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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Jan 15. 2022

리뷰: The Weeknd – Dawn FM

#1. 페티시즘을 넘어서려는 페티시즘의 역설적 매력

*일러두기: 매 해의 컨템포러리 앨범 리뷰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매주 발매되는 올해의 국내/해외 신보들을 다룹니다.    


  요즈음 위켄드는 살아있는 밈(meme)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FKA 트윅스의 신보 “CAPRISONGS”(2022, Young)의 싱글 ‘Tears in the Club’이 발매되었을 때, 피처링이랍시고 양상추 머리를 하고 나와 앉아 있는 위켄드, 그러고서는 수조 안에 갇힌 트윅스를 무표정으로 응시하고 눈물을 죽죽 흘리며 읊조리듯이 노래하는 위켄드의 어딘가 얼빠진 얼굴은 트윅스가 매번 연출하는 숭고한 비극의 분위기와 대비되어 우스꽝스러웠다. 질세라 공개된 “Dawn FM”의 커버도 ‘Tears in the Club’ 속 위켄드의 밈적 위력에 지지 않았다. 믹스테잎을 제외한 대부분의 앨범들에 자신의 초상을 집어넣는 위켄드지만 “Dawn FM” 속 위켄드의 얼굴은 유례 없이 강렬해, 입에다 피칠갑을 하고 나온 전작 “After Hours”(2020, XO)는 생각도 나지 않게 한다. 검은 배경 위에 곰팡이 핀 듯 희멀건하게 센 위켄드의 양상추 머리와 너저분한 수염, 검버섯과 주름으로 뒤덮인 축 처진 거죽,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를 뚜렷이 응시하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맑은 눈은… 위켄드 씨, 당장 희극인으로 데뷔하십시오.


  지난 10년 간 장르음악시장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레트로 페티시즘이었다. 페티시즘에 ‘좋은’이라는 수사를 붙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잘 되는’ 혹은 ‘정합적인’ 페티시즘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는 있다. 이는 자연스레 있던 것, 그러니까 세계나 총체 (속)의 하나로 있던 것을 철저히 탈맥락화하고 단절시켜 고립된 이미지 조각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표류하는 이미지 조각들을 예컨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작업처럼 뒤죽박죽 콜라주해, 사람들이 보고 반해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미지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르음악 소비자들과 보통 대중을 아우르며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 괴물’을 원하던 시장이 이미지를 찢어낼 타깃으로 삼은 것은 ‘레트로’, 그 중에서도 70년대 말 뉴 웨이브의 세례를 받은 신스 음악들이었다. 이것들을 자르고 붙여 키치함과 캐치함을 발견해 기워내고 팝 페티시즘의 정점에 도달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테임 임팔라는 ‘세기적인’ 앨범 “Currents”(2015, Modular)를 통해 레트로 페티시즘의 이념형에 도달함은 물론 차원을 넘어 미래적 팝 음악의 상으로까지 항해해 나갈 수 있었고, M83에서 두아 리파에 이르는 여러 뮤지션들이 이러한 방법론으로 재미를 봤다. 한편 뮤즈의 8집 “Simulation Theory”(2018, Warner Bros.)는 이를 어설프게 따라 하려다 보기 좋게 와장창 무너진 실패 사례다.


  위켄드가 연출하는 이미지가 갖는 밈적인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레트로 페티시즘에 관한 이야기로 샌 것은, “Dawn FM”의 정체성이 이 둘이 교차하는 데에서 피어나는 역설로부터 포착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본 “Dawn FM”의 커버 속 위켄드의 얼굴은 밈이다. 밈은 레트로 페티시즘의 방법론 속에서 포착되는 조각난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 반대로, 앨범 커버 속 위켄드의 얼굴은 “Dawn FM”의 서사와 성격 그리고 주장을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Dawn FM”은 컨셉트 앨범이다. 내러티브를 따라 걸어가기 위한 컨셉트 앨범이다. 우리가 보았던 여러 장치들은 곧 ‘늙음’의 시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수렴하는데, 오랜 시간을 걸어간 끝에 삶의 필멸성을 목전에서 맞닥트린 끝에야 우리는 관계성의 서사들 속 선택과 후회의 감정들을 마침내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위켄드는 새벽 라디오 음악 방송을 쭉 따라 들으며,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신스 팝 음악들의 노랫말과 DJ의 독백 속에 이러한 자기서사의 되새김에 다다르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Dawn FM”을 기획한 것 같다. 아, 여담이지만 이 앨범에서 중간중간 등장하는 DJ 역할을 맡아 나레이션을 해 준 것은 무려 우리 시대의 희극인 짐 캐리다.


  “Dawn FM”은 레트로-페티시즘이 성취해내려는 사운드를 끊임없이 추구함과 동시에 그러한 ‘페티시즘’들이 으레 박살내려고 하는 서사의 총체성 역시 지향하는 역설의 매력 속에 전진한다.


  앨범을 재생하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사운드의 탁월함과 동시에 80년대 신스 음악에 대한 지독한 향수일 것이다. 리버브의 짙은 잔향을 묻힌 텍스처를 쌓아 올리는 오프닝 트랙에서부터 앨범 내내 장점으로 드러나는 신스의 질감은, 80년대 신스 사운드에 대한 근사한 재현감을 선사하고 특히 전반부에서 위력을 십분 발휘하며 SF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인연과 마주치며 로맨스가 점화되던 순간을 다시 생각해보는 앨범의 세 번째 트랙 ‘How Do I Make You Love Me?’에서 위켄드는 숱한 이들이 스쳐 지나가던 옛 디스코텍의 리듬을 훌륭히 이식해냈다. 그렇지만 가장 기가 막힌 순간은 트랙이 끝나고 다음 넘버 ‘Take My Breath’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위켄드의 팔세토를 넘나드는 보컬,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능적인 베이스 리프는 훵크와 디스코 혹은 이것들을 흡수한 다프트 펑크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연상케 하는데 가히 압도적이다. 작년 재패니스 브랙퍼스트의 싱글 ‘Be Sweet’이 가졌던 팝적 감각의 힘, 혹은 테임 임팔라의 ‘The Less I Know the Better’의 캐치함을 두루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몇 트랙째 시종일관 유사한 신스 텍스쳐 위에서 펼쳐지는 사운드메이킹은 종종 평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환기를 돕는 것은 일종의 스킷인 6번 트랙 ‘A Tale by Quincy’다. 이름 그대로 앨범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거장 퀸시 존스가 막장 같은 가족사를 거치며 느낀 회한을 덤덤히 짚고 넘어가주는 것인데, 퀸시 존스는 그래서 엄마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완결되지 않은 질문을 남긴 채 다음 트랙 ‘Out of Time’으로 넘겨준다.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티 팝 혹은 칠웨이브의 나른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시작되는데, 유기적이고 절묘한 연결이 꽤나 재미있다.


  이렇게 앨범을 따라가다 보면 잊을 만한 때 즈음 DJ 짐 캐리의 조곤조곤한 나레이션이 등장해 생각을 갈무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동시에 우리가 새벽 라디오 방송을 쭉 따라 듣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다. 이러한 컨셉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라스베가스 사막을 운전해 간다는 설정을 가진 퀸스 오브 에이지의 스토너 록 앨범 “Songs for the Deaf”(2002, Interscope)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Out of Time’이 끝나고 다시 랩을 시작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등장해 ‘WILSHIRE’의 나른한 템포를 연상시키며 말을 이어가는 트랙 ‘Here We Go… Again’이 시작되는 사이에서도, ‘Starry Eyes’에서도 나레이션은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DJ의 나레이션이라는 설정을 활용하는 것이 음악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80년대 커머셜을 재현하며 8비트 광고 음악의 텍스쳐를 키치하게 연출하고, 다음 트랙의 보컬로 넘겨주는 ‘Every Angel Is Terrifying’이다.


  “Dawn FM”은 라디오 방송이라는 설정 속에 훵크, 디스코, 신스 팝 등 뉴 웨이브 유행 시기 장르음악들의 정서들을 두루두루 넘나들며 팝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잘 취해낸, 동시에 탄탄한 내러티브의 힘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그래서 위켄드 디스코그라피의 이전 앨범들과는 분명히 궤가 달라 R&B 앨범으로 보기는 힘들어지게 되었다. 한 편으로 “Dawn FM”을 이야기할 때에 좀 더 언급되어야 하는 것은, 앨범이 맥시멀리즘적으로 힘을 줄 때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뉴 웨이브의 뿌리이기도 한 포스트 펑크의 정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뉴 웨이브로 계승되어가기도 했던 특유의 방법론, 요컨대 미니멀한 드럼과 베이스 라인 위에 간결하게 얹는 멜랑콜리함이 중간중간 귀에 들어오는데, ‘Less Than Zero’를 들으면서는 신스 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 뉴 오더의 포스트 펑크 사운드가 연상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전반부에서는 피로하게 힘을 주고 점점 이완되는 사운드를 고려할 때에 조금은 컴팩트하게 나왔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앨범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점. 하지만 서사적 지향이 분명한 앨범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다. 그 외에는, 앨범에 관한 것은 아니고… 데뷔 믹스테잎 동기 위켄드는 이렇게 성실히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프랭크 오션 선생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느라 2022년에도 신보 소식이 없단 말입니까. ㅠㅠ.


“Dawn FM”, the Weeknd


2022년 1월 7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신스 팝, 댄스 팝
레이블: XO, Republic
평점: 7.6/1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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