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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Jun 18. 2020

의심 없는 사랑

매일 아침은 전쟁처럼 시작된다.
아침 두 시간은 때론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드는 아이들의 얄궂은 의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만 한건, 오늘은 여유 있구나 하며 흐뭇해하는 엄마를 비웃기라도 하듯, 작은놈은 꼭 신발을 신길 때가 돼서야 응가를 하겠다고 하고, 큰 놈은 양치를 하러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받아 물장난을 하고 기껏 골라 입힌 옷에 온통 물을 적셔 씩 웃으며 날 올려다본다..
그럴 때면 주로 난 어이없이 웃어넘기곤 하지만, 목요일쯤 되어 피로가 쌓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짜증인지 화인지 모를 목소리로 아이들을 재촉하고 등을 떠밀며 내보내곤, 알 수 없는 자괴감으로 반성문을 쓰듯 아침 설거지를 한다.
뽀뽀를 더 많이 해줄걸.
꼭 안고 재밌게 놀고 오라며 엉덩이를 토닥여줄 걸.
눈을 마주하며 사랑한다 말해줄 걸.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쯤 큰 아이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기다리던 엘리베이터를 내려보내고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넣어,
"엄마 사랑해. 재밌게 있다 올게".
하더니 내 답을 듣기도 전에 사라진다.
학교는 지각이 민망하리 만치 전교생 중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큰 아이는 가는 길에 딴청이 많다.
요즘은 안심 알리미 서비스니 뭐니 가방에 열쇠고리를 달아 교문을 통과하면 엄마에게 문자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한 마음에 늘 창문을 열어 훔쳐보곤 한다.
여지없이 이 놈은 곧장 걷는가 했더니 보도블록 사이에 핀 네 잎 클로버를 따며 세월아 네월아 앉아 있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의 손목에 찬 전화기에 전화를 걸어 곧장 안가!! 지각이야!! 소리를 치면,
벌떡 일어나 여기저기 고개를 올려 나를 발견하곤,
씩 웃으며 팔짝팔짝 뛰며 손을 한참을 흔든다.
아.... 복장 터져.... 오늘도 지각이야.

아이들에겐 엄마가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 작은 말실수나 화에 어떤 분노나 서운함이 없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것에 삐지는 이해 못할 포인트는 있지만,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내가 눌렀다든지, 시금치 순서인데 콩나물을 올려줬다든지) 막상, 내가 뱉어놓고 후회하는 말들엔 반성의 시간이 무색할 만치 무디다.

그건 아마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에 한치의 의심도 없어서이지 않을까.
얼마나 사랑받는지 아는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작은 실수나 짜증 따위가 그저 하루 일과 중 조금 시끄러운 타이밍 정도로 여기는 듯 늘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다.

어른이 되고부터 우린 의심이 많아졌다.
말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말실수에 큰 상처를 받는다.
행동 하나하나에 상대의 마음이 혹여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며 내 마음을 표현하기보다 뒷걸음질을 친다.
아이들의 겁 없는 애정 표현을 보고 있노라면,
또는 내 짜증이나 말실수를 웃어넘기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도 나는 그 수많은 의심 속에 정작 넘치게 표현해도 부족할 사람들에게 작은 실수 하나 너그럽게 웃어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용서하고 사랑하고 살아도 잃기 전엔 그 소중함을 모르는 이 귀한 오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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