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코 예전처럼 접속하지 않을 것이다
상상해 봅시다. 기약 없이 이어지던 정전이 끝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거리의 가로등이 깜빡거리며 켜지고, 집 안의 냉장고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죽어있던 스마트폰 화면에 사과 로고가 뜨고, 밀려있던 수백 통의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다시 인터넷에 접속하고, 배달 앱으로 치킨을 시키고, 안부를 묻는 전화를 겁니다. 문명은 다시 원래의 속도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화려한 디지털 문명이 얼마나 허무하게 꺼질 수 있는 촛불인지. 우리는 느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고요한 밤,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의 온기를. 내 손으로 흙을 만지고 땀 흘려 일했을 때 느꼈던 그 묵직한 실존의 감각을.
전기는 돌아왔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진짜 삶은 액정 화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끝에, 내 머릿속에, 그리고 내 옆 사람의 눈동자 속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물을지 모릅니다. "결국 재난이 오지 않는다면, 그동안 땀 흘려 배운 생존 기술과 아날로그적 습관은 시간 낭비가 아닌가요?"
단언컨대,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는 비가 올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방주를 짓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대정전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 해도,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는 훈련을 한 사람은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검색 대신 사색을 선택한 사람은 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주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SNS의 좋아요 대신 이웃과의 인사를 선택한 사람은 외로움에 무너지지 않는 삶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아날로그의 방주`는 미래의 재난을 대비하는 대피소일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도파민의 홍수와 의미의 가뭄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성소입니다.
이 책은 스마트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자는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기술을 거부하자는 게 아니라,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접속 중독자가 아니라 스위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디지털의 편리함을 누리되, 그것이 나를 삼키려 할 때는 과감히 플러그를 뽑을 수 있는 힘을 길렀습니다.
전기가 돌아온 세상에서도 우리는 가끔 자발적으로 전기를 끌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스마트폰을 끄고 종이책을 읽을 것입니다. 빠른 검색 대신 느린 사색을 즐길 것입니다. 이모티콘을 보내는 대신 친구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생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는 당신에게 마지막 제안을 합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면 형광등을 끄고 작은 촛불 하나를 켜보십시오. 그리고 스마트폰을 잠시 옆방에 두십시오. 그 고요한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며 당신의 손을, 당신의 머리를, 당신의 마음을 가만히 느껴보십시오.
그 적막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평온하게 느껴진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의 방주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이 꺼져도, 당신이라는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