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걱정러의 쓸모 없는 상상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 새침함. 무심함. 귀차니즘. 은근한 애교.
그런 것들이 내 취향에 맞다.
그리고 그 모양새도 내 타입이다.
핑크색 발바닥
앙증맞은 수염
시옷자 모양의 앙콤한 입
동그란 눈
세모난 코
전부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고양이 알러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늘 냥이집사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 이웃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들은 마시멜로라는 이름의 냥이를 기르는데
그 녀석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배회한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 종종 나타난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면 간혹 냐옹! 하면서 나를 맞아준다.
햇살이 좋은 시간에는 태닝을 하며 집 앞 화단에 엎드려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가 되면 동네어귀를 어슬렁거리며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우리 가족들은 유난히 그 녀석을 좋아해서
그 녀석과 대화를 많이 시도한다.
물론 나에 대한 그 녀석의 관심은 한 10초 정도 되는듯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녀석이 우리를 멀리서 발견하고 죵죵 달려오며 냐옹, 하는 그 매력적인 자태를
우리는 경탄의 눈길로 바라본다.
어떤 날은 집안으로 들어와 이층 세탁실까지 호구조사를 하고 나가기도 하고
집 거실에 드러누워 이 집도 제 영역이라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마시멜로가 하수구 구멍에 빠졌다며
동네 장난꾸러기가 뒤에서 그 녀석의 등을 밀었다고.
빠졌다는 하수구 안에는 누런 나뭇잎들만 보인다.
자세히 듣자 하니 녀석이 자발적으로 들어간듯하여 하수구 근처를 몇 번 돌아보다가
알아서 나오겠지 하고 후퇴했다.
헌데 내일부터 비가 예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프로걱정러인 나는 다시 새로운 걱정거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체조교실에 가서 내내 <하수구와 냥이의 관계>에 관해 검색한다.
스스로 나온다는 썰.
하수구에 들어간 냥이는 펫 구조기관에 연락해야 한다는 썰
하수구 안에서 냐옹냐옹 소리가 나면 스스로 못 나오는 거라는 썰
마침 비가 와서 냥이가 익사할 뻔한 뉴스
어떤 소녀가 아기 냥이를 하수구에서 구조한 뉴스...
점점 불안도가 올라갔다
만약 오늘 밤에 폭우가 쏟아지면?
냥이 오너가 이사 온 후 인사 한번 나누지 못한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집 문을 두드렸다.
하수구는 영어로 뭐지. 구글을 검색하면서.
집은 비어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을 이끌고 아까 그 하수구 구멍으로 가본다.
마시멜로! 마시멜로!
이름을 부른다. 마치 내 고양이인 양.
엇. 그런데 어둠 속에 야옹야옹!
평소 녀석의 냐옹, 과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그 녀석이다.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니 보이는 그 어여쁜 눈망울.
오도카니 앉아서 하늘을 보며 야옹야옹...
하수구를 덮어둔 무거운 철제 뚜껑 사이로 녀석이 보이지만 뚜껑은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과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올라오라고 타일러 보지만
녀석은 두어 번 폴짝 뛰더니 빙글빙글 제자리만 돈다.
더 마음이 급하다.
그때 그 문제의 하수구 앞 집 젊은 커플이 마침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 그들에게 여기 고양이가 있다고 애타게 말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냥이가 하수구에 들어갔을 때는 팔을 밀어 넣어 녀석을 목 뒷덜미를 잡아야 한다.
녀석은 뚱뚱해 보였지만 털부피로 인한 위장인지 작은 구멍으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끌려 나왔다.
그 찌푸린 표정이 자꾸 생각나서 쿡쿡 웃음을 참는다.
무사히 마시멜로를 하수구에서 구출한 우리는 내 가족을 구한 마냥 기뻤다.
그런데.
이건 뭐지.
이놈이 다시 그 구멍으로 다가간다.
앞발을 휘휘 저으며 작은 구멍 안을 다시 살피네?
어라?
다시 들어가려는 거야?
냥이 전문가인 젊은 커플은 집안에서 사료를 가지고 나와 그 골 때리는 녀석을 달랬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우리는 궁금하다
냥이는 하수구를 좋아하나?
냥이는 어쩌면 매일 밤 거기서 잠을 자는 건지도
그래서 어떤 추운 밤에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건지도.
나는 혼자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쓴다
그 하수구 안에 뭐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냥이는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오늘밤 그 하수구에 재잠입한다.
하수구 안에 있을 그 무엇.
나는 내일도 그 녀석의 이름을 부르겠지
마시멜로!
마시멜로!
거기 뭐가 있니?
음산한 배경음악...
응?
신경 끄라고?
그래.
미안.
참 혹시 궁금한 분들을 위해…
고양이들이 잘 들어가는 미국 길가에 좀 커다란 하수구는
storm drain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폭우에만 쓰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