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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Nov 09. 2024

프로드리머의 미국복권 사는 법

나의 미국 수난기 2


나는 꿈을 잘 꾼다.

자주 꾸고 많이 꾸고 제법 잘 꾼다.

잘 꾼다,라는 의미는

예지(?)를 잘한다는 뜻이다.


큰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거나

아이를 임신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기다릴 때

대부분의 경우 꿈을 꾼다.

선명하고 강렬하여 깨어난 후에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그런 꿈.


자주, 많이 꿈을 꾸는 프로드리머, 로서

나의 모든 꿈은 금세 잊혀진다. 다행히.

그리고 불길하거나 찜찜한 꿈은 애써 상기하지 않으므로써 잊혀진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내 꿈은 항상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세명의 대통령이 꿈에 등장했고

그중 두 번은 며칠 혹은 2,3주 후에 큰 경사로 이어졌다.

태몽은 그림과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여 그것으로 짧은 웹툰도 만들 수 있다.

이렇듯 내 꿈은 우리 옆집 아저씨가 사들인 로또만큼 그 개수가 많고

때로 당첨도 된다. 어쩌면 확률게임일지도.



그리고 2주 전에 또 강렬한 컬러꿈을 꿨다.

내가 한 대사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정확한 꿈.

해몽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분명 길몽.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확신했다.

- 이건 분명 파워볼 1등을 예견하는 거야-


우리나라에 Lotto가 있다면

미국에는 파워볼이 있다.

가끔 당첨자가 없어 상금이 누적되면 1조 원까지 육박한다는 꿈의 복. 권.


하지만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틀을 묵혔다. 내 소중한 컬러 꿈을.

결국 금요일마다 방문하는 유명그로서리 스토에 자동판매기가 있다는 걸 기억해 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섰다.

정말로 한참을 서있었다.




생각보다 미국에는 복권이 많았다.

마치 라스베이거스 게임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제일 앞에 있는 게 제일 유명한 거겠지.

아이디카드를 스캔하고

살짝 버벅거렸지만 10불에 두장을 선택했다.

내 꿈은 용하니까 두장으로 충분해.


읏.

카드가 안 먹힌다.

그럼 현금.

지갑에 딱 100불이 있다.

그래 이걸로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받으면 주말에 헌금할 수 있는 작은 지폐가 나오겠지.

지폐를 넣는 구멍 위에 10$, 20$, 50$, 100$ 가 적혀있다.

오 친절한 자판기네, 100불도 받아주다니. 역시 미국 겜블링은 고객니즈에 충실해.


10초 후 -

내 꿈이 길몽이 아님이 판명되었다.

자판기에는 거스름돈이 없다. ....................

지폐를 넣는 구멍 아래에 적혀있다.

노 체인지, 노 리펀드.



추리닝을 입은 조그만 동양인 아줌마가

번쩍거리는 복권 판매기 앞에서 20여분을 서성였으니

내 뒤로 여러 아저씨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뭐랄까.

부끄럽다.


화면에는 남은 90$가 크게 보인다.

고객센터에 전화해도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음성 메세지

겜블링 센터에서는 오 아임쏘리. 플리즈 콜 더 커스터머센터.

앗.

이제 선택시간이 1분 남았다고 한다.

그럼 내가 1분을 더 가만있으면 내가 뽑은 이 두장의 파워볼 티켓은 100불짜리라는 건가.

눈물을 흘리며

파워볼 티켓을 구입한다. 14

그리고 두장은 상금을 두배로 준다는 티켓 2장.

이렇게 나는 당첨확률이 번개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파워볼 티켓을 한 번에 16장이나 산 프로겜블러가 되었다.

참 대단한 꿈이다.

대단히 비싼 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1조 원이 당첨되면 영주권을 받게 될 거라는 카더라 통신에 기반하여

영주권자가 되어 미국에 집을 10채 구입하고

매주 비즈니스를 타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이야기

비즈니스 석에서 먹는 신라면 맛과

구입한 미국의 집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

엄마는 그래도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꿈이 좋으니까.

16장 중에 50$ 하나 정도는 나오겠지.

그날밤 잠자리에 들면서 50$만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파워볼도 번호가 참 많았다.

그리고 맞는 번호는 참 적었다.

결국 4달러를 받을 수 있는 보너스 번호가 하나 나왔다.

파워볼은 발표도 11시 59분에 한다. 왜. 자정에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거지.

내 취침시간은 원래 10시인데.

역시 쉬운 게 없는 미국이다.

설욕을 위해

매주 두장씩 구입하기로 했다.

다만 이미 10주 치를 다 샀으니 10주 후부터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파워볼 번호를 대조하며 산타를 맞이할 수 있을 거 같다.



다시 꿈 얘기로 돌아와서.


그 꿈은 다른 일을 위한 꿈이었다.

파워볼 사던 그날 좋은 소식이 한국에서 전달되었다.

좋은 소식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내 꿈은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딱 그 몫만큼의 꿈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꿈의 크기를 가늠하는 일이다.

1조 원과 영주권은 그 정도로는 안된다.




덧붙여

미국에는 태몽의 개념이 없단다.

역시 아메리카.  

단군, 주몽, 박혁거세의 민족인 우리는 꿈으로 자식의 미래를 점치는데

내가 안 꾸면 다른 가족이 대신 꿔줄 만큼 보편화된 꿈을 너희는 안 꾼단 말이냐.

무의식도 결국에는 사회통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견과류와 육식동물.

우리 아이들의 태몽주인공이다.

내 무의식에는 단단하고 강인한 것에 대한 갈망이 있나 보다.



나는 프로드리머다.

서구화된 내 무의식이 다음에는 어떤 꿈을 가져다 줄지 기대된다.



끝.


 


찬란한 복권 자판기

거스름돈 없어요. 환불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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