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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치맘 Dec 29. 2021

나는 지구를 지키는 카페를 운영합니다.

지금도 지구의 어느 곳은 여지없이 여름이고, 눈이 오는 겨울 일테지만, 지구의 오염으로 이제는 계절이 틀림없이 오고 간다고 말 할 수 없다. 다행히 내가 사는 시골은 아직도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창가서 서서 포근하게 내리는 이 눈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리는 눈은 똑같은데 그 눈을 보고 있는 나는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다     

10년 전의 나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유명한 화가가 되는게 꿈이였던 꿈 많은 청춘이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도쿄 주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었고 농사 짓는 밭들이 많았다. 싱그런 봄이나 가을, 학교 가는 길목에는 노지에서 만나는 신선한 채소들과 과일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고, 생명력이 가득한 채소들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였다. 그 푸른 기억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씨앗이 되었다.


학교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한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은 부모님과의 화상통화였다. 아빠는 자연을 사랑하셨고 그래서인지 일본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야채들을 볼 때면 늘 아빠가 생각났다.

“앞으로의 부는 누가 더 신선한 야채를 먹는냐에 따라 부가 나눠질 것이다”  

경제학과 출신의 아빠는 늘 식탁 위에서 미래의 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고, 그 대화의 주제는 화상통화때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그날은 오랜만에 통화한 아빠의 모습이 유난히 수척해 보였다. 급성 당뇨가 오면서 운영해 오던 회사를 정리하고 커피를 배우고 싶다는 아빠의 말씀...나는 아빠의 말씀을 듣고 미련없이 짐을 쌌다. 그때의 결정이 후회없었는지 가끔은 생각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성공한 화가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삐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나는 바로 아빠의 꿈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아빠가 카페를 열고싶다는 장소는 구름산 밑자락에 위치한 건물이였다. 바로 옆에 창고도 있어 미술 작업을 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성공한 화가의 꿈은 잠시 보류했지만, 그렇다고 미술을 포기할순 없는 것이였다. 당장은 카페 오픈에 포커스를 맞추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필요한 자재들과 도구들을 구매하며 하나씩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셨고, 카페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바리스타와 로스팅 자격을 이수하셨다. 나는 스타벅스 같은 프렌차이즈를 롤모델로 오픈하고 싶었고, 카페운영에 필요한 매니저관리를 이수 했다. 여기까지 과정은 참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아빠와 안 싸우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 카페를 오픈했다. 나는 편한 옷차림 보다는 깨끗한 유니폼으로 무게 질서를 만들고 싶었고, 바리스타는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절 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빠는 종종 손님들을 모셔와 딸에게 커피를 시켰고, 아빠가 좋아해서 시작한 커피는 나의 업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카페를 운영한지 1년만에 아빠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바쁘게 달려온 삶이 허무했고, 아빠와 같이 카페를 오픈하기까지의 나날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장례를 치르고 카페로 돌아와 주변을 돌아보니 아빠가 머물었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낡은 항아리, 낡은 의자,아빠가 소장했던 그림들... 그 모든 것은 아빠였기에 카페를 포기할 순 없었지만, 아빠가 문득 카페 구석에 켜지는 날엔 인생은 허무했고, 무너지고 싶었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내가 쌓여갔고, 어느날은 그런 나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어느 저녁, 카페 영업을 마치고 어두 컴컴한 구석 자리에 앉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은 어떤 것이지? 어떤 삶이 예고 없는 죽음이 와도 후회없는 삶일까? 그런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는 중 문득 일본 유학 생활에서 느꼈던 자연의 풍경들이 눈 앞에 스쳐 갔다. 일본의 논밭을 지날 때의 서정과 시골냄새가 펼쳐지자 갑자기 숨이 깊게 쉬어지고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해답은 아름다운 자연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이 아름다운 자연을 바쁘다는 이유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 !!오늘부터 자연을 하나씩 알아가야 겠어!! ” 나는 깊은 마음속으로부터의 대답을 들었다. 24절기를 알고, 계절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손 쉬운 일부터 하기로 했다. 제철음식을 챙겨먹는 것은 그 중 하나였다.    

   

그 다음날부터 카페에서 입고 일하던 앞치마를 벗었다. 아빠는 나에게 “프로는 어깨 힘을 뺄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 여유를 가지라는 말도 종종 해주셨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 왔던 아빠였기에 귀한 딸이 아빠를 도와주는게 고맙지만, 정작 딸인 내가 여유를 잃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갈까봐 염려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카페를 오래된 물건들과 함께 아빠를 추억하며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운영해 나가고 있다. 그때부터 시작한 계절의 절기 공부는 지금의 “기후위기와 먹거리” 강사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8년 어느 겨울  그 동안 공부하고 내가 느꼈던 계절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꾹꾹 억눌러 놓았던 예술가의 자아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작업을 하지 않아 방치하던 창고를 다시 리모델링 하기로 결심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다짐한 일들은 꼭 기를 쓰고 하는 성격도 한 몫했다.

 “까치부엌”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탄생했다. “부엌”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정서적인 안전감을 가져다 준다. 소소한 집밥이 느껴지는 공간속에서 사람들과 계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공사를 마치고 “남의집프로젝트”라는 취향공유 싸이트를 통해 취향을 공유 하기로 했다. 계절의 절기 이야기와 간단한 요리법으로 제철재료를 즐기는 방법을 소개했다. 거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럴수록 나의 지식을 더 많이 공유하고 싶은 열망은 나를 더 공부시켰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의 흐름을 알고 싶어 시작한 24절기 공부는 동양사상의 기본을 둔  음양오행을 배우고, 그 호기심은 명리학과 주역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자연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순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낮이 오면 밤이 오고, 밤이오면 낮이 온다. 봄,여름,가을,겨울 자연의 리듬속에 우리 몸을 치료해주는 재료가 대지 속에 존재한다.


뜨거웠던 여름날 장마가 시작이 되면 회전의 방향이 땅으로 기울어 진다. 가을날의 수렴을 통해 뜨거운 열의 에너지가 가을과겨울동안 땅 속으로 스며들고, 가을의 끝자락에서 수확한 뿌리 음식들은 겨울동안 추위를 버텨야 하는 우리 몸을 보열해 준다. 자연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들이 인간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를 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들의 서식지를 침법하고 송두리째 땅의 대지를 뒤엎거나 벌목을 한다.우리가 변화지 않는다면 자연은 분명 등을 돌릴 것은 예감되어지는 부분이다. 지구의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인간의 습관들이 잘못 되고 있고, 지금이라도 당장 변화지 않는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카페를 운영하지만 굳이 커피만 팔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다. 함께 사람들과 사회적 가치를 두고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때 쯤, 광명시 기후에너지 센터에서 직원 두분이 카페에 찾아오셨다.

광명시에서 넷제로에너지카페를 기획하려고 하는데 우리 카페가 탄소중립을 위해 함께 실천할수 있는 시민교육 장소 였으면 한다는 제안 이였다. “넷제로에너지? 넷제로에너지라....”한참을 망설였다. 흠...감성으로 충만해야 하는 카페에 넷제로에너지라니....억양 자체만으로도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물었다, “어쨌든 환경을 생각하신다는거죠? 그러면 어떤 교육을 하신다는 얘긴가요? ”

그 질문에 한 작원분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환경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에너지는 몰라요..하지만 분명한건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식생활교육이 중요합니다.”     

에너지 전환만 생각하던 공무원들에게 채식의 중요성,먹거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자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그 동안 공부하고 조사했던 통계를 보여드리며 대량생산의 원인이 무엇인지,공장형 축산업의 문제와 사람들이 음식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본질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다면 자연에서 단지 영양학적으로 필요한 음식물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생명 에너지 아래 우리가 살고 있고,우리가 자연이고, 자연이 우리라는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좀 더 질좋은 환경에서 재배하고 생산하고 싶을 것이다.


2021년 내가 운영하는 카페는 넷제로카페로 협약식을 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도구”와 올바른 “식생활교육”을 통해 “기후위기와 먹거리” 강사로 나는 성장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분명 나는 달라졌지만, 매번 사람들 앞에 나와 이야기 하는 것이 긴장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창밖에 함박 내리던 눈은 어느새 멈췄다. 눈이 오면 늘 반백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아버지가 나에게 알려주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건강한 먹거리, 일본 유학시절 자전거를 타며 고요했던 마을의 풍경과 노지의 식물들이 떠오른다.

내일은 동지팥죽을 끓여 아들과 함께 먹어야겠다.

내겐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고 싶은 아들이 있고, 아들과 같이 살아가는 다음 세대들이 있기에 어쩌면 나의 일이 더 가치 있는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잔 팔기 위한 노력보다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지구를 지키는 카페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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