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이 끊긴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날 아침은 기묘한 침묵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평소라면 머리맡에서 울려야 할 스마트폰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더듬거려 찾은 휴대전화의 화면은 차가운 검은색이었습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봤지만, 화면 중앙에 떠오르던 익숙한 사과 모양도, 로고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충전을 깜빡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을 때, 나는 비로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습니다.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한동안 듣지 못했던 벽걸이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가 들렸으며, 창밖 거리의 가로등마저 검게 죽어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정전(Blackout)`에 잠긴 것입니다.
처음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은 당황해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21세기의 기술력을 믿었으니까요. 곧 전력을 복구할 것이고, 통신사의 중계기는 다시 신호를 쏘아 올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전기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상단의 안테나 신호는 영원히 `X` 표시로 남았습니다.
진짜 재앙은 굶주림이나 추위보다 더 빨리, 더 은밀하게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실의 자각`이었습니다.
데이터 센터가 멈추자, 내가 평생 모아 온 자산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은행 서버에 접속할 수 없게 되자 내 통장의 숫자는 `0`이 되었습니다. 클라우드에 올려두었던 아이의 성장 기록, 10년 치의 사진과 영상, 업무 자료들은 비밀번호를 입력할 창이 사라지자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습니다. SNS로 연결되어 있던 수천 명의 팔로워와 친구들은 네트워크가 끊기자마자 타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 꺼져버린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 그 `검은 거울(Black Mirror)`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낯설고 무기력한 한 인간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거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접속할 수 있으면 그것을 내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빌려 쓰는 삶이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지식은 내 지혜가 아니었고,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은 물건은 내 재산이 아니었으며, 얼굴을 마주하고 숨결을 나누지 않은 관계는 내 편이 아니었습니다.
디지털 문명이 쌓아 올린 그 화려한 바벨탑은, 전력 공급이라는 가느다란 탯줄이 끊기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이었습니다.
전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갑자기 원시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동네 길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전화번호 하나 외우지 못하며, 검색 엔진 없이는 약초와 독초를 구분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젖꼭지가 사라지자 우리는 단 10분의 지루함조차 견디지 못해 불안에 떨었습니다.
우리는 진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편리함에 길들여져, 인간 고유의 감각과 생존 능력을 기계에 외주화 하고 퇴화해 버린 것입니다.
이 책은 다가올지 모를 대재앙에 대한 예언서가 아닙니다. 통조림을 사 모으고 벙커를 파라고 권하는 생존 매뉴얼도 아닙니다. 이것은 디지털 문명이라는 껍질이 벗겨졌을 때, 그 안에 남을 진짜 인간의 알맹이를 되찾기 위한 철학적 제언입니다.
모든 것이 멈추는 날, 우리를 구원할 `방주(Ark)`는 첨단 기술로 만든 우주선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흙을 만지고 도구를 쥐는 거친 손입니다. 검색하지 않고 사색할 줄 아는 단단한 뇌입니다. 그리고 이모티콘 뒤에 숨지 않고 타인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디지털의 바다를 건너 `아날로그의 방주`를 짓는 법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 방주에는 전기가 필요 없는 종이책의 지혜와, 몸으로 익힌 기술, 그리고 서로를 지켜줄 이웃과의 신뢰가 실릴 것입니다.
설령 전기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인간의 존엄과 문명의 불씨만큼은 꺼트리지 않기 위하여.
이제, 당신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진짜 세상으로 접속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