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에 나타나는 여성,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소고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은 폭력에 저항하고 일상을 지켜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2019년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 종목이라 할 수 있는 로맨스물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범죄․수사 장르 드라마들의 범람 가운데 이뤄낸 쾌거라고 볼 수 있겠다.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로맨스(4) 휴먼(4) 스릴러(2)는 거들뿐인 4:4:2 전술 드라마’라는 설명에 들어맞게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가상의 공간 ‘옹산’과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 그리고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까불이’라는 존재가 모여 <동백꽃>의 서사 구조는 조화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이 흥행의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드라마 흥행의 여부를 떠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여성과 가족을 재현하는 방법이다. 기존의 가족 드라마는 여성 혹은 여성이 속한 가족의 재현에 있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충실함을 밝히는 데 천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와 비교해 보았을 때 <동백꽃>의 문법은 어떻게 다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주인공 ‘동백’과 그가 꾸려가는 ‘가족’의 형태, 그리고 그들이 자리 잡은 ‘옹산’이라는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관련 자료
1. TV 드라마와 여성-가족 연구의 필요성과 그 효과에 대하여
강보라, 「TV 드라마 내 공간의 재현을 통해 본 가족상 분석」,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12.
강명구, 「유교적 가족 안에서 개인은 어떤 모습으로 사는가?」, 『언론과 사회』22(1), 2014.
강보라의 논문에서는 우리 사회 안에서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가족상’이란 시대적 가치에 의해 또는 미디어의 재현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동백꽃>이라는 작품을 보고 ‘가족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어디서부터 유래하는가? ‘표준화된 가족상’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서사와 사회적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들을 마땅히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텔레비전 드라마 내 공간은 일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장소로서의 의미와 당대의 사회상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가족상의 내러티브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관찰할 수 있는 적합한 방법이라 주장한다. 이는 <동백꽃>이 설정하는 옹산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인물들의 가족상, 인식 등으로부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강명구의 논문에서는 유교적 전통 사회 속에서 개인 이전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족 관계가 먼저 설정되어 있다는 점과 근대 사회로의 이행 속에서 그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는 TV 드라마의 사례에 주목한다. 이는 <동백꽃>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백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덕순과 용식의 갈등,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이지만 결국은 그 손을 놓지 못하는 동백 등은 부모-자식 간의 전통적 관계와 관계로부터 부여받는 의무, 책임 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동백꽃>은 그 외에도 다양한 개인과 그와 얽힌 가족 관계를 제시한다. 가령 더 이상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겠다 이혼을 선언하는 자영의 모습이 그렇다. 전통적 유교 사회로부터 근대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개인들은 ‘가족 이후의 가족’을 선택하게 되고, 혈연이라는 원초적 연관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논문의 주장은 동백과 향미의 관계, 동백과 게장 골목 여성들의 관계를 떠올리게끔 한다. “유교 문화 안에서 가족과 국가가 삶의 존재 조건이던 가족주의적이고 조직에 충실한 사람에서, 이기심도 가지면서 동시에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한 모습을 지닌 합리적 개인으로 진화한 인간형”으로 근대적 개인을 설명한 논문의 주장을 통해 <동백꽃>의 인물들을 바라본다면 보다 다양한 개인의 특성과 가족, 그리고 국가와의 관계 등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2. 여성-가족-공동체를 재현하는 <동백꽃 필 무렵>의 문법
이다운, 「〈동백꽃 필 무렵〉연구―로컬의 낭만과 추리서사의 전략적 병합」, 『한국극예술연구』67, 2020.
논문에서는 <동백꽃 필 무렵>이 비주류인 ‘미혼모’ 동백을 중심으로 주류의 자리를 선점한 이례를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비범한 조건을 갖춘 인물들의 로맨스, 화려한 삶의 양태 등의 전형적 문법을 답습하기보다 감상자에게 낯선 쾌감을 선사함으로써 거둘 수 있던 결과라는 것이다. 드라마가 여성과 그 여성들을 둘러싼 가족을 재현하는 방법 역시 새롭다. 남성 가부장 없이 여성들이 꾸려낸 가족이 상징하는 것, 그리고 현재 한국에 대두하고 있는 여성 대상 혐오범죄를 전면적으로 다뤘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까불이라는 존재에 대항하기 위해 개업 이래 처음으로 여자로 꽉 찬 까멜리아가 시사하는 의미 역시 크다.
<동백꽃>이 공동체를 그려내는 방식 역시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처음에는 토박이 네트워크에 귀속되지도 않고 장소 규율을 체화하지도 않은 동백은 옹산 주민 공동체에서 배척당하나, 이방인 동백과 필구를 가족으로 품어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여성 공동체는 새롭고도 여성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상처받은 동백과 정숙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자양분이 되어주고, 까불이와 같은 위험요인이 등장해도 함께 처단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곳, 옹산은 곧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에 버금가는 대안적 가족으로의 공동체를 제시하는 듯하다. 동백과 향미의 관계도 작은 공동체이자 대안 가족이라 할 수 있다. 옹산이 동백과 필구를 품었듯, 동백과 필구도 향미를 품지 않는가. 결국, 공동체 속에서 동백은 까불이의 머리를 향미의 맥주잔으로 쳐서 쓰러뜨리는 것으로 복수에 성공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이 가능했던 이유로, 개인주의와 익명성의 소외가 만연한 도시와는 다르게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옹산’이라는 공간의 혈연, 운명 공동체라는 설정 위에서 가능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앞서 요약한 자료들과 함께 보았을 때, TV 드라마로 재현되는 여성-가족-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많아 보인다.
동백의 성장 서사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웰메이드 드라마라 평가내리게 되지만, <동백꽃>에 관한 지적들도 분명 존재한다. 작품 전체에 걸쳐 강조되었던 ‘모성’에 대한 질문들이 그 예이다. 모성을 신격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백꽃>이 던지는 수많은 메시지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가족’문제를 떠나서도 생각해 볼거리가 많은 드라마임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향미의 죽음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지점이 존재한다. 게르마늄 팔찌를 한 여성의 죽음으로 드라마의 초입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팔찌의 주인공이 동백이냐, 용식의 엄마 덕순이냐 하는 추측을 했다. 그때 향미가 걸린 것이다. 되바라지고 속물이면서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는 여성. 죽음이 결정된 드라마에서 향미는 ‘가장 죽어도 괜찮은 인물’이 되어버린다. “나한테 직업여성이라고 했어요. 연쇄살인은 다 드러운 년들이 당한다고, 이번엔 살았으니까 앞으로 행실 똑바로 하라고.”라는 대사는 직업여성이 당연히 죽을 만한 타겟으로 인식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끔 한다. 드라마 속의 동백이 고통받는 미혼모 여성을 나타낸다면 향미는 조금 더 복합적으로 현실에 버려진 여성을 의미한다. 지나가는 여자이고, 늘 죽어왔고 늘 사라졌던 그런 여자이기에 시청자들은 내심 죽은 여성이 동백이 아니라 향미이기를 바라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그 마음을 꼬집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어 마땅한 여자도, 혼자라는 이유로 위협받고 슬퍼해야 마땅한 여자도 이 세상에 없다. 여성의 삶을 논함에 있어 <동백꽃>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을 이런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