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다산책방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미시즈 윌슨이 우리처럼 생각하고 걱정할 게 많았겠어?" 아일린이 말했다. "그 큰 집에서 연금 받으면서 편히 지내는 데다가 농장도 있고 일은 당신 어머니하고 네드가 다 해줬는데.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아니었냐고." p.57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p.11
이 첫 문장을 열 번 이상은 읽은 것 같다. 헐벗고 상처받은 임산부의 모습이 느껴지는가? 옮긴이의 조언대로 두 번 이상은 읽어야 하는 책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를 읽고 바로 팬이 되어버렸다.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난 후 여운이 정말 길게 가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의 특성상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1년 이내의 책은 잘하지 않는 편인데 다수의 선택으로 결정되었다.
사소한 것을 지나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펄롱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판다. 일머리가 있고 사람들하고 잘 지낸다고 정평이 났고 건실한 개신교도 특유의 습관을 들여 믿음직했고 일찍 일어났고 술은 즐기지 않는다.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미시즈 윌슨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내에서 몇 마일 떨어진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개신교도였다.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그 집에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 줬다. 자식이 없는 미시즈 윌슨이 펄롱을 돌보며 잔심부름을 시키고 글도 가르쳐주었다. 농장 일꾼인 네드도 같이 살았는데 집안에 불화가 거의 없었고 농장은 울타리도 잘 쳐져있고 관리도 잘되고 빚진 돈도 없었기 때문에 이웃과 부딪칠 일도 없었다.
펄롱은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시내에 산다. 첫째 캐슬린과 둘째 조앤은 세인트마거릿 중학교에 다닌다. 셋째 실라와 넷째 그레이스도 수녀원에 가서 아코디언을 배운다. 펄롱이 약혼하자 미시즈 윌슨이 몇 천 파운드를 주었고 사람들은 펄롱의 아버지가 미시의 윌슨의 자식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펄롱은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결국 듣지 못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시즈 윌슨에게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기에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무례한 일인 것 같아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1985년이었고 젊은이들이 런던, 보스턴, 뉴욕 등으로 이민을 떠나고 있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점점 길어지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여자들은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서 줄을 섰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아내 아일린은 쿠키를 굽고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들이 적어낸 선물을 사는 등 분주하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펄롱은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부지런히 버섯을 땄음에도 다시 시작점을 돌아보니 새끼버섯이 배양토를 뚫고 올라오는 걸 보고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반복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p.44
현실을 산다는 이유로 사소한 일 따위는 그냥 넘어가고 산다. 한쪽눈을 감거나 두 눈을 감고 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마음이 살살 긁히는 이유는 아마 마지막 양심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구절절 작가가 표현한 펄롱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제 잘 알겠다. 가난한 아이를 보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줘버려야 마음이 편하고 그런 일을 외면했을 때 마음이 무겁고 화가 나는 인물이다. 펄롱의 최대 거래처인 수녀원은 종교, 교육, 경제권을 잡고 있는 곳이고 누구와도 척지지 않는 성격을 지닌 펄롱도 처음에는 눈을 감고 그냥 넘어간다.
그해 12월은 까마귀의 달이었다. 그런 까마귀 떼는 처음이었다. 시 외곽에서 새카맣게 무리를 짓다가, 시내로 들어와서는 길 위에서 걸어 다니고 고개를 갸웃하고 어디든 마음에 드는 전망 좋은 자리에 뻔뻔하게 홰를 틀고 있다가 죽은 짐승에 달려들어 뜯어먹고 길에 뭐든 먹을 만해 보이는 게 있으면 장난스레 덮치고 밤이 되면 수녀원 주위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은 위풍당당한 건물이었다. 활짝 열린 검은색 대문 안에서 길고 반짝이는 창문 여러 개가 마을 쪽을 향하고 있었다. p.47
수녀원은 세인트마거릿 학교와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직업 여학교 그리고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직업학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지만,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 교화를 받는 곳,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곳, 모자 보호소, 가난한 집의 결혼 안 한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가족이 미혼모를 그곳에 보내 숨기고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는 부유한 미국인에게 입양시키거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고 그런 과정에서 수녀들이 상당한 돈을 챙기는 곳이라는 무수한 소문이 떠도는 곳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운영이 되었다고 한다.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를 했던 곳이다. 1996년에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시설에서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펄롱이 약속한 시간보다 이르게 수녀원에 장작을 배달하러 가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불이 켜진 경당으로 갔는데 그 안에서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서 구식 라벤더 광택제 통을 놓고 걸레로 둥근 모양을 그리며 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중의 한 소녀가 물에 빠져 죽고 싶다며 이곳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펄롱은 갑자기 나타난 수녀에게 대금을 받고 수녀원을 나온다.
이 사건이 한 번이었다면 펄롱이 과연 움직였을까?
수녀가 지폐를 세는 동안 펄롱은 수녀를 찬찬히 보았고 너무 오래 제멋대로 살아온 고집 센 조랑말을 떠올렸다. 여자아이에 관해 뭔가 묻고 싶었던 마음이 솟았다가 결국 사라졌고 펄롱은 그냥 수녀가 달라는 대로 영수증을 써주고 나왔다. (p.53)
바닥을 닦는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 추운 겨울에 어린 소녀가 석탄광에 밤새 갇혀있었던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광에 갇힌 소녀를 데리고 갔을 때 수녀원장은 말투를 바꾸며 침대에 없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경찰을 부르려던 참이었다고 말한다.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차를 대접하고 세인트 마거릿 학교에 다니는 딸들을 언급한다. 이제 펄롱은 처음과 다르게 행동한다. 펄롱은 첫 번째와는 달리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고 (하필 어머니의 이름과 그 소녀의 이름이 같았다. 세라 레드먼드) 자신이 누구이며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오라고 말한다.
크리스마스에 네드를 초대하려고 펄롱은 미시즈 윌슨의 집에 갔는데 보름도 더 전에 폐렴에 걸려서 다른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자신이 네드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닮았다'는 말을 생판 남을 통해 듣게 되면서 펄롱은 생각 속에서 불을 지폈다.
자신의 생부가 누구인지 자라는 내내 궁금해했던 펄롱. 어머니도 미시즈 윌슨도 당사자인 네드도 왜 이 사실을 꽁꽁 숨긴 것일까? 닮았다는 사실 하나로 아버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여러 해전 미시즈 윌슨이 살아있을 때 펄롱이 그 집에 찾아가서 네드에게 자기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네드의 대답이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아시겠지." 네드가 말했다. "어쨌거나 결국에는 잘 풀린 거지? 여기에서 잘 컸고, 지금도 잘 살고 있잖아. " p.95
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 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 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p.110
크리스마스날에도 일을 한 펄롱은 케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미시즈 케호는 수녀원 그 양반(수녀원장)하고의 충돌을 들었다며 조심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충고를 한다.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면서.
펄롱이 뒤로 물러서며 미시즈 케호를 마주 보았다.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냐." 미시즈 케호는 말을 멈추고는 극도로 현실적인 여자가 가끔 남자들을 볼 때 짓는 표정, 철없는 어린애 보듯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일린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사실 꽤 많았다. p.106
펄롱은 아일린에게 주려고 주문한 에나멜 가죽 구두를 찾고 집으로 가려던 길을 바꿔 수녀원으로 향한다. 수녀원 석탄광 앞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문을 열었다. 나 같아도 세 번은 안 참지. 펄롱은 세라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를 부축해 밖으로 나온다.
펄롱은 성당에서 세라를 데리고 항상 다니는 길을 걸어 집으로 간다. 굳이 사람들 눈에 띄는 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녀를 데리고 나오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펄롱이 세라를 데리고 나왔을 때 엄청난 큰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너무도 평화로웠다는 사실이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가출하고 돌아왔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때의 황당함 같은 걸까?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19
모두가 yes라고 할 때 혼자 no를 외칠 수 있었던 펄롱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펄롱이 세라를 데리고 나오게 한 결심에 영향을 준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아빠는 없었지만 엄마, 네드, 그리고 미시즈 윌슨에게 사랑을,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라가 펄롱의 어머니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펄롱이 움직였을지라는 삐딱한 생각을 해본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수녀원의 비리를 대부분 알고 있었고 침묵을 지켰다. 마을사람 중의 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그들이 모두 잘못된 생각을 할 리 없으니 의심하지 않고 맞을 것이라는 오류를 범한다고 토드 로즈의 <집단 착각>에서는 말한다. 방관자의 침묵이나 순응이 바로 가해자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이 되자.
스쳐 지나가는 마음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밀어 주었던 따뜻한 사람들이 생각나는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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