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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새의 선물 - 은희경

by Zedd


우연히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라는 문구를 봤는데, 그냥 뭔가 모르게 위로가 됐다. 그리고 모든 게 괜찮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위로해 준 저 문장이 <새의 선물>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하여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 문장은 언제쯤 나올까? 하면서 읽기 시작한 <새의 선물>은 거의 한 달 걸려서 읽은 것 같다. (그 문장은 잊힐 때쯤 아주 무심하게 쓱 나온다)


책이 길기도 했지만.. 보통 이렇게 끊어서 읽으면 앞에 내용 기억도 잘 안 나고 재미없으면 중도포기하게 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진희’와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1969년을 배경으로 하고, 열두 살 소녀 진희의 입장에서 쓰인 소설이다.


진희는 굉장히 정신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이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진짜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이런 스킬들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음..

(물론 열두 살의 진희는 미래의 진희보다 컨트롤이 살짝 미숙한 것 같긴 하다)


중간중간 진희가 생각하는 말들을 보고 있자면, 삶에 대한 냉소가 느껴졌다.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진희를 보고 있자니 삶을 냉소적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방어적으로 되는 것 같은데, 이러한 모습을 성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는 그 시대의 진희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소위말해 철이 조금 일찍 든 아이 + 현실을 너무 빨리 깨달아버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위에서 말했듯이 1969년 배경이라 그 시대의 것들이 많이 나온다.

사실 이 시대가 어땠는지는 잘 몰라서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특정 에피소드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만의 고충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책에서 나온 에피소드들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읽고 나면 이 책의 이름이 왜 <새의 선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맨 앞에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이런 문구가 나오고 딱히 더 언급은 안되는데, 나는 어린 시절 진희에게 있었던 일로 들어가는 인트로 느낌..?으로 이해했는데, 찾아보니 심오한 의미로 해석한 것들도 많으니 찾아보는 것도 추천




조금 길지만 끝까지 정말 재밌게 읽었다.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는 게 핵심!!!)


+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가 너무 인상 깊은 말이라 이걸 출근길에 남편에게 이야기해 줬다.

관련해서 이래저래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힘든 게 있으면 전설노드를 찍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아주 인상 깊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도 한 번에 이해가 됐기 때문에 더 가슴에 팍 와닿는 그런 게 있었음..)


정복자 보드라고 디아블로 4 시스템 중 하나가 있는데, 정복자 보드 중 전설노드를 찍으려면 내가 안 찍고 싶은 노드도 반드시 찍어야 한다. 나는 지능을 찍고 싶은데 힘을 찍어야 하는 그런 식..


물론 지능캐에 힘을 찍는 게 도움이 아예 안 되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그걸 찍음으로써 전설노드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 때

-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 이건 전설노드를 찍는 과정이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 두 가지를 생각한다고 해서 힘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위 두 말에 위로를 받은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계속 이렇게 힘들 거고, 이 힘듦을 극복하는 건 너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순간에 “뭔가 극복할 수 있을지도..?!?”라는 마인드로 바꿔준달까..

그 지점에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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