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사업을 하게 된 히스토리. 언론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모든것이 달라졌다
내가 미디어 사업을 하기까지의 간략한 히스토리.
세상에 그냥 이루어진 건 절대로 없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되었고
이를 모아서 나만의 장르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혹자는 20대의 나에게 말했다. 왜 그냥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냐고.
비난과 핀잔을 들으면서도 마냥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싶은 일들을 경험하기 바빴고 많은 실패 속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호기심 많고 해보고 싶은 일들은 해봐야 했던 나는 느리지만 많은 것을 경험했고 방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할 이야기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내 이야기를 브런치에 다시 써 본다.
......
위니스입니다.
본명은 김건우입니다.
2월에 태어났고 정상적인 초등 중등 고등 교육과정을 거쳤습니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병아리 죽음의 트라우마)
관심분야는 사회학, 정보사회학,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커뮤니티, 공론장에 대한 부분이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음악, 미술, 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고흐를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입니다.
저희 인생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짤막하게 소개하면
- 고흐는 평생 동생 테오의 후원을 받으면서 살아갔습니다. 생전 그림을 한점도 팔지 못했지만 동생 테오는 형을 위해 그림을 사주면서 후원을 해주었죠. 그렇게 소중한 동생 테오가 아이를 낳자 선물로 그린 그림입니다.
아몬드 꽃은 겨울에 피는 꽃이라고 합니다. 차가운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꽃을 피는 것처럼 어려운 환경을 딛고 굳세고 꿈을 펼치라는 뜻에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 역시 차가운 겨울이 있지만 그런 환경에서 꽃을 피우도록 꿈을 이루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회사 로고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스쿨밴드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밴드명은 '브로큰 Broken' 모든 걸 때려 부시자! 였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음대 작곡과를 가고 싶어서 개인 레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재능이 없으면 안 되는 걸 깨달았습니다. 안될 놈은 안되더군요. 그래서 프로 음악인의 삶의 길은 접었습니다.
그래도 취미로 틈틈이 음악을 지속했습니다.
이렇게 밴드에서 리드 기타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스튜디오는 그때 처음으로 가져봤습니다.
음악인에게 자체 연습실과 스튜디오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이자 행운인지 모릅니다.
꾸준히 자작곡도 작업했습니다. 자작곡 만들면서 레코딩 기술을 익히고 음향에 대해서 한때 심취해서 공부도 했습니다. 미디에 대한 이해를 위해 조악한 장비도 경험하고 작업해보고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경험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팟캐스트/MCN 전용 스튜디오 '몽팟 스튜디오' 를 운영하게 만들 줄이야.
그때 경험한 게 참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장비를 세팅하고 음향을 이해하고 방송을 편집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순전히 음악을 하고 싶었기에 진로를 선택하고자 한 게 바로 선생님이라는 직업입니다.
대학을 마칠 즈음 안. 정. 적. 인 직업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택한 직업이 바로 선생님이었는데, 순전히 시간이 많고 방학도 있고 하고 싶은 음악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였습니다.
학원에서 논술도 가르쳐봤습니다. 논술에 논자도 몰랐지만 1년 정도 공부하면서 가르치다 보니 참 보람도 느끼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을 진학하여 교사자격증도 취득하고 잠깐이나마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원래 남 앞에서 말하는걸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도 있지만 선생님을 경험하면서 누구를 가르치는 게 이렇게 소중하고 보람차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게 경험한 교사라는 경험은 짧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렵지 않게 해주었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 행복하구나 말입니다. 그리고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교육공학, 교육심리학은 아직도 참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강렬하게. 그러나 결국 전 작은, 조그마한 방송곡에서 카메라 앞에 잠깐 서본 것이 전부인 지망생에 불과했습니다. 꿈꾸는 직업이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복수전공으로 언론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통해 제가 스피치에 대해 소질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전국대회도 나갔지만 예선 탈락했습니다.
그렇지만 남들 앞에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소질을 발견했습니다.
교육대학원을 다니면서 언론영상학부 조교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영상학부 조교는 전공특성상 광고/홍보/신문/방송 쪽의 여러 외부강사, 교수님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데
마침 방송국에 재직하시던 PD 분과 학과 커리큘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좋다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시작한 게 CBS 방송의 웨딩 관련 프로 '내레이션' 이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방송이 끝날 무렵 캐이블 방송 MC를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 경험하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고 싶은 강렬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학원 다니면 잘 할 것 같아서 아나운서 학원을 2년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때 방송 경험이 전부였고 더 이상 카메라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스펙도 외모도 준비되지 못한 제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그러나 방송에 대한 경험과 미련은 지금 미디어 사업을 하는데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꼭 내가 방송국을 만들어서 거기서 방을 만들어야지 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작지만 방송국과 시스템을 만들었고 나름 뉴스도 진행해보았습니다..
(미디어자몽 제작 '뉴스콕' http://mongpod.co.kr/frontend/episode/index/268706/0 ' )
지금은 중단했습니다.
그때 경험한 방송 분야에 대한 일은 너무나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 경험을 딛고 만든 미디어 사업, 방송에 대한 갈망으로 탄생한 스튜디오 그리고 방송 제작자를 위한 서비스들 까지.
포기하고 싶었던 방송은 생각지도 못한 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방향을 세우고 돌아 돌아 갔던 것이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 때 브랜드에 심취해서 참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행정학과에서 언론학을 경험하며 새로운 시선과 학문에 눈이 떠졌습니다.
메타브랜딩에서 브랜드 교육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그때 브랜드에 대해 정말 힘들게 공부했던 건 비즈니스 마인드 측면에서 너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업모델과 브랜드 전략 그리고 실행 방법론까지. 너무나 재미있었고 흥미로웠습니다.
PR 동아리도 했었지만 브랜드는 너무나 재미있는 분야였습니다. 인사이트 역량을 쌓은 덕분에 많은 일들을 시작하고 기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취업에 대한 고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커뮤니티가 좋아서 디시인사이드에 빠져 있었습니다. 디시 폐인 수준은 아니고 디시 팬 정도였는데 졸업 시즌 즈음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채용공고가 떴고, 마침 메타브랜딩에서 브랜드를 공부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면접도 잘 봐서 입사가 결정되었습니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정말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바이럴 마케팅과 UCC 열풍으로 인한 영상 제작. 엽기 사진 합성을 해야 하기 위해 익혔던 포토샵과 일러스트 스킬. 광고 카피와 배너광고 제작을 위한 스토리보드, 방송 제작 기획 등등. 짧은 시간 B급 콘텐츠와 콘텐츠 표현을 위한 방법론은 제대로 배운 것 같습니다.
직접 영업도 해서 수주를 한 경험의 짜릿함은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2007년 성탄절이 다가올 즈음. 이제 회사 1년 정도 다닌 제게 토익학원 강사였던 친구가 제안을 합니다. '네가 하는 광고 그거 나도 해줄 수 있어? 사례는 할게!'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빠르게 회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회사가 아니어도 돈을 벌 수가 있단 말이야?
그렇게 첫 고객을 맞이했고 소개를 받아 다른 선생님의 강의도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하던 일에 비해 업무량은 1/10에 불과했지만 수익은 1/2 정도로 높았던 거죠. 그때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교생실습을 마칠 즈음 고객사의 업무를 하면서 차근차근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와 사업자등록증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자등록을 냈습니다. 혼자 사는 옥탑방을 사무실로 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차츰 세무와 행정에 대해 익히게 되었습니다. 행정학과를 나온 게 이때 처음으로 도움이 됨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학문과 경험은 없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경험도 없지만 디시인사이드에서 웹 기획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홈페이지도 만드는 일도 하고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참 재미있는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사업이라는 것에 자신감도 얻게 되었죠.
그래서 위니스컴패니(www.artpr.kr) 라는 사업자를 2008년 내면서 첫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밋빛 미래만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좋은 조건을 추후에 제시하겠다 하는 조건으로 무료로 일하면서 자본금을 소진하고 나중엔 이용만 당한 체 버려졌습니다. 모아둔 자본금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힘든 시기. 정말 힘들게 힘들게 버티던 시기였고 쓴맛을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터넷소통협회에 연구원으로 다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살려 홍보/칼럼/행사진행 등등의 일을 홀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경험한 실무와 만난 네트워크를 통해 좋은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죠.
협회에서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업계 실력 있는 분들을 만나 좋은 기회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혼자 일하는 버릇이 있어 조직에 대한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김선영 수석님의 호출로 놀러 갔다가 샤우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현 샤우트웨거너에드스트롬->함샤우트)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샤우트웨거너에드스트롬은 정말 끝내주는 회사입니다.
샤우트에서는 큐원, 레노버, 대림바스 등을 전담하여 경험했습니다.
제대로 된 조직생활은 샤우트가 두 번째였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에 감탄 그리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재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박사과정에 합격하고 나서 입니다.
대기업 이직을 눈앞에 두었지만 덜컥 대학원에 붙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큰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지사 홍보를 하면서 만난 사장님 덕분에 양재동 빌딩 사무실 내 작은 책상을 하나 얻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클라이언트 하나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좋은 친구들 덕분에 5개월 만에 논현동으로 이사하고 지금껏 사람들과 함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위니스컴패니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위니스컴패니는 사업자등록을 포기할까 하던 생각에 다시 살려놓은 회사입니다. 치기 어린 나이에 만들어놓은 사업자가 아니었다면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질러놓은 덕분에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움직이는 건 내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위니스컴패니는 통합마케팅 전문 기업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잘 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 비즈니스를 하면서 웹사이트 개발, 영상 제작 등의 커뮤니케이션 툴까지 활용한 실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위니스는 브랜드 전략을 잘 이해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기업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면서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통합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맨땅의 헤딩, 네트워크의 부재, 조직력의 약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디어 사이트를 통해 마케팅 기업의 포트폴리오로써 활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공모전 대행을 염두한 '대학생 공모전 사이트 자몽'을 개발했습니다. 자몽은 공모전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광고를 수주한 계기를 통해 콘텐츠 제작을 위해 대학생 기자단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첫 대학생 기자단을 운영하면서 무엇을 해볼까 하다가 시작한 게 바로 당시 유행했던 팟캐스트였습니다.
그러던 중 아직 팟캐스트 인지도도 국내 제대로 된 스튜디오도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기자단을 운영한 게 2013년 9월 1일인데 스튜디오에 필요성을 느끼고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시간은 13년 12월 초. 그리고 계약부터 이사까지 보름 정도의 시간 안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사까지 마무리 지었습니다.
당시 주변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월세 정도만 뽑아내자 라는 생각으로 시도한 덕분에 재미있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내가 생각했던 방향은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방송 제작을 통해서 미디어 비즈니스를 수행하자가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게 바로 플랫폼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가 만들어지자 다양한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직업과 나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스스로 실현하기 위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플랫폼 서비스를 열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몽 팟캐스트의 줄임말 '몽팟'입니다.
저는 미디어는 메시지다. 이제는 메시지가 미디어다 라는 말을 즐겨하곤 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대화만으로도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방송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직 국내 1위 팟캐스트 방송 서비스 업체와 비교하면 초라한 시작이지만 더 많은 가치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저희는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성과 영상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방송을 만들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미디어 민주주의를 꿈꾸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는 미디어 서비스를 다시 내놓았습니다. 정식 언론사 허가를 받고 기사와 사진, 영상을 통해 1인 미디어 제작자를 위한 언론사 '자몽'입니다.
자몽은 1인 미디어 제작자, 사업자, 산업, 교육 그리고 IT 비즈니스를 다루는 미디어입니다. 최근에는 교육을 통해 1인 창작자를 위해 지식을 공유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뚜렷한 성과도 목표 달성도 이루지 못한 상태이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는 작은 기업입니다.
그리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연결시키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9번째 단계는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건 그때도 경험한걸 바탕으로 하고싶은 일을 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호기심 많은 제가 20대 때 경험한 일들은 '밴드', '미술관 큐레이터', '학원강사', '브랜드 마케팅 교육', 'PR동아리', '언론학 복수전공', '아나운서 지망생'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다시 모여서 '온라인 마케팅 회사', '스튜디오', '미디어', '방송제작', '방송 교육'등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모아놓으니 단 하나도 쓸데없는 경험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경험도 앞으로 변화할 때 어떻게 쓰일지 모를 정도로 기대가 되는 중입니다.
지금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은 생각을 바꾸면 수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경험을 위하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미디어자몽 대표 김건우
MCN 종합 미디어 '자몽 - zamong' http://www.zamong.co.kr
팟캐스트 MCN 플랫폼 '몽팟 - mongpod' http://www.mongpod.com
1인미디어 & 팟캐스트 스튜디오 '몽팟 스튜디오 - monpod studio' http://www.studiozam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