추워 죽겠다. 할 즈음에 문이 열리면 건물 안에 들어가 큐알코드를 찍고 자기 순번을 받는다.

그때부터 줄은 점점 더 길어진다.

동이 터 하늘이 밝아 질 때 즈음 내 번호가 불리면 유리막이 가로놓인 DMV직원 앞에 가서 선다.

역시 내가 토익 토플 시험에서 듣던 말투와는 확연히 다른 발음과 억양. 그리고 속도.


미국 온 지 이틀 만에 시험관 앞에 선 외국인들은 모두 초등학교 입학식 때의 자신로 돌아간다.

머리색, 눈동자색, 키(피트로 말해야 하지만, 나는 그냥 센티로 말했다)

현미경 같은 곳에 양눈을 가져다 대면 각종 알파벳과 표지판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

첫째 줄 읽어라. 다음 줄 읽어라. 하면 떠듬떠듬 읽고, 족보에서 외운 표지판을 설명해야 한다.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끼고 시력검사를 치렀다.

우리말로 표지판도 외우기 힘든데 영어로 답을 해야 하니 이거야 원..

시력검사와 신분확인을 마치고 나면 필기시험이다.

20문항인데 한 문제 풀면 내가 정답을 맞혔는지 오답을 골랐는지 바로 알려준다.

오답은 4개까지 허용이 된다.

3개가 틀렸는데 7문항이 남았다.

이러면 그때부터 손이 건조해서 지문검사도 안 되는 나 조차도

촉촉한 지문결을 느끼며 마우스를 잡게 된다.


쫄깃한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잠시 대기한 후 건물 밖에 주차해 둔 본인이 가져온 차량을 가지고 시험에 임한다.

나는 시험을 위해 체구가 작은 차를 렌트했다.

기아의 레이.

내가 있는 지역에는 현대보다 기아차가 월등히 많이 보인다.

체구가 크고 무뚝뚝하며 다소 신경질적인 직원이 차 앞에서 몇 가지 지시를 한다.

시동 걸어

깜빡이 켜봐(왼팔을 흔든다)

나는 한국에서 버튼식 전기차만 운전해 본 아줌마인데

나의 레이는 열쇠로 돌리는 기계식이었다.

열쇠를 누르면서 침착하게 잘 돌려야 한다. 잘못해서 시동이 안 걸리고 라디오만 요란하게 흘러나오면

저기 앞에선 아줌마가 날 노려볼게 틀림없다.

앗. 시동이 안 걸렸다. 삐질.

다시.

아줌마의 눈썹이 실룩거린다.

두 번째에는 성공.

당황한 나는 오른쪽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작동시키는 기함을 토해냈다.

서둘러 멈추었지만 이미 아줌마의 눈빛은 의혹과 불신으로 가득하다.

보조석에 탑승한 무서운 그녀는 출발해. 한마디를 하고 팔짱을 꼈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두터운 몸에 겨울이라 두터운 플리스 집업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DMV로고가 적혀있는. 그녀는 팔짱을 꼈으나 두 손이 가슴 위에 올려진 자세로 앞을 응시했다.

10분의 시간이 마치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것 같이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한적한 길들 만 골라 스트레이트, 턴 레프트, 턴 라이트를 외쳤고

내가 속도를 넘어설라 치면 최대치의 볼륨과 짜증으로 슬로 다운 맴!!!! 을 외쳐댔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맴.

그녀가 맴. 을 한번 외칠 때마다 내 실기점수가 감점되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쓰리 포인트 턴 (좁은 길에서 세 번 멈추며 하는 유턴)을 무사히 마치고 잔뜩 화가 난 그녀를 모시고 DMV로 돌아왔다.

참, 주차까지가 시험의 끝이라 미국인들이 다하는 전면주차를 마치고 나자

그녀는 막 어깨를 으쓱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마지막에 패스. 를 외치고 하차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운전면허 시험이 4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나는 종이로 된 임시면허증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 사진도 현장에서 바로 찍는데

머그샷이 이런 건가 싶을 만큼 적나라한 내 얼굴이 박혀있었다.


면허를 따기 전에 자동차 보험을 가입해야 하고

면허를 취득하면 2주 정도 후에 실물 면허증을 메일로 받게 된다. 이메일 말고 진짜 메일. 우편.

메일이 종종 분실되기에 반드시 2주 후에도 메일함이 비어있으면 DMV에 전화해 재발송을 요구해야 한다.

역시 한 3주 후에 자동차 번호판이 역시나 메일로 온다.

자동차 등록세를 내고 나면 작은 스티커가 역시나 메일로 오는데 그걸 번호판에 붙여야 한다.

그렇게 한 달 여가 지나면 나는 합법적인 미국 운전자가 되고

혹여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더라도 신분확인을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는 참사를 당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그 나라의 운전자가 되어 신분증명서(면허증)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 큰 일인듯하다.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외국인들도 다들 이런 과정을 겪는지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렇게 1년간 소중한 면허증으로 즐거운 미국생활을 해오던 나는

2025년 새해에 다시 한번 DMV 문 앞에 덜덜 떨며 서있게 되었다.

다름 아닌 면허갱신을 위해.

당초 1년 계획으로 이곳에 온 나는 1년을 더 있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고

1년 만에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않으면 1년 내내 집에만 있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미국에서 면허갱신을 하게 되는 분들을 위해 짧게 적자면

1. 운전면허증(필수)

2. 체류허가서(필수)

3. I-94(필수)

4. 여권과 비자(나에게는 처음에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면허증을 리얼아이디로 교체할 경우에는 여권이 필요하다. 비자는 확인하는 거 같지 않았다. 그러나 비자가 만료되면 DMB로 통보가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

5. 시력검사를 위한 렌즈나 안경(표지판을 다시 물어보지는 않고 알파벳만 읽어보라고 한다)

무사히 면허를 갱신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아침하늘이 무척 아름다웠다.


미국에서 특히 미국의 교외지역에서 운전면허란 한 인간의 존엄과도 같다.

실제 미국에서 차를 보유하지 못한 불법체류자 혹은 저소득층은 설사 돈이 생기더라도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사러 그로서리에 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냉장고에 냉동식품 같은 것들을 넣어두고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대부분의 길들이 차 중심으로 되어있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하고

특히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 부모님의 차나 스쿨버스를 타지 않으면 걸어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험란한 여정을 걸어야 한다. 심지어 인도가 없다. 우리집 아이들의 학교가는 길은.

물론 적지만 버스도 있고 심지어 무료라 대학생들은 매우 유용하게 버스를 이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운전면허는 삶의 질, 이동의 자유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보증서다.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6개월, 혹은 1년에 한 번 보험회사도 교체를 하곤 한다.

나도 이번에 다른 보험사로 갈아타면서 뭣모르고 가입했던 첫 보험사보다 700달러가 저렴한 상품에 가입했다. 부디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 실 계획이 있으시면 미국 자동차보험 용어 10가지만이라도 잘 알고 오시라. 그리고 나처럼 덤터기 쓰지 마시고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험에 가입하시기를 빈다.

가입은 쉽지만 탈퇴는 더럽게 어려우니 고객센터와 두세 번 통화할 준비도 꼭 하시고.

그리고 보험사를 갈아탈 때는 다음 보험사에 확실히 가입을 한 후에 이전 보험을 연장을 취소하시라.

안 그러면 제3섹터 기관에 내 보험이 양도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어제 자동차 인스펙션까지 마치고 등록세를 내고 나니 이제 좀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들은 방학을 마쳤고

나는 새해의 결심들을 하나 둘 정리하며 오전을 보낸다.

남편의 부재가 이제는 정비소 직원과 토론(?)도 하는 나를 있게 했지만

나는 정말 수렵인이 필요하다.

수렵인과 채집인의 DNA가 정령 존재하는지와는 별개로

나는 그냥 수렵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갔던 길을 열 번은 가야 기억하는 나는 오늘도 구글맵을 남편으로 삼고 낯선 길을 달린다.

미국은 눈폭풍이 몰려와 겨울왕국이 되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채집인 유전자를 가진 누군가는 집 앞의 눈을 치우며

동파한 수도관 때문에 플럼버를 요청하며,

DMV 앞에 줄을 서서 별을 보며

눈물을 닦고 있겠지.


내가 한국에서 누려온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그 모든 신속함과 편리함, 친절함과 겸손함에 존경을 바친다.

매일 무료로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며 내 나라의 통신기술에도 깊은 감사를 느낀다.

나는 좋은 나라의 시민이다.

돌아가면 불평 좀 그만해야지.


동이 트는 DMV 앞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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