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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Feb 26. 2022

리뷰: yeule – Glitch Princess

#11. 표류하는 '포스트 팝'의 경계성

  대중음악의 몇 세대 뒤, 혹은 팝이라는 장르음악의 몇 세대 뒤를 만화경처럼 미리 보여주는 앨범들이 있다. 25년 전 뷰욕의 “Homogenic”(1997, One Little Indian / Elektra / Mother / Polydor)이 그랬고, 카녜 웨스트의 일탈적이고 혁신적이었던 앨범 “Yeezus”(2013, Def Jam / Roc-A-Fella)가 그랬다. 이것들은 공통적으로 일관되고 총체적이며 확고한 장르음악의 경로를 정립하려는 성격의 앨범이 아니었다.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니카, 인더스트리얼 등 여러 장르적 공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며 인상들을 제 멋대로 잘라 붙이고, 병렬되게 늘어 놓은 분절적인 콜라주 속에서 여러 요소들이 헐떡이며 경합하게 만드는, 이탈의 미학 위에 선 사운드 디자인이 이 아방가르드적인 앨범들의 정체성이었다. 대형 음반 유통사와 피지컬 릴리즈의 포디즘적 공간을 뛰어넘어 자생적, 대안적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음악이 유통되는 해체적 시장 질서의 시대가 들어선 2022년, 올해에는 율의 신보 “Glitch Princess”가 미래적 팝 음악의 청사진을 당당히 들고 나왔다. 


  얼핏 보면 서울특별시 마포구 주민일 것 같은(?) 율은, 싱가포르 출신으로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1997년 생 싱어송라이터다. 그를 어린 나이부터 대중음악시장과 매개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사운드클라우드와 밴드캠프였다. 이것들은 아마도 라디오헤드가 15년 전 “In Rainbows”(2007, Self-released / XL)을 통해 벌였던 실험의 유산이다. 영국의 팔로폰과 미국의 캐피톨 레코즈를 소유했던 굴지의 레이블 EMI와 결별한 라디오헤드는 신보를 레이블을 거치지 않은 채 온라인을 통해 대중에게 직접 공개하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음원 파일을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가격을 직접 책정하여 구매해 갈 수 있도록 했다. “능력에 따른 노동,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맑스주의의 테제를 음악생산에 이식하고 자기들의 앨범을 ‘사회화’하는 이 실험 속에서 리스너들은 앨범을 심지어 공짜로 사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n Rainbows”는 창작노동을 통해 일궈낸 잉여가치를 거대 레이블 EMI에 빼앗기던 전작 “Hail to the Theif”(2003, Parlophnoe / Capitol)를 능가하는 상업적 성과를 톰 요크와 친구들에게 안겨줄 수 있었다. 이는 이미 21세기의 공룡 밴드가 되어 있었던 라디오헤드의 브랜드 가치 덕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창작자와 예술 소비자가 자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매개하는 대안적 예술시장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운드클라우드는 누구나 자신의 작업물들을 공유하고 또 스트리밍 할 수 있는 무료 플랫폼으로 “In Rainbows”가 발매되었던 2007년 문을 열었고, 다음 해에는 밴드캠프가 이와 유사하지만 소비자들이 앨범에 원하는 만큼의 값어치를 매기고 사갈 수 있는 “In Rainbows”의 방식을 차용한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지난한 활동을 통해 레이블의 눈에 띄어 상품성을 인정 받고 ‘발탁’되는 옛 방식을 우회할 수 있게 되며, 독립적인 위치에서 음악을 생산하는 창작자들은 제약 없는 자립음악의 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창작물들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었고, 또 주류 시장의 요구와는 별개의 문법을 드러내는 음악을 할 수 있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사운드클라우드와 밴드캠프를 통해 역량을 발휘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했고, 특히 힙합 씬에서는 사운드클라우드를 경유하는 래퍼들의 프로듀싱과 키치한 사운드 디자인 방식이 ‘사운드클라우드 랩’이라는 장르의 형태로 자리를 잡으며 컬트적 위력을 발휘하거나 메인스트림과 매개되기도 했다.  


  10대의 율이 첫 EP를 릴리즈한 것은 2014년, 역시나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서였다. 이후 여러 장의 EP와 싱글들을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 따위의 대안적 음원 플랫폼들을 통해 공개해 온 율은, 패션과 앨범 아트, 그리고 비전형성을 갖는 로-파이 전자음의 텍스처들로 빚어진 특이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몽환적 분위기와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자기의 세계관으로 구축해 왔다. 정규 앨범을 제작하는 단계에 이른 지금, 율은 이러한 대안적 유통 방식을 여전히 경유하면서도 한층 더 진보한 사운드메이킹을 선보이고 있다. 인상적인 앨범 커버의 데뷔 앨범 “Serotonin II”(2019), 그리고 특히 이번 신보 “Glitch Princess”에서 율의 아방가르드적 감각과 역량은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다. 


  “Glitch Princess”는, 앨범 이름처럼 글리치를 주요한 방법론으로 사운드를 디자인해가는 앨범이다. 글리치는 전자 악기나 전자기기의 오류를 통해 획득되는 맥락 없는 소음들을 텍스처 삼는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하지만 앨범은 “혁신적인 글리치 사운드를 얻어내는 것을 목적 삼아”, 그러니까 글리치라는 장르음악 문법을 핵심적 정체성 삼아 스스로에게 ‘목적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앨범은 아니다. 오히려 율은 과거 그라임즈가 그랬던 것처럼, ‘팝을 만들기 위해’, 하지만 동시에 ‘팝이라는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해’ 팝 사운드를 파괴하고 재건하는 수단으로 글리치 노이즈를 활용한다. “Glitch Princess”에서 목적적인 것이 되는 것은 IDM적 스노비즘이 아니라 장르음악으로서의 팝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동시에 ‘팝’이라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Glitch Princess”의 역설은 어떠한 양극성이나 경계성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곧 앨범에서 율이 드러내는 수행성과 맞닿아 있다. 


  8-비트 글리치와 노이즈로 적막을 연출하며 시작하는 “Glitch Princess”의 첫 트랙 ‘My Name Is Nat Ćmiel’은, 앨범 전체가 그런 것처럼 일종의 자기 진술이다. 


“My name is Nat Cmiel. I am 22 years old. I like music. Dancing ballet. Crushing up rocks and snorting them. And genderless people. I like to eat. But I don't like it when it lingers on my body. I like to take up as little space as possible. I like pretty textures in sound. I like the way some music makes me feel. I like making up my own world. And the people who live inside me. I like to dress up and not going out. I like my cat, Miso. I like touching myself. And I like being far away from my own body. I like sweet things. Physical and consumable. I like short sentences that say everything I felt at one go. I like obsessing over people. And then throwing them away. I like being a boy. I like being a girl. I like getting fucked. And I like to fuck. I like to be pure. I like believing there's a cure. But, most of all, I...”


“내 이름은 낫 치밀이에요. 스물 두 살이고, 음악을 좋아해요. 발레를 하고, 돌멩이를 으깨어 코로 들이마셔요. 그리고 젠더리스들… 나는 먹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음식들이 내 몸에 남아 있으면 끔찍해요… 나는 가능한 한 좁은 곳에 있고 싶어요. 나는 소리의 예쁜 텍스처들을 좋아해요. 어떤 음악들이 나를 감각하게 하는 것이 좋아요. 내 스스로의 세계관을 구축해 가는 게 좋아요. 그리고 내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열심히 꾸미고 나서는 정작 외출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내 고양이, 미소가 좋아요. 나는 스스로를 만지는 게, 그리고 내 몸으로부터 머나먼 곳으로 영영 떠나버리는 게 좋아요. 나는 단 게 좋아요. 물성이 있고 또 소비할 수 있는 것들… 난 내가 감각하는 것들을 모조리 한 번에 뱉어내는 짧은 문장들이 좋아요. 사람들에게 집착하다가, 그들을 내던져버리는 게 좋아요. 소년이 되고 싶어, 소녀가 되고 싶어… 나는 섹스당하고 싶어요. 나는 섹스하고 싶어요. 나는 순수해지고 싶어요. 어딘가에 구원이 있을 거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


  노이즈 텍스처의 간섭을 받으며 왜곡되어 오롯이 수신되지조차 못하는 율의 증언이 내뱉는 것은 병리적 불확실성이다. 스스로를 감각하고 인지하기에는 너무 많은 동인들이 경합하고 뒤섞인다. 율의 자기진술은 다소 도착적이고 다소 ‘수행’적이나 어떤 정체성도 욕구도 욕망도 단정적이고 확실하지는 못하다. 해리적 자기진술은 혼재 삽화처럼 피어나는데 이것이 선사하는 병리적 감각과 모호성은 “Glitch Princess” 속 율이 경험하는 디스포리아의 세계를 지시해 간다. 


  이후 신경증적 가사의 ‘Electric’에서부터 펼쳐지는 앰비언트 팝 사운드는 율의 가성 보컬과 뒤섞이며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그려낸다. 이는 FKA 트윅스가 “LP1”(2014, Young)에서 숭고하게 빚어냈던 소리들을 연상케 한다. 보컬 텍스처를 화음으로 겹쳐 쌓고 후반부에서는 비대한 전자음과 경합시키는 ‘Eyes’에서는, 트윅스의 디스코그라피 전반을 아우르는 듯한 인상이 더욱 짙어진다. 옛 드림 팝 혹은 에테리얼 웨이브의 흩날리는 보컬 톤을 연상시키는 쓸쓸한 트랙 ‘Perfect Blue’를 지나, ‘Don’t Be So Hard on Your Own Beauty’에 도달하면, 옛 일본 인디 음악들이나 영국 슈게이징 음악들의 나른함을 가리키는 기타 팝 사운드가 펼쳐진다. 자기파괴적 자기성찰로 일관하던 율은, 여기에서 달곰씁쓸하고도 밝고 덤덤하게, 여유로운 호흡으로 감정을 톺아보는 사람이 된다. 다시금 아픔 속으로 침잠하는 앞뒤의 트랙들 사이에서 이 대비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Too Dead Inside’에서는 인상적인 신스 리프와 리듬 루프를 통해 댄서블한 팝적 감각이 드러난다. ‘Bite on My Neck’에서는 일렉트로닉 요소를 십분 활용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팝 감각이 슈게이즈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록의 질주감과 놀라운 유기성 위에서 뒤섞인다. 뒤따르는 트랙들에서는 인더스트리얼 풍의 공격적이고 분절적인 글리치 사운드들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마침내 우리는 4시간 44분짜리 마지막 트랙 ‘The Things They Did for Me Out of Love’에 도착한다. 공명하는 앰비언트의 사운드 레이어를 무한정 길게 부유하듯 늘여 놓으며 몽환의 세계를 선보이는 마지막 트랙은, 디지털 앨범의 시대를 만나 CD, 바이닐 같은 피지컬 앨범의 분량에 구애 받지 않게 된 ‘앨범’이라는 매체의 성격에 대해 전위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노이즈 잼에 가까운 이 트랙은, 어쩌면 즉흥성에 기초한 라이브로 볼 때 더욱 재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Glitch Princess”의 사운드는 망망대해 같다. 코카인, 섹스, 순애, 육체, 병증과 같은 낱말들이 기표로서만 성립한 채 표류하고, 슈게이징, 앰비언트, 얼터너티브, 인더스트리얼 따위의 장르적 인상들 역시도 기표로서만 성립한 채 표류한다. 위태로운 보컬과 글리치 노이즈들도 표류한다. 관념의 모양들도 무너진다. ‘공주’를 수행하는 논-바이너리 싱어송라이터가 끄집어내는 것은 디스포리아의 근저, 무섭게 도사리고 있는 불확실성이다. 이를 발화하는 “Glitch Princess”는, 팝 앨범이고자 하지만 동시에 팝적 성격이 확실해질 수 없도록 장르적 해명을 회피한다. “Glitch Princess”는 이로서 포스트-팝이 된다. 하지만 이 앨범이 포스트-팝이라는 것의 모양을 선언적으로, 정합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관음적인 시선을 경유할 뿐이다.



“Glitch Princess”, yeule


2022년 2월 4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글리치 팝, 앰비언트 팝, 아트 팝,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일렉트로닉
레이블: Bayonet
평점: 9.1/10 (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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