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집단 성착취・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중심으로
2019년 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름 없는 추모제-죽음에 이른 불법촬영 및 비동의유포 피해자를 기리며>가 열렸다. 이날 익명의 여성이 불법촬영과 동의하지 않은 유포로 친구를 잃었던 경험을 공개했다. “그 애는 경찰, 법조인,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어서 그저 디지털 성폭력 이슈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편인 친하지도 않은 저에게 겨우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 애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는, 그 정도로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이해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애는 왜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겁니까?”라는 물음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요구안을 함께 낭독했다. 지난 10년간 웹하드 관리 감독 방식을 분석해 반성적으로 성찰할 것, 웹하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할 것, 온라인 성폭력 관리 감독을 위한 전문적인 별도 기구를 설치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2019년 11월, 익명의 대학생 2인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에 의해 신고된 ‘n번방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친구를 잃은 그때 그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현재 코로나를 이겨내는 것이 한국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과제라고는 하나, 이번 사건이야말로 감염경로 추적이 불가능한 지역감염이 진행된 디지털 성범죄의 대유행 상태가 아닌가. ‘n번방’으로 대표되는 성범죄가 단죄되지 않고서는 여성 인권과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 자료
1.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의 방임에 대하여
「정치가 미투에 응답하지 않은 결과가 ‘n번방’이다」, 『일다』, 2020.04.07., <http://www.ildaro.com/8693>
「조주빈 붙잡힌 날, 6년간 여성들 불법 촬영한 범죄자는 법원을 걸어나갔다」, 『로톡뉴스』, 2020.05.30., <https://news.lawtalk.co.kr/judgement/2317>
디지털 내 성착취물 거래 범죄의 실체를 알게 된 각계각층의 여성들은 분노를 쏟아내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미투 관련 법안 발의는 약 150건에 다다랐지만, 대다수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나 몰라라 하고 셔터를 내렸다. 총선 이후의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디지털 내 성착취물을 포함한 성범죄 문제를 범죄 자체로 단죄하기보다는 정치적 요소로 환원시켜 해결에 미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렇다. 현재 여성 유권자들은 남성들의 성착취 카르텔과 방조라는 근본적 불의의 썩은 불판을 갈아치우자고 하는데, 불판 갈다가 민주당 고기 몇 점이 숯불에 빠져 화형당하는 걸 걱정 중인 이번 정부도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정치’가 주목해야 할, 응답받지 못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정리하고 있는 첫 번째 기사는 주목할 만한 자료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년간 있었던 일련의 성범죄 사건들과 여성 인권 의제, 미투 운동을 정리해 보면, 디지털 성범죄를 안일하게 봐준 결과가 ‘n번방’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법원 등 문제 해결의 주체가 이 문제를 방임하고 안일하게 처리해왔던 지난날들이 오늘날의 디지털 성범죄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기사는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조주빈이 붙잡힌 당일, 법원은 또 한 명의 디지털 성범죄자를 ‘집행유예’로 선처했다. 재판부의 선택은 집행유예 3년이었다. 범행 기간은 무려 6년. 확인된 횟수만 165회였지만 그랬다. 선처의 이유는 “(피고인 A씨가) 범행을 자백하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가 없다”라는 것이었고, “병적이고 기형적인 성 의식이 개탄스럽다”라는 판결문 속 표현과는 상반되게 처벌은 집행유예와 200시간의 사회봉사,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5년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으로 그쳤다. 전 세계 초대 아동음란물사이트를 운영한 ‘다크웹’운영자 손정우의 경우, 25만 건의 성착취물을 유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n번방’은 이처럼 죽어도 바뀌지 않는 정치판 속에서, 죽어도 안 바뀌는 법을 먹고 자랐다. 짧은 분량의 글 속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사건들을 떠올리다 보면 이건 단지 텔레그렘에서의 문제가 아닌, 인터넷상의 문제가 아닌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보는 시선과 개념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고한 네트워크의 결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정부와 재판부는 방임을 넘어서 공조한 것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2. n번방과 함께 자란 세대의 문제
윤지선,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철학연구』127, 2019.
이윤정, 「최근의 양성갈등 상황과 양성평등 관점에서 본 디지털 성범죄」, 『강원법학』56, 2019.
그렇다고 해서 성범죄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문제가 정부와 법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디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혐오적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로 만들어진 문제일 것이다. 가령 최근 문제가 된 어린이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를 봐도 그렇다. 지난 4월, 남학생이 숲속에서 용변을 보는 여학생의 모습을 촬영한 후, 이를 빌미로 여학생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을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모방할 우려가 있다며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았다. 최근 LG전자의 V60씽큐와 듀얼스크린의 기능을 홍보하는 광고 또한 한 노인이 계단을 올라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하다 카메라 셔터 소리로 인해 들키는 모습을 담았다. 그러나 듀얼스크린 기능으로 셀카를 찍은 것처럼 속여 무사히 넘어갔다는 광고는 국제적 공분을 사게 되었다. 조주빈을 비롯한 ‘n번방’ 운영자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범죄에 서사를 부여하는 가해자 중심의 언론이 보이는 행태들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화할 수 있겠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자라나는 세대는 어떤 시대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윤지선은 논문에서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에의 반복 노출은 한국 남아들에게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몸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을 체득시키고 여성 혐오 용어 놀이와 성적 비하⋅조롱의 행동들을 강한 남성성 모델로 동일시하게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한민국 검⋅경찰의 무관심과 구조적 묵인을 두고 한국 남아들을 불법 촬영물이라는 여성 혐오적 조건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켰으며, 성애적 흥분치의 폭발적 증대와 연동케 하는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문화적 환경과도 연관성이 뿌리 깊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이윤정은 아직 가치관의 정립이 되지 않아 온라인 커뮤니티와 같은 미디어 매체에서 형성된 여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의 경우 사이버상의 동성 집단에서 교환하는 이성에 대한 비난과 혐오의 감정 및 표현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어 다른 세대 보다 더 이성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며 지금의 청(소)년 세대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해결책으로는 형사적으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여 양성갈등 및 성범죄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 정치, 철학, 교육 등의 영역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최근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범죄인 디지털 성범죄의 확산 이면에 있는 여성 혐오 이데올로기를 검토한 후 전 사회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n번방과 함께 자란 세대들이 또 다른‘n번방’을 만들지 않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치적 책임, 형사적 처벌, 미디어 매체의 검열 등의 측면에서 이야기했지만,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촬영을 돕는 '특수위장몰카'가 저렇게 버젓이 판매되고, 업체들에 의해 포르노 촬영이 조장되는 ‘몰카 시장’과 같은 요소도 디지털 성범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절대로 법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될 시장이나, 제대로 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매번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정부의 무책임/무능력함과 관음을 정당화하는 끈끈한 욕망의 남성 연대를 직시하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미처 적지 못한 수많은 사회의 부분들이 또 다른 ‘n번방’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최근 대전,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SNS를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10대 청소년을 성 착취하는 등의‘n번방’ 유사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바 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사건을 신고하고 접수할 수 있는 일원화된 체계 활성화, 수사접수를 반려시키는 등의 수사기관의 미온적 태도 해결,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를 만들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성폭력 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의 조항 개정, 가해자의 구속 수사 범위 확대 등의 법적・제도적 차원의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일까. 지난 몇 년간 ‘버닝썬 게이트’부터 ‘n번방 사건’까지 오며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를 ‘비동의 성적 촬영물’, ‘불법 촬영물’이라는 용어의 사용으로 변화시켰듯, 여성 대상 범죄 사건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끊임없이 이루어나가며 관련한 메뉴얼이 적극적으로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