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의 의약품도매업 금지 법안 관련
플랫폼 기업이 의약품 도매상을 겸영 금지를 포함한 약사법개정안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입장에서 의견들이 쏟아진다. 법안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살펴 보지 않았기에 치밀한 논의는 못한다. 그보다는 플랫폼 기업이 의약품 도매상을 허가받을 수 있게 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두고 이게 논란거리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1. 플랫폼 기업, 의약품 도매업의 존재에 대한 생각
- 플랫폼 기업이라고 하면 디지털 공간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을 떠올리게 된다. 초반에는 중개수수료가 주된 수익원이지만 성장세를 타게 되면 자사 상품이나 직매입 등의 거래활동을 통해 수익원을 확장한다.
플랫폼 기업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유입된 소비자와 공급자에 대한 기본 자료 및 그들 간의 거래자료를 합하여 소비자 선호의 빈도와 (시간적, 공간적) 분포, 거래 내역(거래대상과 거래량, 금액 등)에 대한 기술통계와 같은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추정과 가설검정을 통해 자신들의 수익원 창출방안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낸다.
플랫폼 기업의 성장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선택권(소비 또는 공급할 대상)을 다양하게 넓힐 수 있도록 해준다. 무엇보다 플랫폼 기업 자신은 플랫폼 내에서 생산된 방대한 자료와 네트워크들로 점철된 엄청난 성장동력을 확보하여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진출하는 등 시장에서의 힘을 빠르게 획득하게 된다.
(물론 늘어나는 자료만큼 정보보호라는 책임도 불안도 커지지만 말이다...)
- 의약품 도매업은 약사법에서 의약품 판매업의 하나로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허가받아야 하는 업이다. 법령에 따라 허가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비교적 까다로운 행정 절차를 거치도록 한 이유는 분명하다. 질병 치료 등에 필요한 의약품은 양질의 의약품이 적시에 적정가격에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격이나 자원의 분포, 생산량 등 복잡한 이슈는 언급하지 않겠다. 의약품 그 자체로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복잡하고 어렵다.
의약품이 허가/신고된 효능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개개의 제품 모두가 생산된 시점에서 보증 또는 검증된 품질을 유지하여 소비자에게 공급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품질불량이나 유통 중 변질된 의약품의 공급, 가짜 의약품 등과 같은 불법 유통 문제들을 방지하고, 문제 발생시 즉시 회수 폐기와 같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일정 자격(시설, 자본, 인력 등)을 갖춘 허가받은 도매업체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예. 품질불량제품)가 생기면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예. 회수)함에 있어 자격을 갖추고 허가를 받아 정보가 등록되어 도매업을 하는 기업들이 문제해결 가능성을 높이는, 신뢰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약품 도매업을 하려면 요건을 갖추었는지 실사를 받고 허가를 받아야 하며,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율점검을 받아야 하며, 불량의약품 회수 등 조치가 필요하면 해당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모든 거래 기록은 정해진 기간 내에 정확하게 보고해야 하는 엄청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현재 활동 중인 의약품도매업자들이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유통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2. 플랫폼 기업의 의약품 도매상 겸영 논의 배경에 대한 생각
- 모든 문제는 생존이라는 목적을 두고 제한된 물리적 시공간과 능력의 한계에서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2025. 12. 17. 수) 기준, 국내 허가/신고 의약품을 식약처 의약품안전나라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에서 완제의약품으로 취하나 사용기한이 만료되지 않은 품목 건수를 조회해 보니 31,816건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모든 제품이 동일한 빈도로 동일한 인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요구되는 시점이 언제일지, 얼마나 필요로 할지에 대해서 가늠하는 것은 어렵고 정확성도 낮다.
그럼에도 도매업자는 어떤 약을 얼마만큼 확보하고 있어야 할지를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 품질관리도 하고 반품도 처리하고 이동경로도 고려해서.
- 한편, 어떤 약이 어떻게 쓰일 지에 대해서는 의사가 환자(소비자)를 진단한 후 처방으로 결정한다. 처방대로 약이 조제되려면 해당 제품의 재고가 시장에 남아 있어야 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보유한 약국이 있어야 한다. 비대면진료 및 약처방, 실시간 의료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에는 소비자, 의료기관, 약국이 거래하게 되는 의약품 정보도 교환되게 된다. 이 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게 되는 플랫폼 기업은 공급이 요구되는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기에 의약품 도매상이 할 일을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에서 보험급여되는 의약품 목록을 보면 동일 성분/함량/제형을 가진 제품들이 수십 개 있기도 하다. 이 중 한 개의 제품을 의사가 처방(성분명 처방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게 되는데, 다시 말해 수십 개의 경쟁 제품 중 한 개의 제품이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제품을 가진 기업들 모두가 다 똑같은 수량을 판매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제품이 소비된 이유에 대해 한 번은 왜 그 제품이었어야 했나 궁금하지 않은가? 합리적 이유를 찾기가 참 어렵다. 다행히(?) 대부분의 환자(소비자)는 의사의 처방권을 존중하기에(또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또는 굳이 알 필요가 없기에) 여러 제품들 중 그 제품이었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약회사, 도매업자는 그 선택을 알기 위해 또는 그 선택을 받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익원을 계속 발굴해야 하고 이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리고 좋은 기업은 사회 구성원인 개인에게도, 사회 전반에도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가진 힘(정보)를 이용해 자신에게 최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수익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비대면진료 및 약처방, 실시간 의료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에게 제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방조제되는 의약품 제품 정보를 아는 플랫폼 기업이 도매상을 하면 그 제품들을 모두 확보하고 필요한 곳에 공급해 줄까? 아무리 큰 플랫폼 기업이라도 제한된 시공간, 물적, 인적 자원과 함께 많이 소비되지도 않는 제품들 모두를 확보하여 관리하는 행정비용(부담)을 따지다 보면 제품 종류와 범위를 한정시키고 싶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결정과정에 무엇이 영향을 미칠까.
- 거대 플랫폼 기업이 갖는 정보력과 영향력이 의약품 거래 나아가 의약품을 공급받는 국민에게, 보험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플랫폼 기업의 의약품 도매상 겸업 금지(안)은 아마 의약품 도매상 기능을 이미 암암리에 하거나 도매상으로서의 지위에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일 지도 모른다.
제품 하나를 소매업소에 밀어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래관계가 얽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플랫폼 기업이 거래관계에 들어오면서 경쟁이 더 공정해 질지 더 불공정해질 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길 바란다. (굳이 특정 기업 문제를 언급하지는 않겠다.)
3. 토론의 시작점에 대한 생각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토론은 아닐 것이다.
만약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한다고 믿는 말만 하고 있다면 이는 토론을 하는 공통된 목표에 대한 합의나 설득이 없어서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수단부터 이야기하면 수단 수준에서만 이야기하게 된다.
수단은 목표로 가기 위한 또는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하나일 뿐이다. 어떤 목표에는 최우선일 수 있지만 어떤 목표의 도구로는 부적절한 것일 수 있다.
모든 의약품은 아니더라도 질병치료와 관리에 필수적인 치료의약품이 불공정 경쟁 이슈에 휘말려 해결해야 할 문제들(원료수급, 품질불량, 생산중단 등)이 논쟁의 후순위로 밀려나는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
의약품 공급과정에서 공정과 경쟁을 우선 가치로 둘 것인지, 안정된 수급을 추구할지, 품질을 우선할지, 이 모든 것들 각각의 몇 %를 채울 것을 조합할 것인지 다 짚어보고, 또 잃게 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도출해 내야 한다.
생각을 시작한 김에 한 마디 하면...플랫폼 기업에게 의약품 도매업 겸업을 허용해 줄 지 여부에 대해서만 논하면 안된다. (기존 도매업자들도 비대면진료처방용 플랫폼 사업에 직간접 참여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이 토론의 시작은 플랫폼이 의약품 유통에 어떤 유익을 가져올 수 있느냐 이어야 할 것이다. 실행가능 여부를 떠나 의약품 유통에 대한 논의에서 쟁점사안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양질의 치료의약품의 적시, 적절한 가격에 공급되어 치료시기를 놓치는 상황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느냐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답은 없고 정답이라 기대되어도 실행이 어렵다. 도전의 과정에서 잃지 않아도 될 것을 또는 맞닥뜨리지 않아도 될 위험을 자초할 여유는 더더욱 없다, 그건 누군가의 삶의 문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