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dd Aug 18. 2023

약국 찾아 삼만리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하기는 민망하지만, 매물 서칭을 마음먹은 뒤로 2주 간 약국 매물 중개 사이트도 들락거리고 중개인들도 컨택하며 두 개 정도의 매물을 받아봤다. 요즘은 기발한 방법이 많이 생겨서 내가 원하는 지역과 규모를 설정해 놓으면 알맞은 매물이 뜰 때 문자가 오는 서비스까지 있어 여기저기 문자는 많이 오는데, 사실 나에게 문자까지 오는 매물이 가성비 좋고 안전한 매물일 확률은 매우 낮다. 2년 전 처음 알아볼 때는 문자 내용 모두 곧이곧대로 믿고 임장 가보면 말장난하거나 사기 매물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문자 내용에서 어느 정도 드러내지 않는 진실들과 말장난이 보여 필터링하기는 하지만 사기 치려는 사람을 어떻게 당해내겠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2년 전에 알아볼 당시 터무니없는 컨비+ 임대료+ 지원금 요구하며 안 한다고 하면 뭘 모르신다고 비아냥 거리는 아저씨부터 전화 응대부터 '할 거 아니면 보러 오지 마세요' 하던 인성 파타난 젊은 애까지 별별 중개인들을 만나며 아무리 좋은 매물이어도 저런 넘들과는 절대 연락 안 해야지 다짐했어서, (좋은 물건도 아님) 이번에는 그래도 믿을 만 해 보이는 곳으로만 연락을 했다.  이번에 임장 갔던 곳에서 만난 중개인 분은 그래도 자료도 정확히 뽑아와 주시고 매출이나 조제에 대해서도 과장하지 않고 솔직히 말해주셔서 신뢰가 갔다.

 내가 본 약국은 매우 오래된 약국이었고 임대료를 빼면 그렇게 수익이 크지는 않은 상태였다. 다만 위치가 매우 좋았고 1인 약국으로 시작해 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투자되는 금액이 대출 안에서 해결되는 정도라 백 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 회로를 돌려봤다. 리모델링을 하고 내가 들이고 싶었던 약들과 건기식으로 일단 나만의 사업을 시작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 욕구가 들어 나의 마음은 거의 계약 직전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다만 관록 있는 국장님들의 고견도 들어봐야 했으므로 개국한 친구들과 선배들, 전 직장 국장님께도 여쭈어봤다. 결과는 만장일치로 반대(ㅠㅠ) 일단 수익이 근무 약사에 비해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고 1인 약국으로 직원도 없이 일하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수익에 비하면 투자되는 돈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고, 그것을 생각했을 때 내가 이 약국을 운영하다 넘긴다고 한들 그게 회수가 될 지도 불분명하다는 의견.

 나는 수익 측면에서는 리모델링 후 내가 늘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자리가 좋았기 때문에) 현재 남는다는 수익도 내 기준에서는 적지 않았다. (국장님들은 이미 자리 잡고 많이 벌고 있기 때문에 나와 눈높이가 다를 수도..) 그러나 냉정히 따져 봤을 때 리모델링 돈 주고 한다고 해도 매출 상승이 극적으로 크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도전 욕구로 시작하기에는 성과가 그만큼 보이지 않았을 때 감당할 리스크들이 있어 고사하였다.

 2-3일 정도 고민한 매물인데 막상 포기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아까운 건 아니고 그냥 개국은 너무 어렵고 까마득해 보여서 미래가 암담해지는.. 내 인생의 성취들을 주변과 비교했을 때 너무 부족해 보여 며칠 간 현타가 왔다.

 그래도 언제든 주저 없이 물어볼 수 있고, 그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해 주고 알려주는 지인들이 있어 행운이라 생각했다. 특히 대형 약국을 운영하는 국장님이 운영에 대해 여러 조언을 해주셨는데, 몰랐던 내용들이 많아 정리도 해두었다. 다들 인생은 길고 일은 평생 해야 하니, 현재를 즐기고 조급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여 줘서 고마웠다.

 예전에 개국을 알아볼 때 정리해 둔 노션이 생각나 정리할 겸 약 1년 만에 들어가 봤는데 다시 보니 아주 값진 기록들이다. (물건들 자체는 노답이었지만) 노션을 만들어주고 정리해 준, 전에 만났던 친구의 다정함은 이런 방식이었구나 좀 찡하기도 했다. 비록 나보다는 본인이, 본인 자신보다는 일과 돈으로 이루고 싶은 야망이 우선인 사람이었어서 크게 상처받고 끝난 건 맞지만 여전히 나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나는 동안 나도 발전한 게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기에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오늘 낮에는 예전에 봤던, 성업 중인 병원이 두 개가 있는데 약국이 없다고 알바 약사님이 알려주셨던 곳에 다시 한번 가봤다. 당시 갔을 때는 상가 안을 둘러보고 약국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그냥 나왔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제대로 알아보고자 다시 한번 둘러보고 경비아저씨께도 물어봤다. 아저씨는 건물 사정은 모르신다며 관리실로 가보라고 하셨는데 막상 당돌한 척하고 혼자 가려니까 쫄리고 무서웠음. 아 어차피 자리 없으니까 약국 못 들어온 걸 텐데; 하며 그냥 가려다가 그래도 찝찝하느니 한 번 가보자 해서 관리실까지 가봤다. 의외로 친절한 여자 직원분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런 문의가 몇 년 전부터 아주 많았는데 정말 자리가 없고 만약 생기더라도 이미 대기 중인 분들이 많아서 안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역시 그럼 그렇지.. 싶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사정을 알게 된 것에 의의를..


 앞으로도 알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이제 슬슬 파트타임을 구해 일을 해야겠다. 나는 너무 노는 것도 체질에 안 맞는 것 같다. 문득 평생 이렇게 재미도 없고 성취도 없는 상태로 살게 되면 어쩌지 두렵기도 하지만 모든 게 나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이니.. 좀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 뭐.. 이래서 다들 로또 중독되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후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