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캐슬 사람들의 결말은 정말 해피엔딩인가

<스카이캐슬>과 한국사회의 계급·가족 재생산에 대하여

by 수아


작년 초 화제의 드라마였던 <스카이캐슬>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다소 억지스럽다는 평이 다수를 이룬다. 갑자기 모든 등장인물이 잘못을 뉘우치고, 죽은 사람은 잊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이 드라마의 엔딩이 갑자기 너무나 ‘드라마’ 같아졌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 해피엔딩이 불편한 이유는 오히려 현실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캐슬 사람들’의 해피엔딩은 나머지 일반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지 유출 건으로 자퇴를 해도 집에서 종일 공부하고 진로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게, 학원과 과외가 필요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게, 아빠가 병원장 따위 발로 차도 그게 가능한 게 ‘캐슬 사람들’의 현실이다.


억울하게 죽은 혜나에게 미안해하지만, 반성하고 살기에 그들은 후련하다. 다른 가족을 보면 어떨까. 유학비 다 날려도 집안은 끄떡 없으며, 20대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금수저 친구들과 사업을 꿈꿀 수 있다는 것 역시 ‘캐슬 사람들’이니 손쉽게 가능하다. 최상위권 성적이지만 꿈을 찾겠다며 자퇴하고 유학 가는 용기와 그걸 존중하고 허락해주는 부모 역시 ‘캐슬 사람들’이니 가능한 이야기다. 공부 좀 못해도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부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카이캐슬>의 결말은 정말 해피엔딩인가? 그들만의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스카이캐슬>은 너무도 쉽게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사람 하나쯤 죽어도 끄떡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계급과 그 계급이 재생산되는 현실을 탁월하게 보여준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금수저는 실패할 여유가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스카이캐슬>의 결말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교육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2018년 기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서울 상위권 의과대학의 학생 55%가 고소득층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2018년 전국 대학교 의학 계열 학생 소득분위 현황’에 따르면 서울 상위권 의대생 1843명 중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9·10분위 학생은 55%인 1012명이다. 굳이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필요가 없는 고소득층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2018년 기준 의학 계열 연간 평균등록금은 963만 원으로 소득분위가 낮은 학생의 경우 대부분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고 있어서다.


2018학년도 1학기 기준 서울권 주요 의대(치의학·한의학·의학) 학생 소득분위 현황 (단위: 명, 자료: 김해영 의원실)


이러한 결과는 부모의 소득이 자식의 학벌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 또한 교육이 예전엔 계층 격차를 극복하는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격차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주며 해당 자료가 보여주듯, <스카이캐슬>의 부모들 역시 자식의 교육에 온 힘을 쏟으며 그 격차를 공고히하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때 드라마를 둘러싼 유의미한 지적 중 하나는 SKY캐슬의 사람들은 ‘최상위 계층’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 의대’ 합격이라는 원대한 목표 없이도 풍족한 삶을 몇 대에 걸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애매한 중상층 계급이라는 점에서 무한 경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권 및 공기업 인사청탁,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 학생부 조작 사건, 그리고 미성년 자녀를 논문 저자 명단에 끼워 넣은 소위 명문대 교수들의 행태 같은 자신의 자원을 이용하여 ‘좋은 직장’을 간접 세습하려 한 중상층 계급 부모들의 부도덕한 반칙을 예로 들며 이점을 주시할 수 있겠다. <스카이캐슬>에서 계급의 심볼처럼 사용되는 피라미드에 균열을 내기 위해선 더 강한 평등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교육으로? 경제민주화로? 정치혁명으로? 강한 평등주의는 또 어떻게 가능할까?와 같은 질문들을 우리는 <스카이캐슬>을 보며 떠올릴 수 있고 또 떠올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19세기 이후 왜 여성에게 어머니의 역할이 부각 됐는지, 부르주아 계급에서 왜 어머니가 자녀의 교육에 신경 쓰게 되었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다룬 책 『모성애의 발명』(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이재원 옮김, 알마)도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를 읽는 데 있어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초 독일 부르주아 여성운동의 입장은, 어머니라는 존재를 평가절상하여 여성 인생의 강령으로 확대했다. 엄마라는 역할에 함몰돼가는 한 개인의 자아가 겪는 비참함은 <스카이캐슬>의 여러 여성의 모습과도 겹쳐있다. <스카이캐슬>이 자본에 의해 형성되는 계급을 탁월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도 하지만, 젠더와 계급에 관련해서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비극미를 위해 여성 두 명이 죽어야 했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결국 ‘자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역할로, ‘가정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 아래의’ 가정으로 회귀했으며, 관조하는 위치에서, 때로는 서슴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던 남자들은 득도하고 끝나는 결말은 페미니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한 가정을 제외하고 캐슬에 일었던 비극은 모두 남성 가부장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애먼 여자들만 ‘독한’ 여성이 되어 죽고 죽이는 상황을 지켜보면 여러 복합적인 이유에서 이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 결코 해피엔딩이라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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