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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Aug 07. 2020

그는 외계인이었다.

꿈의 해석. 과연 잠재의식의 발현인가


그는 외계인이었다.

어느 행성에서 왔고 어느 연유에서 지구에 온 것인진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사이는 애틋했다. 그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숨기기엔 무척 힘이 들었지만 그것이 그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으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그의 정체를 알리지 않았다. 우리가 한참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후 언제부턴가 그로부터의 연락이 끊겼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찾고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끝내 그를 찾지 못했고 마음은 바스락바스락 무너져갔다.



전날 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의 외계인아빠 커트러셀을 보고 잠들어서인가



이렇게 애틋하게 시작되어 이야기가 계속되면 좋으련만 여기서부턴 이야기가 스펙터클 해진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하루하루를 견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동안의 원망을 쏟아내기에는 그는 몹시 위독했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위어있었다. 그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향하는데 그는 내손을 붙들며 입을 열었다. 이 아이를 부탁해. 우리의 아이야.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그는 그의 배를 지퍼로 열어 아주 눈물 나도록 작고 예쁘기 그지없는 아이를 꺼내 내손에 안겨주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투명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그의 행성으로 돌아갔는지, 그렇게 생을 마감한 것인진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의 종족은 남자가 임신을 한다는 건만 알 수 있었다. 이 포인트에서 나는 아싸, 10개월간 입덧도 안 하고 아이가 생기다니! 하고 굉장히 기뻐하며 앞으로 살아갈 계획을 세웠다.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겼으니,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고 있는 공부는 잠시 멈추고 가지고 있는 번역사와 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일부터 구해야겠군. 주말과 밤에는 휴학했던 대학원을 마무리해야겠어. 갑자기 삶이 너무 바빠졌다. 아이를 맡기고 아침부터 여기저기 구직을 하고, 틈나는 대로 수업을 들었다. 밤에는 무거운 몸을 이기지 못해 아이를 안고 꾸벅꾸벅 졸기 바빴다. 엄마가 혼자여서 미안해라고 속삭이며 가끔 눈시울을 붉혔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만 났더라도 이상하고 아름다웠을 텐데. 방심하지 마라. 끝이 아니다. 나는 결국 구직을 했고 매번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하루를 보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리듯 배속의 알림이 요동쳤다. 햄버거라도 먹어야지. 이제 돈도 버니 롯데리아 새우버거는 그만 먹고 버거킹 콰트로 치즈버거를 먹겠어. 버거킹을 찾아 들어가려던 찰나 아주 분위기 좋고 예쁜 레스토랑이 보였다. 조명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통유리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

자기 행성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외계인 그놈.
나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난 바로 그놈.
바로 그놈이 어떤 아리따운 여인내와 나는 먹기도 힘들 것 같은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음식에 와인잔을 부딪히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꿈속에서 들여다본 레스토랑의 이미지가 깨고 나서도 선명하게 남았다. 너무 따뜻해보이는 조명과 부러울 것 하나 없어보이는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에 분노가 휩싸였다.


원래도 잠이 많고 개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으나, 남편을 보내고 극도의 수면장애를 겪기 시작한 이유로 꿈들은 패턴이 있었다. 처음 몇 개월은 늘 전쟁이 나거나 지진이 나는데 나는 늘 혼자서 두 아들을 찾아다니며 한 놈은 등에 업고 한 놈은 손을 잡고 우는 꿈들이었다. 그리고 1년 남칫 지날 쯤에는 항상 남편의 마지막 순간이 무한 반복되는 꿈들을 꾸며 자다 울고 깨어나서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움켜쥐고 밤새 우는 일들이 반복되고 자율신경 공황장애 증세를 겪었다.


언젠가부터는 이런 꿈들은 자주 라기보다 심적으로 유난히 힘든 날 가끔 꾸는 꿈들이 되었고, 수면장애는 많이 좋아졌으나 여전히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나는 온갖 개꿈들을 꾸게 되었는데 그래도 나름 패턴이 있다면 대부분 3인칭 관찰자 시점이며 항상 나는 누군가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늘 나는 그들에게서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프로이트가 설명했던 대로 꿈이 과연 잠재의식의 발현이라면, 난 늘 무엇인가에 갈증을 느끼고 항상 고통스러운 현실에 난 혼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일단은 매일 화장실 잘 가서 행복하고 식욕이 넘치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꿈이 잠재의식이던 뭐던 간에 잠재의식을 이길 수 있는 것 또한 의식이지 않을까. 될 때까지 그런 척하라(fake it till become it)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척하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되어있는 나를 만나게 될 테지.


나는 개구지고, 매사 잘 웃고, 주로 행복한 사람이었으므로 다시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척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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