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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이 문을 닫았다

by 미셸 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내내 몸살로 끙끙 앓다가 오늘에서야 조금 몸이 풀린다. 머리도 멍하고 허벅지며 종아리 근육이 욱신거려서 여행을 갔다 온 이틀까진 걷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배탈설사까지.

어떤 음식의 탓이라기보다는 뱃멀미에 시달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복통이 가라앉으니 뭔가 먹고 싶은 열망이 가득 차 올랐다. 갑자기 떠오른 생선회.

초밥을 먹을까 회를 먹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회를 먹기로 했다. 내기 생선회를 탐하는 건 일본에서 먹은 초밥 한 점의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란걸 육신이 안다. 단체 여행이어서 여행사에서 계약된 곳에서 준비한 식사만 먹을 수밖에 없어서 초밥의 고장에서 생선회 한 점은 초밥에 대한 열망을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일단,

지난달 호주에서 동생이 왔을 때 물회를 사 먹었던 식당으로 정했다. 그때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아주머니는 부추 지짐이 맛있다는 소리에 한 판 더 구워주신 적이 있다. 식당은 시골의 로콜식당 분위기고 깔끔하지 않았지만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가을에는 전어회가 좋다고 해서 우린 전어 물회를 먹었다. 채소가 지나치게 많기는 했지만 양념맛이 딱 입에 맞았었다.


이 동네는 횟집이 세 군데 있다. 예전에 바닷가에 살아서 싱싱한 회를 믿고 먹었지만 여기는 내륙이라 횟집이 있어도 근거 없는 불신으로 찾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이 횟집은 먹은 내력이 있으니 믿을 만하다고 여기고 다시 찾은 것이다.

특히 이 가게는 물회전문이다.


언제나 여름이면 우리 집엔 물회가 빠지지 않았었다.

게절에 따른...싱싱한 소라고둥. 한치. 전복. 전어등. 특히 물회는 한여름에 입안이 얼얼하도록 차갑게 먹는 것이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뚫어준다. 맛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재료에 따라 된장. 고추장을 풀고 오이든 무든 채를 썰고 얼음물을 넣어 먹는다. 식초도 꼭 넣는다.

이제 물회를 양푼에 가득 만들어 주시던 부모님들이 안계시니...누가 물회를 만들어 주나. 사먹는 수밖에.


횟집 앞에 도착. 낮 12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가게 앞에 어수선한 것이 뭔가 정리를 하는 분위기고 실내엔 손님이 아무도 없다.

'가게를 그만 두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데 갈까?"

딸은 실내로 들어가 기웃기웃 하더니

"주인이 없는거 같아" 그런다.

이상하게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발길을 돌리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가게 문 밖에서 걸어온다.


"식당 해요?"


라고 물으니 한다고 한다. 차라리 안 한다고 하기를 바랐는데... 이때 또 딸의 행동은 민첩하다.

주인의 말을 듣자마다 망설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할 수없이 따라 들어간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보니 벽에 붙었던 음식 가격표가 다 떼어져 있다.

전어회는 없고 광어물회와 도다리 물회만 된다고 한다. 나는 도다리 딸은 광어를 시켰다

그런데 잠시 후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오더니


" 광어 한 마리를 잡아야 되는데 1인분만 시키면 반마리를 못쓰게 된다는데.."


"그럼 광어로 두 개요"


좀 있다 광어 물회가 나왔는데 싱싱하지 않다. 음식을 먹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돋보기안경을 쓰고 나물을 다듬고 있다.


"혹시 식당을 그만두시는 건가요?"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네 오늘이 마지막이예요."


역시나.... 그런 거였어.

손님이 없는데 주인이 가게 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그만둔다고 한다.


"그럼 아예 식당은 안 하시는 건가요?"


" 아니... 이제 다른 데로 가서 작게 하려고 해요. 여기 달세가 한달 120만 원이라요"


"그렇군요."

골목 안 집치고는 가겟세가 생각보다 비싸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세 내고도 우리 생활비가 되었는데 작년부터 적자가 나서 빚이 났어요."


아주머니는 이야기도중 흥분이 되는지 강원도 특유의 억양이 강해진다. 달세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주인이 세를 올려달래서 그냥 가게를 비우겠다고 했단다.


"장사를 안 하겠다고 했더니 주인은 2-3개월 전에 미리 말해야 된다고 우리 보고 3개월치 월세를 달라고 그러지 뭐예요. 법적으로 그렇다 하면서. 저들은 가게 위층에 살아서 오가면서 우리 장사 안 되는 줄 뻔히 보았으면서.. 그래서 우린 줄 돈이 없으니 감옥에 넣든지 말든지 하라고 하니 돈을 주더라고요. 여기서 8년을 장사했는데..가게가 나가든 말든 일단 돈은 받았지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부동산에 갔더니 부동산 주인이 이 동네 가게 내놓는다고 찾은 사람이 30명인데 한 명도 문의 전화가 없다고 하더라고.."


"이 동네 가게를 30곳이나 내놓았다고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우리 가게 옆집 국숫집도 내놓고 저 앞에 샌드위치 집도 내놨는데 문의가 와야 가게를 접고 나가제.."

생각보다 심각하네. 산책할 때 지나치다 보면 가게 안이 텅 비어 있곤 하던 곳들이다.

집에서 뉴스만 보다가 실제 장사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심각하긴 한가 보다. 그래도 입지가 좋거나 맛이 변하지 않은 집은 손님이 끊이지 않던데..


" 옛날에 장사꾼이 주는 돈은 개도 안 문다더니 내가 장사를 해보니까 참으로 별의별 일들이 다 있고요.

밥값 내는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얻어먹는 사람들이 꼭 이러니 저러니 시비를 걸고 내가 꾹 참고 지내왔지요.."


주인아주머니는 하소연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동안에도 손님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고맙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인사를 뒤로하고 나오면서 가게를 좀 더 깨끗이 하고 인테리어를 좀 신경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나저나 마지막 장삿집에서 생각지도 않게 마지막 만찬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맛이 없지는 않은데 간판은 70년대에나 있을 법한 간판이고 실내가 늘 정리정돈이 안된 상태로 어수선해서 젊은 층의 시선을 끌기엔 부족했다는 듯이 딸이 말을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60 중반이 훨씬 넘어선 것 같았는데 아저씨는 주방에서 회를 뜨고 아주머닌 홀에서 음식을 나르기 때문에 주방에서 일아는 아저씨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두 분 다 새로운 곳에서 잘 정착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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