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화살표가 사라진 곳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꽂고 내비게이션 앱을 켜는 것이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친절한 기계음이 들려온다. "경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운전자가 아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지시하는 대로 핸들을 돌리는 생체 로봇이다.
"30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기계가 시키는 대로 꺾는다. "잠시 후 지하차도입니다." 시키는 대로 들어간다. 우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지 않는다. 내가 지금 북쪽으로 가는지 남쪽으로 가는지, 이 도로 옆에 어떤 강이 흐르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화면 속의 파란 화살표와 남은 시간에만 고정되어 있다.
이것은 운전이 아니라 배송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목적지라는 좌표로 가장 효율적으로 배달하고 있을 뿐이다. 택배 상자가 배송 트럭 안에서 바깥 풍경을 기억하지 못하듯, 우리도 이동하는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 터널 안에서 GPS 신호가 끊기거나 배터리가 방전되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미아가 된다. 매일 다니던 길인데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낯선 정글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자기 위치를 모르는 인간은,
자기 존재(Existence)의 좌표도 잃어버리기 쉽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내비게이션 의존증은 명백한 뇌 손상을 초래한다.
영국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더 날리지(The Knowledge)`라는 악명 높은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런던의 복잡한 2만 5천 개 도로와 랜드마크를 내비게이션 없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내야 한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연구에 따르면, 이 훈련을 거친 택시 기사들의 뇌는 일반인보다 해마(Hippocampus)의 뒷부분이 비대하게 발달해 있었다. 해마는 공간 지각과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다.
반면, GPS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해마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뇌는 "기계가 길을 다 알려주는데 굳이 에너지를 써서 지도를 그릴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하고, 공간 지각 능력을 폐기 처분하는 것이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인지 지도(Cognitive Map)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좌회전, 우회전"이라는 단편적인 명령코드만 남았다. 인지 지도가 없는 인간은 세상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눈앞의 갈림길에서 허둥대는 근시안적인 존재가 될 뿐이다.
내비게이션은 우리에게 최단 거리와 최소 시간을 선물했지만, 그 대가로 방황의 즐거움을 뺏어갔다.
과거에는 낯선 도시에 가면 지도를 펴고 두리번거려야 했다. 길을 잘못 들어 골목길을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그 헤맴의 과정에서 우리는 뜻밖의 예쁜 카페를 발견하고, 현지인들의 삶을 엿보고, 우연히 마주친 낯선 풍경에 감동했다.
효율성이라는 잣대만 들이대면 길을 잃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실패다. 하지만 여행의 관점에서, 그리고 인생의 관점에서 길을 잃는 것은 탐험이다.
GPS가 멈춘 세상에서, 우리는 다시 길을 잃을 권리를 되찾는다. 파란 화살표가 사라진 자리에는 태양의 위치와, 바람의 냄새와,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이 들어온다.
우리는 화면(2D)이 아니라 세상(3D)을 보며 걷게 된다. 고개를 들어 건물의 간판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길을 묻는 행위는 타인에게 나의 무지를 고백하고 도움을 청하는, 가장 인간적인 소통의 시작이다.
아날로그의 방주를 지휘할 선장인 당신에게 필요한 기술은 `웨이파인딩(Wayfinding)`이다.
이것은 기계가 알려주는 경로(Navigation)와 다르다. 웨이파인딩은 주변의 단서들을 종합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본능적 감각이다.
랜드마크를 설정하라 :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스몸비(Smombie)가 되지 말고, 고개를 들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보라. 저 멀리 보이는 높은 타워, 특이한 모양의 산, 큰 강을 기준으로 나의 위치를 삼각측량하라.
태양을 읽어라 :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진다. 그림자의 방향만 봐도 대략적인 방위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보이스카우트의 놀이가 아니다. 전기가 끊긴 도시에서 당신이 동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존 본능이다.
길을 미리 그려라 : 출발하기 전, 지도를 보고 전체적인 경로를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하라. "큰 사거리에서 병원을 끼고 우회전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라.
인간은 본래 호모 비아토르(떠도는 인간, 여행하는 인간)였다. 우리는 두 발로 대지를 밟으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내비게이션이 꺼지는 날, 우리는 비로소 진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알고리즘이 정해준 효율적인 경로(Route)가 아니라,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만들어지는 길(Path)을 걷게 된다.
그 길 위에서 당신은 불안할지도 모른다. "이 길이 맞나?" 수없이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라. 당신이 걷는 그곳이 길이다.
화면 속의 파란 화살표가 멈췄을 때,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나침반 바늘이 돌기 시작한다.
그 떨림을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