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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Oct 04. 2019

멜로가 체질

인간에 대한 이해

창작물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사유의 두께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야기



모든 창작물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베르나르가 개미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잔 역시 모순을 뛰어넘어 사과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노력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플라톤도 없고 미의 이데아도 없다. 미도 인간의 미이고 이데아도 인간의 이데아이다.
두 달간 멜로가 체질을 보면서 작가와 감독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두껍게 사유해 왔는지, 인간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위해 노력해왔는지를 헤아리다 아득함을 느겼다..




통달하면 가지고 놀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미디어산업에 대한 감독의 깊은 이해도 엿볼 수 있었다. 감독은 미디어 산업에 통달했기에 스크린에서 1600만이라는 흥행을 이루었고, 모두가 드라마라는 플랫폼과 ppl이라는 족쇄에 매여 허우적거릴 때 그 플랫폼과 족쇄를 가지고 놀았으며 창작과 인간에 통달했기에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감독은 그 모두를 가지고 놀았다. 그것뿐인가. 배우들부터 음악, 소품 마지막에 이름만 나열된 크레딧까지 연출과 대본 연기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작품으로 두 달간 참 행복했다.







훌륭한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덮어놓고 신뢰하는 편이다.



 유머가 효과적이고 농담의 격이 높은 사람은 두뇌회전이 빠르고 사회 일반의 감성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유승균, IDWK 279a, XSFM, 2018)​감독은 창작을 함에 있어 내가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꼽는 요소들을 두루 갖춘 훌륭한 창작자이고 이 작품은 그의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대사화 된 그의 생각에서 참 많은 것들을 위로받았다.




시간은 보내면 보낸 것이고 보내지 않으면 흘러간 것이다.


 

아달탄과 함께 춤을 추며 미에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던 챙은 명백히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이영도. 퓨처워커. 황금가지. 1999)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어딘가로, 누군가에게로 보내는 것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타인에 대해 마음껏 평가하는 천박한 취미를 즐기던 나는 오랜 시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는 소박한 도덕률만을 고수하며 스스럼없이 타인의 삶을 평가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나는 타인이 보내는 시간의 목적지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종래에는 그 밀도를 평가하는 것 마저 포기하였다. 내가 보내고, 만지는 시간의 질감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타인이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포기하니 더 이상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시간을 이해하는 문법은 모두가 생겨먹은 것 이상으로 다르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삶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타인의 삶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감독과 작가는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었고 그 교차점을 찾아 훌륭하게 풀어내었다. 내가 포기한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은 채 그 숱한 시간 동안 인간에 대해 사유했을 그의 삶이 경이롭다. 인간을 이해해주어서 고마웠고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웠다.




감히 고래에다 히로카즈에 비견한다. 그의 남은 삶 동안 사유는 더 두꺼워질 테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질 거라는 사실이 고맙다. 나를 더 위로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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