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도 잔다리의 에반스 라운지에서는 이상의 날개의 뒤를 이어 대만에서 날아 온 쏘리 유스가 공연을 했고, 그 둘 때문에 잔다리를 갔다.
나는 그 즈음 디깅을 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2집 때문에 쏘리 유스를 알게 되었는데, “이름이 왜 이래, 소닉 유스 카피 밴드인가?”가 몇 분 사이에 어떤 침묵 속 전율과 눈물이 되어 있었고… 그 시절 내 자취방 벽에는 쏘리 유스 포스터가 붙었다.
그들의 작년 신보는 특유의 정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이전보다는 다소 고양된 템포 위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데, 이와 달리 2집은 먹먹하고 서러운 응어리와 따뜻함이 얽히고설킨 감정들을 치열한 일관성 위에서 풀어 갔다. 그게 참 좋았고,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그들을 그것도 펌킨스와 같은 날 다시 볼 수 있었던 건 꿈같은 일이었다. 그 둘은 스물 둘 즈음 방구석에 틀어박혀 혼자 기타를 치던 내게 “기타가 내는 소리는 이러해야 한다”라는 금과옥조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여기에 더해 서스톤 무어와 제이 마스키스와 케빈 쉴즈와….)
쏘리 유스의 진면목은 사실 작은 공간에서 잔향이 벽을 따라 명확히 구축되고 소리가 청중을 더 잘 감쌀 수 있는 실내 공연에서 더 압도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때 그들의 공연장은 아예 하나의 세계가 된다. 특히나, 그들의 공연 마지막을 늘 장식하는 Undercurrent에서 끝끝내 터져나오는 그 응어리, 그 파토스가 세계가 된다.
에반스에서 Undercurrent가 흘러 나올 때 조금 울었다. 그러고 2집에 싸인을 받았다. 그들은 “Visit Taiwan!”이라고 적어 주었는데, 내가 대만에 가기 전에 그들이 다시 왔다. 삼락 스테이지에서 Undercurrent를 다시 들었을 때,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부락이 애프터파티 형식으로 상상마당에서 쏘리 유스의 밤 공연을 또 기획해줘서 참 기뻤다. 어떻게 10시에 페스티벌의 교통대란을 빠져나와 1시간 안에 베뉴까지 도착하라는 건지 이해는 잘 안 갔지만, 어찌저찌 도착해 그들이 25년 대한민국에서의 마지막 Undercurrent를 막 시작할 때 쯤 - 그러니까 공연이 끝나기 직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소리의 파도(“사운드월” - 그러니까 “소리의 벽”이기도 하지만 정말 파도에 더 가까운) 한 가운데 휩쓸리는 게 정말, 정말 그리웠다.
모 뮤지션 분과 사담을 나누다 쏘리 유스의 잔다리 공연 얘기를 했더니 “나는 끝나고 밥도 같이 먹었는데 우하하” 라고 하시어 부러워 죽을 뻔 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지앙지앙 선생과 인삿말 한 두마디라도 나눌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꼭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