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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Dec 09. 2020

인문대 출신 트위터/에어비엔비 엔지니어+창업가 유호현

트위터/에어비엔비 엔지니어에서 정치 SNS OXOPolitics 창업까지

이번 줌터뷰 게스트는 인문대 출신으로 미국 트위터 본사와 에어비엔비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약 8년 가까이 일을 하시고, 최근 정치 SNS OXOPolitics 를 창업하신 유호현님이십니다. 호현님은 한국에서 인문대 영문학과 정보문헌학으로 학부를 마치시고, 미국으로 대학원을 진학, 정보문헌학으로 석사를 취득하고 정보과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던 중 트위터 본사의 자연어처리 및 검색결과 향상 엔지니어로 취업을 하셨습니다. 그 후 트위터와 에어비엔비 엔지니어를 거쳐 현재는 "정치성향 테스트에 기반한 정치SNS 및 뉴스레터" OXOPolitics 를 창업한지 8개월 차입니다. 


프로필, 그리고 호현님의 이야기들


인문학을 전공한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트위터에서 3년, 에어비앤비에서 4년을 근무했다. 트위터에서는 한국어 처리기를 만들어 회사의 협조를 받아 open-korean-text로 오픈소스 했다. 에어비앤비에서는 호스트에게 페이 아웃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를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에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와 시스템을 전달하고자 "역할 조직" 개념을 만들었다. 2018년과 실리콘밸리 지역과 문화와 기업들을 조망한 책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공저)'를, 그리고 2019년에는 역할 조직의 내용을 담은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를 펴냈다. 2020년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 구성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의사 결정을 하는 실리콘밸리의 의사 결정 방식을 한국 정치에 접목하고자 OXOpolitics를 창업했다.


호현님의 저서 두 권


컴퓨터와의 인연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다.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1988년,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컴퓨터를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게임 때문이었다. 1988년 테트리스로 시작하여 배틀 체스, 프린세스 메이커, 코만치, 삼국지 등 게임을 참 열심히도 찾아서 했다.


그 당시에는 마우스가 붙어 있는 컴퓨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MS-DOS에서 모든 명령어를 외워서 해야 게임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드디스크 내 파일 구조부터 CPU, 메모리, 그래픽 카드, 사운드 카드 등을 다 알고 있어야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어느날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게임이 실행이 안되면 하드 디스크도 고쳐보고 메모리도 고쳐보고 사운드카드도 갈아보고 컴퓨터를 뜯고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다.


어쨌든 컴퓨터를 좋아하다보니 어느새 컴퓨터로 프로그래밍도 접하게 되었고 이것 저것 레고 만들 듯이 작은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보았다. 그렇지만 화면에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 외에는 내가 만든 것 중에 딱히 쓸만한 것은 없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으니 대학에 가서 컴퓨터 공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수학을 정말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입 수능에서도 다른 모든 시험에 틀린 것을 다 합친 것 보다 수학에서 틀린 것이 더 많을 정도였다. 어쨌든 그래서 문과를 선택 했고, 수학 빼고 다른 성적은 좋아서 연세대학교 인문학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문학부는 이중 전공이 필수였는데 거기서 영문과와 문헌 정보학과를 선택하였다.


영문과는 언어학 분야가 마음에 들어서 음성학, 형태론, 문법론 등을 재밌게 들었다. 문헌 정보학과는 그나마 컴퓨터와 연관된 것을 많이 배우는 학과라서 선택하였다. 홈페이지 만들기, 데이터베이스, C 언어 기초 등을 배웠다.


2008년에는 연세대학교 석사에 진학했는데 영문학을 할까 문헌 정보학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진 컴퓨터 관련 지식이 좀더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문헌 정보학을 선택했다. 대학원에서는 정보 검색을 전공했다.


2013년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 강연


유학 생활


2009년에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의 밀워키라는 도시로 건너갔다.  미국 밀워키를 향해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컴퓨터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정보 검색을 전공했어. 이제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마치면, 아마 구글에서 정보 검색을 전공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사를 마치지도 않았고, 구글에서 오퍼를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꿈보다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밀위키에서 정보학을 공부하면서 정보 검색을 전공하였다. 어쨌든  정보 검색을 공부했으므로 구글에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컴퓨터 전공에서는 정보 검색이 학부생 기초에 해당하는 것을 나는 대학원에서 배우고 있었다.


2010년에는 석사를 마치고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주립 대학으로 박사 학위를 떠났다. 그때에도 정보학 전공이었다. 그런데 그때 만난 내 지도교수 Matt Lease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었고 내가 첫 제자였다. 내가 학업 계획서에 프로그래밍을 잘 한다고 써서 뽑아준 것이었는데, 데이터 구조도 모르고 알고리즘도 모른다는 사실에 지도교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리눅스 컴퓨터를 하나 내어주고 학부 알고리즘 수업을 들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윈도우 컴퓨터를 주면 안되냐고 했다가 또 다시 충격을 받는 교수의 표정을 봐야 했다. 윈도우가 리눅스 보다 좋은 거 아니었나?...


어쨌든 학부 4학년 알고리즘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우와.. 완전 신세계였다. 우선 O(n), time complexity에 대해서 배웠다. 무슨 소린지 물론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어떻게 O(n^3 + 5n^2 + 5)가 O(n^3)이 된다는 거냐? 그건 도대체 무슨 함수냐? 완전 혼란스러웠다. Heap Tree 에 데이터가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강의에서는 데이터 두 개 까지 들어가는 걸 유심히 보다가 포기하였다. 매주 숙제를 못 풀어서 조교한테 가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5주 연속으로 가서 헤매고 있으니까 조교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너 어느 학과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었어?”


음… 그냥 “Yes, I am.”이라고 할 수 밖에...


어쨌든, 알고리즘 수업은 간신히 B-로 패스를 하였는데 수업 후반 내내 NP-Complete 에 대해서만 공부해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아...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학기에는 컴퓨터 과학과 대학원 머신 러닝 수업을 들었다. 뭐 그냥 바이바이였다. 6자를 거꾸로 써 놓고 편미분을 하라는데 문과생인 나에게 어쩌라는 건지… 그나마 재밌었던 수업은 Natural Language Processing 수업이었다. 언어학을 공부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이 조모임을 하기로 한 동료에게 나는 언어학적 지식을 주고 컴퓨터 공학적 지식을 얻으려는 딜을 시도했다. 형태소와, 문장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막 하고 있는데 그 동료가 나한테 이야기했다.


“나 그거 다 아는데…?”


음… 난 언어학을 4년동안 전공해서 그걸 배웠는데 왜 이 친구는 그걸 다 아는걸까?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그래서 그 조모임은 친구가 하드캐리(아주 강력한 리드) 했고 나는 서포트 역할을 충실히 했다.


에어비엔비 재직 시절 회사에서


취업 과정


첫 여름 방학 때 다른 친구들은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 소프트 등으로 인턴을 떠났다. 나도 호기롭게 유투브에 면접을 봤다. 전화 면접을 봤는데 그것 또한 신세계였다. 전화로 문제를 알려주고 공유된 구글 독스에 코드를 치라고 하는데, 문제는 지금 생각하면 쉽지만 그때 생각하면 진짜 어려웠다. 뭐 간단히 떨어졌다. 그래도 ‘내가 유투브에 면접을 봐 본 것이 어디냐, 문과생인데.’ 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첫 여름에는 학교 동네에 조그만 스타트업 인포침스에서 파이썬과 루비 엔지니어를 하게 되었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어느 정도 코딩을 할 줄 안다고 하면 데려가서 시험을 보고 바로 써 주었다. 그 때 정말 열심히 많이 해서 빅데이터 인프라인 하둡도 배우고, 아마존 웹 서비스도 배우고, 엘라스틱 서치도 배웠다.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다.


두 번째 여름에는 Indeed.com에서 자바 백엔드 엔지니어로 인턴을 하였다. 자바를 전혀 몰랐지만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어찌저찌 합격을 하였다. (자바와 하둡 가르쳐 주신 넷플릭스 다니시는 배재현 형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Indeed에서 인턴을 하는 도중에 LinkedIn을 통해 트위터에서 연락이 왔다. 2012년 7월 31일에 온 이 LinkedIn 메시지를 잊을 수가 없다.            


Dear Hohyon Will,

I greatly apologize for the sudden message in advance.

My name is Jennifer, and I am one of the staffing members at Twitter, Inc. in San Francisco, CA. I came across your profile and was impressed by your educational background and programming experience.

We are experiencing some explosive growth and currently expanding our International Software Engineering team based in our San Francisco office. With your experience and background, I hope to have the opportunity to informally provide you with more details.

In general, the Twitter International Engineering team not only covers i18n/localization but we go beyond. For instance, we develop core product features for producing/curating contents across major international markets.

Feel free to let me know if you have any further questions.

I look forward to hearing back from you soon!


i18n은 internationalization(국제화)을 뜻한다.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세계 어디서도 그들의 언어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이다. 이 긴 단어의 i와 n 사이에 18글자가 있어서 그렇게 줄여 쓴다. 각 지역에 맞추어 소프트웨어를 변경하는 localization은 l10n으로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왜 나한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서야 왜인지 알게 되었다. 트위터는 한국어 NLP 엔지니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어를 하면서, NLP를 알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트위터에서 당장 일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2년 9월 나는 트위터와 면접을 보았고, 지금도 미스터리이지만 6명의 면접관이 다 좋다고 해 주어 합격을 했다. 난 그래서 내가 컴퓨터 공학 천재가 된 줄 알고 페이스북, 구글과도 면접을 봤지만 아주 차갑게 떨어졌다.


어쨌든 운이 좋게도 그 당시에 트위터가 필요로하던 사람이 컴퓨터 공학의 천재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물론 페이스북과 나를 필요로 할 줄 알았던 구글이 필요로 하지 않던 사람도 나였다.



미국에서의 커리어


트위터에서의 생활은 정말 재밌었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자바 실력도 많이 늘었다. 자바는 진짜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이 동네에서 재밌는 것이, 내가 자바의 신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그냥 필요한 만큼만 알면 된다는 식이다. 물론 자바의 신이 되면 더 잘 승진이 되기는 하겠지만. 참 많은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와 지식을 나누고 재밌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3년을 보내고 또 링크드인을 통해 에어비앤비에서 연락이 왔다.


I don't know what I'm doing


2016년에도 에어비앤비를 시작으로,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링크드인 등과 면접을 보았다. 그 당시에도 에어비앤비는 들어가기 정말 어려운 회사 중에 하나였다. 구글 출신들도 많이 떨어지는 회사였다. 그런데 나는 에어비앤비만 붙고 다 떨어졌다. 정말 성적순이 아니었다. 모든 면접은 내가 그 회사의 자리에 Fit이 맞는 지를 보는 시험이었고, 내 성격과 스타일에 딱 맞는 에어비앤비만이 나를 뽑아주었다. 물론 내가 프로그래밍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났으면 다른 곳에도 다 붙기는 했겠지만, 내 스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당시에는 에어비앤비 밖에 없었다.



미국 취업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


수학도 못 했고, 컴퓨터 공학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자바도 잘 못하는 내가 엔지니어로 일을 할 수 있는, 게다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 곳이 너무나 신기하여 참 많은 생각을 하였다. 2017년부터 몇년간의 고민 끝에 깨달은 실리콘밸리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들을 다른 5명의 지인들과 함께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에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그 핵심 내용을 추려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열심히 해낼 가장 똑똑한 아랫사람이 아니라, 어떤 역할에 꼭 필요한 전문가를 모십니다.”



2012년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상위 1%에 들지는 못했지만 유니크한 장점들을 여러개 갖춘 사람이 되어 있었다. 트위터가 필요로 했던 한국어 NLP 엔지니어에 거의 유일한 매치였다. 2016년 에어비앤비 면접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상위 1%로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에어비앤비가 필요로 하는 서너개 분야에 걸쳐 꽤 쓸만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에어비앤비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였던 동료가 2017년 에어비엔비를 떠나면서 떠나면서 나에게 해 준 조언이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엔지니어링 커리어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한 분야의 상위 1%가 되거나 여러 분야에서 상위 25%가 되거나. 한 분야에서 상위 1%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내 장점 여러개를 조합하면 유니크한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늘 최고가 되라고 배워 왔고, 최고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줄 알았었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것을 아니라는 것을 실리콘밸리에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잘하는 여러가지를 조합해서 나의 브랜드를 만들면 된다. 우리가 비타민제를 사러 가면 모든 비타민이 다 들어있는 일반 비타민보다 남성 30대 용, 여성 50대 용 등 특정한 브랜드가 붙어 있는 것을 고르게 된다. 뭐든지 잘하는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특색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성공하는 곳이 실리콘밸리이고,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운이 좋아서 트위터에 들어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실리콘밸리는 모든 분야의 뛰어난 특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 특색을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매니지먼트 등의 기술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에어비엔비 시절, EO 의 The Real


OXOpolitics 창업 및 질문들


본인 스스로의 베이스는 실리콘밸리에 둔 채로, 전직원이 원격으로 근무하는 OXOpolitcs 를 창업했다.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

실리콘밸리에서 배운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의사 결정 방법을 한국 정치에 접목해보고 싶었다.    


전원 원격으로 근무하는 회사다. 장단점?  

9시부터 10시까지 미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시간이다. 성과만 가지고 평가한다.    


최근 투자 유치를 했다. 투자 유치에 대한 경험담을 나눠줄 수 있는지.  

투자는 정말 연애하고 결혼하듯 맞는 짝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의도를 이해해주고 이해관계가 맞는 멋진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이 창업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가.  

실리콘밸리의 기업에서 일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그에 기반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엔지니어링도 정말 많이 배웠다.    


정치플랫폼을 만들면서 겪는 고민들과 시행착오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  

내가 이해하는 것, 만드는 것과 사용자가 이해하는 것은 정말 너무 다르다. ㅠㅜ    



미래 & 계획?


앞으로 어디서/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미국 샌 마테오에서 계속 살 듯    


요즘은 무슨 고민하세요?  

한국 와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확 줄었다. 아이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이나 하고 싶은 것 혹은 이루고 싶은 것  

없음. 하루 인도하심 따라 하루 살아감.    


홍보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  

OXOpolitics 많이 구경 와 주세요.    




이외에도 작가로, 엔지니어로, 창업가로 살아가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들어볼 예정입니다. 돌아오는 12월 13일 일요일 밤 10시부터 두시간 동안 "정치성향 테스트에 기반한 정치 SNS" OXOPolitics 의 창업자 유호현님과 줌터뷰 라이브에서 만나요! :)


http://www.zoomterview.com/


+ 줌터뷰나 줌터뷰 게스트들에 관한 질문이나 문의, 방송에 대한 알림들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으로 :)

https://open.kakao.com/o/gFgfIO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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