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의 소란스러움에 대하여

클릭으로 살 수 없는 `덤`과 `관계`의 생존학

by 이장복

1. 새벽 배송의 침묵 vs 시장의 소음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조용하고 편리한 쇼핑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터치 몇 번만 하면, 다음 날 새벽 현관문 앞에 신선한 식재료가 마법처럼 도착해 있다. 여기에는 상인과의 인사도, 가격 흥정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드는 수고도 필요 없다. 오직 효율적인 알고리즘과 거대한 물류 시스템의 침묵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극강의 편리함은 우리에게서 거래의 실감(實感)을 앗아갔다.


온라인 쇼핑몰의 매끈한 사진 속 고등어에는 비린내가 없고, 사과에는 흙냄새가 없다. 우리는 물건의 물성을 느끼지 못한 채, 데이터로 환원된 상품을 처리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접점은 완전히 소거된다.


반면, 전통시장은 소란스럽다. "오늘 갈치가 아주 실해!"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 흥정하는 소리, 짐수레가 지나가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바닥은 질척거리고 냄새가 섞여 있다.


많은 현대인이 이 불편함을 기피하지만, 아날로그의 방주를 짓는 사람에게 시장의 이 소란스러움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침묵하는 거대 시스템(새벽 배송)이 멈추는 날, 우리가 달려가야 할 곳은 바로 이 시끄럽고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2. 오감을 깨우는 야생의 훈련장


온라인 쇼핑은 우리의 감각을 퇴화시킨다. 우리는 좋은 물건을 고르는 능력을 상실했다. 대신 별점과 판매량순 정렬이라는 타인의 데이터에 의존한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니,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 사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된 것이다.


전통시장은 무뎌진 우리의 오감(五感)을 깨우는 가장 치열한 훈련장이다.


이곳에서는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지 않는다.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 참기름집 앞을 지나며 고소한 냄새로 품질을 가늠하고, 과일 가게에서 배를 들어 무게를 느껴보고, 생선 가게에서 아가미 색깔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사장님, 이거 오늘 들어온 거 맞아요?"라고 묻고 상인의 눈빛과 목소리 톤을 살피는 과정은 고도의 심리전이자 소통 훈련이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내 몸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진짜와 가짜, 신선함과 부패함을 구별해 내는 야생의 감각을 복구하는 과정이다. 이 감각이 살아나야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나에게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획득할 수 있다.


3. 계산기가 없는 관계: 흥정과 덤


디지털 거래는 정확하다. 10원 한 장의 오차도 없이 딱 떨어지는 정가(定價)의 세계다. 효율적이지만 차갑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장에는 디지털 계산기가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마법이 있다. 바로 흥정과 덤이다.


에이, 사장님. 멀리서 왔는데 콩나물 조금만 더 줘요.


아이고, 남는 것도 없어. 알았어, 옛다 가져가!


흥정은 단순한 가격 깎기가 아니다. 그것은 상인과 손님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 맺기의 의식이다.


그리고 그 끝에 무심하게 얹어주는 `덤` 한 줌. 여기에는 그 어떤 경제학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여백과 정(情)이 담겨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1+1 쿠폰`이 기계적인 마케팅이라면, 시장의 `덤`은 사람 냄새 나는 선물이다.


이 비효율적이고 계산되지 않는 관계들이 쌓여 신뢰가 된다. 재난이 닥쳤을 때, 쿠팡맨은 나를 모르지만 단골 채소가게 사장님은 내 얼굴을 기억한다. 그 덤 한 줌의 기억이 위기 시에 나를 돕는 동아줄이 된다.


4. 최후의 보급기지


우리는 4장에서 현대 문명의 물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유리 턱`인지 확인했다. 전기가 끊기거나 석유 파동이 오면, 전국의 거대 물류 센터는 마비된다. 대형 마트의 진열대는 가장 먼저 텅 빌 것이다.


그때 마지막까지 작동하는 식량 보급소는 어디일까? 바로 전통시장이다.


시장은 지역 기반(Hyper-local)으로 움직인다. 인근 지역의 농부가 키운 채소가 오고, 가까운 항구에서 잡은 생선이 온다. 공급망이 짧고 단순하기 때문에 거대한 시스템 붕괴의 충격을 덜 받는다.


아날로그의 방주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집 근처 시장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두어야 한다. 어디에 쌀가게가 있고, 어디에 약재상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상인들과 얼굴을 터놓아야 한다.


전통시장은 낡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곳은 거대 자본과 플랫폼의 지배로부터 우리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아날로그 베이스캠프이자, 무너진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가장 확실한 거점이다.


이번 주말, 스마트폰의 장바구니를 비우고 진짜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가자. 그 불편하고 시끄러운 걸음 속에, 당신을 살릴 진짜 관계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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