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4월 처음 공황장애 증상이 생겨 정신과에 갔다. 중증의 우울, 불안, 강박을 진단받았다. 그 후로 병원을 두 번 옮겼고 약의 종류와 용량도 여러 번 바꿨다.
맞는 약을 찾고 나서부터 두 달쯤 지났을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안일을 할 수 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옷 갈아입고, 밥을 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할 힘이 생겼다. 결심이나 노력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정돈된 일상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는데, 내 우울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었나 생각하니 조금 슬펐다.
좋은 선생님과 잘 맞는 약을 금방 찾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금세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겨 마음이 놓인다.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잘 자고, 나머지 약들도 양을 많이 줄였다. 이제는 서점과 콘서트장에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약을 먹는 동안에는 어쩐지 자꾸만 자기 연민을 하게 된다. 가끔은 약 없이는 안정감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내가 나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런 감정은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오는 불가피한 일 보 후퇴이다. 소용량이라도 약을 꾸준히 먹으면 이런 생각을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 괜찮아진 것 같아서 한동안 약을 끊었다가 결국 다시 약을 찾게 될 때가 문제다.
처음 일 년간은 정신과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상담 날짜만 기다리며 한 주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가도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병원에 안 갔다. 결국 두세 달 뒤 다시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았고, 선생님이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어보셔서 '그냥 계속 병원에 다닐걸'이라고 답했다. 지금도 비슷한 기분이다.
돌아보면 내가 병원이나 약을 끊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엔 늘 커리어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 새롭게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상태가 나아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알을 깨고 나가는 것과 스스로에게 좀 더 시간을 주는 것 사이의 선택은 늘 어렵다. 성격상 컴포트 존 안에서만 지내는 것도 나를 우울에 빠트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 도전을 맞닥뜨려야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업다운을 반복하지만, 길게 보면 우상향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하락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이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약하다'는 판단도 결국 상대적인 개념임을 기억해야지. 평균만큼 강하거나 누구보다 약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