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 오누이에게 아버지란 늘 무섭고 엄격한 존재였다. 그래서 집에 아버지가 있는 날은 마음이 늘 조마조마하고 행동도 조심스러웠다. 잘 나가다가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눈에 잘못이 띄면 바로 꾸중을 듣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있지 않을 때라야 우린 마음이 놓였고 억눌린 감정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었다. 두 살 터울에 누나와 남동생이라는 나이의 간격이.. 그리고 완전 딴판인 성향으로 우린 서로 치고받고 얼굴을 할퀴며 피 터지게 싸우다가도 아버지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우린 서로의 편이 되어 주었고 끈끈한 동지애를 형성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늘 타인의 눈을 더 의식하는 편이었고 우리에게 인색했던 칭찬이 친척이나 이웃의 아이들에게는 과하리만큼 넘쳤다. 즉 아버지는 이웃이나 친척들에겐 늘 좋은 사람. 잘 베푸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방 두 칸의 비좁아 터진 우리 집엔 늘 친척들이 며칠 아니 몇 달씩 묵어갔고 생활비에 늘 쪼달리던 엄마는 친척들을 과하게 대접하려는 아버지와 매번 다투었다.
어린 우리 눈에도 아버지의 손님들에 대한 지나친 환대가 불만이었지만 엄마는 늘 아버지에게 졌다.
아버지는 특히 우리들의 학교성적이 중심이어서 늘 밖에서 놀던 남동생의 우수하지 못한 성적을 탓했는데 나중에 성인이 된 후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에 있으면 늘 아버지의 꾸중만 듣기에 집 밖에서만 놀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에게 찍히는 것이 싫었던 나는 아버지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며 다행히 성적이 좋아서 동생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았다.
중학교 이후부터는 우리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초등학교 시절의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 아버지의 눈에 많은 시간 놀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 책상 위에서 책을 펴는 시늉이라도 해야 욕을 덜 먹는 것이다. 특히 신나게 노는 우리들에게
"오늘 배운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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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단편소설 <골목>으로 신인상 수상 후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현재는, 고등부 국어와 대입 논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