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팔로워는 당신을 구해줄 수 없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벙커에서 나와 공생(共生)의 광장으로

by 이장복

1. 고독한 늑대는 가장 먼저 죽는다


재난 영화나 아포칼립스 물을 보면 흔한 클리셰가 있다. 온몸을 무장하고 벙커에 숨어,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총구를 겨누는 고독한 생존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그런 모습을 강하다고 동경한다.


하지만 현실의 재난에서 그런 사람은 가장 먼저 죽는 1순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남은 생존자는 24시간 내내 주위를 경계해야 한다. 불을 피우고, 식량을 구하고, 망을 보는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한다. 며칠은 버틸 수 있겠지만, 곧 피로가 누적되고 면역력이 떨어져 사소한 질병이나 실수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인류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이나 맹수들을 제치고 지구를 지배한 비결은 딱 하나다. 무리(Group)를 지었기 때문이다.


한 명이 잘 때 다른 한 명이 망을 봐줄 수 있는 시스템. 이것이 인류 생존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당신의 SNS 팔로워 숫자가 1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상관없다. 그들은 당신의 집 앞을 지켜줄 수 없다. 와이파이가 끊긴 세상에서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물리적인 동료 서너 명이다.


2. 프레퍼(Prepper)의 함정: 벙커는 감옥이다


미국 등지에는 지구 멸망에 대비해 지하 벙커를 짓고 수년 치 식량과 총기를 비축하는 프레퍼들이 있다. 그들의 철학은 완전한 고립과 타인에 대한 불신이다. 세상이 망하면 이웃은 모두 내 식량을 약탈하러 올 좀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벙커는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내부의 사람을 가두기도 한다. 식량이 떨어지면? 맹장이 터지면? 우울증이 찾아오면? 벙커 안의 고립된 왕국은 순식간에 고독한 무덤으로 변한다.


진짜 생존 전문가들은 말한다. "통조림 1,000개를 사서 벙커에 숨는 것보다, 통조림 100개를 가지고 이웃 10명과 파티를 여는 것이 훨씬 생존 확률이 높다."


이웃을 잠재적 약탈자로 규정하면 당신은 적들에게 포위된 것이다. 하지만 이웃을 잠재적 동료로 만들면 당신은 방위군을 얻은 것이다. 아날로그의 방주는 폐쇄된 잠수함이 아니다.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을 밧줄로 묶어 파도를 함께 넘는 선단(Fleet)이어야 한다.


3. 분업(Division of Labor): 문명의 최소 단위


전기가 사라지면 우리는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때 혼자서 농사도 짓고, 옷도 만들고, 집도 고치고, 환자도 치료하는 슈퍼맨은 존재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힘이 세서 장작을 잘 패고, 누군가는 손재주가 좋아 도구를 잘 고치며, 누군가는 발이 빨라 소식을 잘 전한다. 심지어 노인은 육체노동을 못 하는 대신, 날씨를 예측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이자, 공동체의 본질이다. 각자가 잘하는 일을 하여 서로 교환할 때, 생존의 효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당신이 아무리 똑똑해도, 당신의 팔로워들이 `좋아요`를 아무리 많이 눌러줘도, 당신 대신 우물을 파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옆집 사는 김 씨는 우물을 팔 줄 알고, 뒷집 박 씨는 그 물을 정수할 줄 안다. 이들을 적으로 돌릴 것인가, 동지로 만들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4. 3명의 법칙: 사회적 최소 안전장치


그렇다고 마을 전체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너무 많은 관계는 오히려 위기 시에 부담이 된다. 딱 3명이면 충분하다.


재난 심리학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확실하게 챙겨줄 수 있는 최소 단위를 3~4 가구 정도로 본다. 당신, 그리고 당신의 왼쪽 집, 오른쪽 집, 앞집. 이 골목길 동맹이 당신의 1차 생명줄이다.


비상 연락망 구축 : 전화가 안 될 때를 대비해, 호루라기 소리나 깃발로 신호를 정해두라.

자원 공유 : 우리 집엔 쌀이 많고 저 집엔 약이 많다면, 물물교환을 약속해 두라.

정기 회합 :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밥을 먹어라. 밥을 같이 먹는 행위(식구, 食口)는 타인을 `우리`로 인식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의식이다.


이 소규모 그룹들이 연결되면 거대한 네트워크가 된다. 방주는 거창한 정부 조직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골목길, 아파트 복도에서 시작되는 작은 연대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5. 생존은 복수형이다


"살아남다(Survive)"라는 동사의 주어는 `I(나)`가 아니라 `We(우리)`여야 한다. 역사상 어떤 재난에서도 혼자 살아남은 개인은 오래가지 못했다. 빙하기를 견디고, 흑사병을 이겨내고, 전쟁을 통과한 것은 언제나 공동체였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를 파편화시켰다.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게 만들며, 옆 사람의 체온을 잊게 했다. "나 혼자 산다"가 유행어가 되고,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날씨가 좋을 때나 가능한 사치다. 폭풍우가 몰려오면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야만 날려가지 않는다.


당신의 팔로워는 랜선 너머의 허상이다. 그들은 전원 버튼을 누르면 사라진다. 하지만 지금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은, 당신이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수 있는 실체다.


이제 벙커의 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가라.

그리고 고립을 택하는 대신, 기꺼이 의존을 택하라.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어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듯, 우리는 서로 기대어 있을 때 비로소 멸종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전 14화전통시장의 소란스러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