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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댓츠올 Apr 05. 2024

너는 꾸준한 사람이야

3월의 사슴탐사

아침에 작업실에 가려고 준비를 하며 이를 닦던 중, 스마트워치의 알람이 울렸다. 갑자기 웬 알람일까 싶어 시계를 확인해 보니,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지금 수영 운동 중이세요?"


이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수영? 싶어서 생각해 보니 칫솔질을 하며 팔을 흔드는 행위를 수영하는 걸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왼손잡이는 주로 오른 손목에 시계를 착용하는 편이라던데, 나는 교정당한 왼손잡이라 그런지 스마트워치도 그냥 왼팔에 찬다. 그런데 칫솔질은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하고. 이 메시지를 받은 후 주변 오른손잡이들에게 혹시 너희들은 칫솔질을 오른손으로 하니? 물어보니 다들 그렇다고 해서 이것 또한 새삼스럽다고 느꼈다.


스마트워치가 내게 '지금 수영 운동 중'이냐고 물어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수영을 시작한 뒤로 나는 매주 화목 요일 오전 아홉 시에 수영강습을 듣고, 그 외에는 비정기로 자유수영을 추가로 하는 루틴을 가져왔는데, 그때가 마침 화요일 오전 아홉 시경이었던 것이다. 


화요일 오전 아홉 시경, 일정 패턴으로 팔을 흔드는 행위를 바탕으로 워치는 내게 "지금 수영 운동 중이세요?" 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때 수영 운동 중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은 1년을 주기로 수영 수강생 신규모집을 다시 받는데, 나는 치열한 수켓팅에 탈락하여 수영장에 가지 못한 채 이나 닦고 있었으니까. 고정적인 화목 요일의 수업은 사라지고 당분간은 자유수영을 다니겠지만 수켓팅에 실패한 뒤 조금 나이브해진 마음을 다잡아주는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는 꾸준한 사람이야.'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건 아니었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고 평영이 안 될 때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게으름이라는 실패의 언어로 치부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의 긴 연결성 속에서 나는 그럼에도 제법 꾸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스마트워치가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렇듯 가끔 많은 걱정들이 쏟아져서 그 더미에 파묻혀 숨죽이고 있고 싶다가도 내가 꾸준히 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조금 힘이 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일단 해 나가는 것을 택한다. 그러고 나면 내가 부정적인 언어로 나를 덧씌울 때, 내가 한 것들이 또 기다란 선을 만들면서 '너는 꾸준한 사람이었어'라는 메시지를 줄 것만 같아서.


2월에 긴 여행을 다녀온 후 3월은 잔잔하게 보내면서도 크고 작은 걱정들이 나를 덮쳤다. 사실 걱정들은 늘어놓고 보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걱정을 빨래처럼 늘어놓고 나면 외면하고 싶고 짜증 나지만 그나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걱정 쪽이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수영 수업을 등록하지 못해서 수영 배울 수 없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자유수영이라도 가서 수영을 하는 것은 내가 해결 가능할 수 있는 과제이다. 작은 예시지만 나를 이루는 걱정들의 대부분을 이런 식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어진다. 그래서 막막할 땐 하나하나 해 나가 보자고 다짐한다.


올해는 꽃들이 예년보다 늦게 피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3월의 끝자락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코트깃을 여미고 있었다. 그러다 3월이 끝나갈 마지막주쯤 되자 목련과 개나리와 진달래가 탄성처럼 꽃잎을 펼쳤다. 벚나무 가도 빨갛고 뾰족하게 붉어지면 꽃이 필 준비를 한다. 다들 꾸준하게 겨울을 보내며 봄에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렸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약간 조급해지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추울 땐 추워서 환할 땐 환해서 입을 삐죽이라는 마음이라니 참 못났다. 조급한 마음 한쪽은 질투일 것이고 안심하는 마음 한쪽은 너른 환대일 것이다.


꽃이 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한 며칠의 시간이 있었다. 때로는 두 가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나의 모순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 어두운 마음이 분명 있는데도 없는 척하고 살진 말아야지. 나에게는 없는 것이 꽃들에게는 일찍 찾아온 듯해 가라앉은 마음을 여몄다. 하지만 요즘은 환한 꽃길을 기꺼이 걷는다. 모든 것의 속도가 같을 수는 없으니까 계절에 다가온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 


다시 이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짙은 초록으로 변하겠지. 

그때는 어딘가에 움트고 있을 나의 꾸준함도 또 다른 새로운 빛깔을 입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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