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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작가 Mar 20. 2021

소시민은 도전자를 비웃는다

장이, <나처럼 던져봐>

공자가 불혹이라고 말했던 나이 마흔. 프로야구에서 퇴출된 공수호는 프로 복귀를 꿈꾼다. 한때 촉망받던 신예였던 그는 가족과 지인들의 기대 속에 프로에 진입한다. 프로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선수로 존재하다 사라진다. 공수호가 남들과 달리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가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스위치 피처(Switch Pitcher)였다는 점이다.


프로에 진학해 좀 더 빠른 공을 던졌던 오른 어깨를 택해 우완 투수가 되긴 했지만, 그의 오른팔은 세 번의 수술 끝에 사망 선고를 받는다.  이제 남은 건 왼팔밖에 없다. 다시 왼손으로 야구를 시작한 공수호, 그가 프로에 진입하기 위해 선택한 무기는 '너클볼'이다.


<나처럼 던져봐>는 야구 만화다. 다음의 '만화 속 세상'에서 <퍼펙트게임>으로 사회인 야구 만화의 지평을 연 장이가 한화의 후원을 받아 네이버에 연재했다. 여타의 브랜드 웹툰이 지나치게 홍보에 집중해 스토리라인이 부실했던 것에 반해 <나처럼 던져봐>는 방출된 프로 야구 선수가 재기를 노리를 것을 목표로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방출된 공수호가 프로 야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것과 같이 <나처럼 던져봐>는 기존 스포츠 만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기존의 스포츠 만화의 문법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들에서 전형을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은 잘 생겼고, 그런 주인공이 사랑하는 히로인이 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이겨야 할 라이벌이 존재한다. 라이벌과 주인공, 그리고 히로인을 둘러싼 삼각관계가 스포츠와 결합해 감동을 주는 것이 주요 문법이다.


이 기존 스포츠 만화의 문법에서,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이 관계를 보조하는 '수단'이자,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주로 사용된다. 이것은 스포츠 만화라면 의당 가져야 할 불문율이다. <떠돌이 까치>가 그랬고, <내 이름은 독고탁>도 그랬다. 아다치 미츠루의 <H2>나 <터치>는 말할 것도 없으며, <슬램덩크>나 <하이큐> 등도 이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처럼 던져봐>에는 그런 요소가 없다. 공수호는  생기지도 않았고, 젊지도 않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결혼은커녕 그럴싸한 애인도 없다. 그저 그런 삼류 선수로 방출됐기에 일생일대의 라이벌이 있을  만무하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전성기도 지난 지 오래다. 아니 전성기라는 게 있었는지 조차 의문스럽다. 이런 별 볼일 없는 인간 공수호에게 남은 건 그저 싸우는 일뿐이다. 그는 세상과 싸우고, 편견과 싸운다.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과 싸운다. 내면의 불꽃이 아직까지 타오를 수 있는지를 위해 공을 던진다.

   

공수호가 세상의 편견에 이기기 위해, 그리고 프로에 다시 가기 위해 던지는 공은 '너클볼'이다. <나처럼 던져 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으로 세상과 싸우고, 편견과 싸우는 공수호가 야구의 패러다임에 반하는 '너클볼'을 던진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현대 야구의 반역, '너클볼'

'빠르게, 더 빠르게'를 중요시하는 야구에서 너클볼은 반역자다. 회전이 걸리지 않아야 하며 '느리게, 더 느리게'를 표방하고 있다. 너클볼은 무회전으로 중력과 싸우지 않고, 중력을 이용해 타자를 농락한다.  야구에서 흔히 말하는 변화구란 사실 인간의 착시에 기인한다.


투수의 손에서 나온 공은 투구 거리 18.44M 중 최초 9~11M만을 비행하고 그 나머지 거리를 0.2~0.3초 사이에 구속이 떨어지며 변화한다. 변화 구간은 길지만 찰나의 시간에 빠르게 비행하기에 타자는 공이 순간적으로 변화한다고 느낀다. 만약 진짜 타자의 눈앞에서 공이 변화한다면 포수는 공을 잡을 수 없고, 타자는 절대로 칠 수 없다.


이런 빠른 변화구와 달리 느리게 오는 너클볼에 포수와 타자들이 혀를 내두르는 이유도 이 변화하는 지점에 있다. 너클볼의 마지막 변화는 포수와 타자의 눈앞이라고 할 수 있는 3~4M 구간에서 이뤄지며, 회전이 없기에 공이 어떻게 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너클볼은 치기도 어렵지만, 던지기는 더욱 어렵다. 130여 년에 달하는 야구 역사에서도 너클볼을 던진 투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중 성공적으로 너클볼을 던진 투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익히지 못해 사라지는 이는 대다수다.


혹자는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는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유는 프로 선수가 화끈한 강속구나 변화구를 버리고 너클볼을 연습한다는  자체가 이미 밑바닥까지 가봤다는 방증이다. 그런 선수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너클볼'.  그래서일까?


마흔이 먹도록 애새끼와 같은 정신머리를 가지고, 자기 삶에 답을 모르는 공수호가 답도 없는 너클볼을 던지는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너클볼’은 공수호의 삶과 맞닿아 있다.


당신과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저 프로에 가겠다고, 방출은 당했지만 은퇴를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공수호의 '좌충우돌 복귀 프로젝트'에는 짠내 나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퍼펙트게임>에서 느낀 것과도 동일한 느낌이다. 이는 이야기꾼으로 장이 만화가 가진 힘이다.


분명 만화임에도 실사 영화를 보는듯한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다. 단지 평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뿐인데, 주인공이 이 순간 얼마나 떨고 있는지, 그가 얼마나 겁내고 있는지가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이것은  진짜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감동이다.


비현실적인 야구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이야기가 가진 힘. 평범한 인간이 비범해지고자 도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그 마술이 의미를 가지는 순간, 꿈은 생명력을 가지며 이야기는 생동감을 가진다.


장이는 <나처럼 던져봐>는 당신과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처럼 던져봐>는 나와 내가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와 같이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공수호가 자신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아직까지 죽지 않았다고 세상에 울부짖는 것이다.


이제는 가슴의 불꽃 따위, 열정 따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있었기나 한지 잊고 지내고 있지만, 타오를 불꽃을 고민하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공수호와 같은 도전자다. 비록 작은 바람흐린 꿈을 먹고 있는 삶이지만, 넘어지고 멈출 때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도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잊지는 말자.      



P.S 일본의 메이저리거 노모 히데오가 지난 2007년 메이저리그에서 방출되고 중남미의 독립리그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자 한 기자가 왜 야구를 포기하지 않냐고 질문했다. 이어 독립 리그를 전전하는 한물 간 투수인 당신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노모 히데오가 대답했다.


"나는 그저 야구를 좋아할 뿐이다." 그리고 "소시민은 항상 도전자를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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