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에 저장된 내 인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탔을 때, 인류는 수천 년의 지혜를 잃고 통곡했다. 하지만 오늘날 만약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서버가 불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아마도 우리는 당장 오늘 저녁에 볼 예능 프로그램과 내일 출근길에 들을 노동요를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문화적 기억 자체를 잃는다.
21세기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음악과 영화, 책을 누리는 세대다. 과거의 왕족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월 1만 원 남짓한 구독료만 내면 내 손안에 펼쳐진다. 우리는 이 압도적인 편리함에 취해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었다.
우리는 그 무엇도 구매한 적이 없다.
우리는 단지 `잠시 열어볼 권리(Access License)`를 구매했을 뿐이다. 서재에 꽂힌 LP판이나 책장에 꽂힌 DVD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심지어 내 자식이 물려받을 때까지 그 자리에 존재한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의 콘텐츠는 다르다. 저작권 계약이 만료되거나, 플랫폼의 정책이 바뀌거나, 혹은 내가 구독료를 낼 돈이 떨어지는 순간, 내 거대한 도서관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2019년 10월 서비스의 갑작스러운 접속 장애와 2020년 5월 세금 체납으로 인한 강제 폐업으로 사용자 데이터 유실 및 서비스 중단 사태를 일으켰던 싸이월드를 우린 경험했었다. 이용자들이 개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아우성이 터져 나왔고, 서비스 종료와 데이터 백업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일어났다.
우리는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가구 하나 내 것이 없는 월세방의 세입자다. 집주인(플랫폼 기업)이 "나가라!"라고 하면, 우리는 빈손으로 쫓겨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실체다.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주는 대신, 소유권이라는 권리를 앗아간 것이다.
접속은 소유가 아니다. 접속은 그저 문을 열어주는 서비스일 뿐이다. 문이 잠기는 순간(재난, 파산, 정전 등) 그 안의 모든 보물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한다고 말한다. 구름(Cloud). 얼마나 낭만적이고 가벼운 이름인가. 마치 나의 추억과 기록들이 저 하늘 어딘가 안전하고 깨끗한 곳에 둥둥 떠다니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기술이 만들어낸 가장 교묘한 은유이자 기만이다.
클라우드는 하늘에 있지 않다. 그것은 차가운 바닷속이나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팬(Fan)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축구장 크기의 데이터 센터 안에 있다.
나의 소중한 일기, 우리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던 영상, 돌아가신 부모님의 음성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회사 창고 깊숙한 곳, 뜨겁게 달궈진 하드디스크의 0과 1 사이에 갇혀 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동기화 버튼을 누르며 나의 뇌를, 나의 기억을 기계에 맡긴다. 그리고는 안심한다. "내 폰이 부서져도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있으니까 괜찮아."
정말 괜찮은가? 만약 그 데이터 센터에 물리적인 타격이 가해진다면? 혹은 해커가 서버를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한다면? 아니, 다 떠나서 전 세계적인 전력망 붕괴가 일어난다면?
그 순간 클라우드는 비를 뿌리는 구름이 아니라, 증발해 버리는 수증기가 된다. 내가 나의 기억을 꺼내보려 하는데 시스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 전기가 없으면 내 아이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황. 이것을 과연 내 기억 또는 내 자산 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리적 실체(Physical Entity)가 없는 정보는 영혼 없는 유령과 같다. 만질 수 없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적어도 위기의 순간에는 그렇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명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에 집착하는 삶보다 존재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디지털 대소멸의 시대가 예고된 지금, 나는 감히 프롬의 명제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
지금은 소유해야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의 소유는 탐욕적 축적이 아니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물리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인터넷이 끊긴 세상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지식은 위키백과에 있고, 당신의 인맥은 인스타그램에 있고, 당신의 재산은 은행 서버에 있다. 로그아웃이 되는 순간, 당신은 지식도, 친구도, 돈도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실존적 빈곤이다.
반면, 누군가는 서재에 백과사전을 꽂아두었고, 친구들의 주소를 종이 수첩에 적어두었으며, 비상금을 현금으로 장판 밑에 숨겨두었다. 평소에 우리는 그들을 촌스럽다거나 비효율적이라고 비웃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불이 꺼진 밤, 진짜 부자는 바로 그들이다.
디지털 문명은 우리에게 가벼움을 선물했다. 우리는 더 이상 무거운 책이나 CD, 앨범을 이삿짐으로 나를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하나면 족하다. 하지만 그 가벼움의 대가는 혹독하다. 우리 삶의 무게중심이 내가 아닌 네트워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스마트폰을 부수고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다. 기술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술에 대한 의존을 통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설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디지털의 바다에서 유영하되, 언제든 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닻을 내려야 한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다운로드와 물성의 회복이다.
가장 아끼는 사진을 인화하라. 액정 뒤의 픽셀이 아니라,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으로 추억을 만져라. 인생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전자책이 있다면, 종이책으로 다시 구매하라. 전기가 나가도 당신의 영혼을 위로해 줄 문장은 종이 위에만 남는다.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면, 가능하다면 CD나 LP, 혹은 적어도 MP3 파일 형태로 로컬 저장 장치에 담아두라.
그리고 머릿속에도 다운로드해야 한다. 검색하면 나온다는 핑계로 외우지 않았던 가족의 전화번호, 집으로 가는 길, 응급처치법을 당신의 뇌세포에 직접 새겨 넣어야 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접속을 끊는다. 그때 당신의 배낭 속에, 당신의 서재에, 그리고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들. 오직 그것만이 진짜 당신의 것이다.
이제, 접속을 멈추고 소유를 시작하자.
이것이 아날로그의 방주를 짓는 첫 번째 못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