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극장에서볼만한 영화를 찾다가제목에 끌려 사전정보도 없이 본 영화가 있다. 배경이 이탈리아라는 것만 알고 본 그 영화는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키메라>였다. 특이한 영화였고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감독의 전작은 <행복한 라짜로 (Lazzaro Felice)>인데,71회 칸영화제(2018) 각본상수상작이다. 하지만 수상 이력보다 이 영화를 국내에서 더 유명하게 만든 건, 바로 봉준호 감독이 <Site and Sound>에서 꼽은 "역대 최고의 영화10선"에 올라 있어서가아니었을지...
사실 봉준호 감독님은 여러 매체를 통해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를 밝힌 적이 많고, 시대별, 국가별 등 제한조건이 걸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많은 리스트가 인터넷에 떠다니는데, 이번은 <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인 만큼, 어떤 제한 조건도 없이 봉감독님이 영화 역사상 꼽은 명작10편이라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이것을 꼽을 당시의 리스트일 뿐이지 감독님이 그 이후바뀌었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음.
영화를 많이 본다고 보는 나지만, 영화학도는 아니기 때문에 끌리고 보고 싶은 작품 위주로 봐와서인지 10선 중 본 것은 세 편에 불과했다. 그래서 안 본 영화 중에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행복한 라짜로>를 먼저 보기로 했다.
제목과 포스터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영화 같지만, 사실..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잔혹한 장면이나 수위를 넘는 표현은 없어서 아이들도 볼 수는 있으나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른들도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라짜로는 한 시골 단체농장에 산다. 이 농장 사람들은 대가족과 같은 삶을 살며 담배 등 각종 작물을 기르는데, '후작부인'이라는 농장주의 지배를 받는다. 도매상이 가끔 와서 돈을 주고 이들의 작물을 사가지만 가격을 매기는 것도 일방적이다. 돈을 벌지만 이들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물품 역시 도매상이 도시에서 사다주기 때문에 수입지출을 따져보면 희한하게도 늘 마이너스이고, 이들은 늘 빚에 허덕인다. 그렇다. 이들은 이미 지구상에선 사라진 노예 같은 존재다. 애초부터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 안에 있는 것이었다.
이미 시대가 완전히 변했으나,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마을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은 후작부인의 세뇌에 길들여졌다. 그 중라짜로라는 소년은 이 농장 사람들 사이에서도 약간 모자라고 바보 같은 아이로 취급된다. 노예 같은 생활을 하는 농장사람들조차도 누구나 라짜로를 마구 부려먹고 무시한다. 착취당하는 이는 자신 역시 착취할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러나 라짜로는 누구의 말에도 순종하고 불평이 없다. 늘 평안한 얼굴이다.
그러다 후작부인과 그의 아들이 농장을 방문하고 여기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사달이 난다. 경찰이 오고 후작부인이 이들을 세뇌시켜 착취한 것이 밝혀져 후작부인은 잡혀가고 농장 사람들은 해방된다.
연기를 처음 해본다는 라짜로 역할의 배우는 어떻게 이런 성인 같은 얼굴이 있을까? 싶은 느낌을 자아낸다. 소같이 큰 눈망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당하며 사는 것 같지만 오히려 평안하다.
농장사람들
후작부인과 그의 아들
다시 농장 사람들로 돌아가자.
드디어 자유를 만난 농장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소 가슴이 아프지만, 이들은 도시의 빈민가에 모여 다시 단체생활을 한다. 가족 같은, 실제로 가족관계도 얽혀있는 이들은 서로가 함께 있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에서 자력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노인들은 온종일 집을 지키고 젊은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쳐서 먹을 것을 구해온다.
이 상황을 우연히 피하게 됐다가 늦게나마 농장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 라짜로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농장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믿고 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자 혹은 어린아이 같은 라짜로는 과연 어떤 생각을하고 있을까?
이 영화는 작은 담배농장의 이야기를 통해 마치 현재 자본주의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저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지만, 그 속의사람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기가 막힌 일들은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이다.
봉준호 감독님의여러 영화들에서도 -< 플란다스의 개> <괴물> <옥자> 등- 동화 같고 환상적인 표현 속에역설적으로 지독하고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왜 감독님이 이 영화를 전설적인 영화들과 함께 최고의 영화에 올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비교적 신예 감독이지만, 이 작품은 다른 아홉편의 영화와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저력을 갖춘 영화다.
나머지 아홉 편의 명성(?)은 너무나 많이 들어왔던 터라, 단 10편만을 꼽을 수 있는 리스트에 이 영화가 들어간다고? 하면서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봉 감독님이 왜 이 영화를 꼽았는지 이해가 된다. 우선 영화 속에서 이탈리아 시골농장의 독특한 분위기가 손에 만져지듯 느껴진다. 농장사람들이 사는 좁고 낡은 주거 건물에서 전구 하나를 이방 저방 돌려 쓰는 2차세계대전 시대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농장주 아들은 펑크족 같은 차림새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모습이 대비된다. 긴 설명 없이도 영화의 기괴한 설정을 바로 이해시켜 버린다. 시대적 배경이 다소 모호한데 그것도 여기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인지 굳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문학적이었다.
고립된 공간에서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하면서 착취한다는 점에서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를 떠올렸다. 내가 매우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빌리지>에서 착취의 목적 또는 방법이 종교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돈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영화 빌리지
이 영화의 마술적인 분위기는 라짜로의 캐릭터에서도 느껴진다. 라짜로는 다른 사람들이 늙어갈 때 나이도 먹지 않고, 산에서 추락해도 별로 다치지 않는다. 라짜로는 실제로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성자나 천사일지도 모르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 마리의 늑대일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가 이 현실 속을 유영하면서 마치 카메라 같은 눈으로 천천히 관찰한다. 아이러니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지만, 웃기에는 너무 슬픈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다.
감독님들이 꼽은 명작들은 감독님들의 지향점이나 레퍼런스이기도 하니까 그 자체로 무척 흥미로울 때가 많다. 누구든 다른 작품이나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영감을 받으니까 말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풍부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감독이 바라보는 명작은 어떤 것일까를 귀동냥하는 일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