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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Feb 11. 2024

다이아몬드 컷

킹세이코의 부활





세이코 140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King Seiko KSK SJE083J1입니다.


이 시계를 이해하기 위해 간단히 역사를 살펴보고 시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차대전 당시 Seiko는 폭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장을 둘로 나눠서 운영했습니다. 


하나는 Daini (King Seiko), 다른 하나는 Suwa (Grand Seiko)라는 부서였습니다. 



이는 Seiko를 만드는 회사가 1959년에 Daini Seikosha와 Suwa Seikosha라는 두 개의 회사로 나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K. Hattori & Co,라는 본사가 있었고 Seiko라는 브랜드 아래에서 그룹 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란 명분이었다지만, 두 회사는 Seiko라는 로고 아래 자신들의 로고를 따로 새겨넣었고, Seiko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부품, 무브먼트, 디자인도 공유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서로 경쟁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 당시 Seiko는 일본 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해외시장에서는 무시받는 브랜드였습니다. 


기술적인 수준이나 만듦새는 괜찮았지만 디자인이 문제였습니다. 


원형케이스에 기본러그, 표준다이얼이 장착된 시계는 스위스 시계에 비해 지루하고 디자인적인 차별성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1956년까지 Seiko에는 디자인 부서가 없었는데, 이후에도 디자이너란 사람들이 다이얼 디자인만 담당하고 케이스는 다른 부서의 사람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Seiko가 일본시장을 벗어나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시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본사의 제안에 따라 두 회사는 스위스 시계수준의 제품라인 개발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1960년에 Suwa가 Grand Seiko를 출시하며 화답했습니다. 


이어서 Daini도 1961년에 고급라인을 출시했는데 그게 바로 King Seiko였습니다.


1962년, 'The Grammar of Design'이라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서 Seiko는 스위스 시계와 차별화된 디자인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만든 사람은 본사에 있던 Taro Tanaka라는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는 당시 스위스 시계는 눈부시게 반짝이는데 반해 세이코는 칙칙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빛을 다루는 관점에서 시선을 사로잡고 돋보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보석 가공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형태나 마감 등의 디자인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일본식 미니멀리즘이 가미되면서 나중에는 빛과 선이 강조되는 Seiko 고급라인 특유의 ‘우아한 단순함’이라는 스타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디자인 기준은 Grand Seiko와 King Seiko양쪽 모두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첫 결과물은 1964년 공개된 Grand Seiko의 57GS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문법이 제대로 적용된 것은 Taro Tanaka가 직접 참여하여 1965년 출시한 King Seiko 44KS였고, 이게 이번에 복각된 모델입니다. 


참고로 Taro Tanaka는 같은 해에 62MAS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44KS의 러그는 보석처럼 컷팅되었으며 다이얼과 글라스는 아무런 색깔을 사용하지 않고 빛 반사와 빛과의 상호작용으로만 디자인되어 있어 Taro Tanaka가 의도한 것이 시계의 형태를 하고 있는 보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복각된 모델은 크기가 당초 36.7mm에서 38.1mm로 약간 커졌고, 데이트창이 추가되었으며 보석수가 25개에서 26개로 늘어났습니다. 


오리지널과 달리 돔형 글라스는 가장자리가 사선으로 날카롭게 마감되어  유리로 베젤을 만든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러그의 보석컷팅과 어우러져 오리지널보다 더 정교하게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줍니다.



확대한 그림을 보면 로고와 인덱스가 살짝 떠있고 바인덱스 핸즈 할 것 없이 모든 모서리가 정교하게 컷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덕분에 손목을 움직이면 자잘한 빛들이 반사됩니다. 



케이스백에는 King Seiko로고가 새겨진 금메달이 박혀있습니다. 다른 시계들 같았으면 금붙이를 다이얼에 박거나 테에 둘렀겠지만, 이 시계에서는 마치 힘을 숨겨놓은 듯 손목위로 올렸습니다.




역사를 마저 살펴보면, 44KS는 1968년까지 생산되었고, 1969년에 Seiko가 발표한 아스트론을 시작으로 쿼츠파동이 발생했으며, 이 여파로 King Seiko도 1975년까지 생산되다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진열대의 상자 속에 놓여있는 이 시계를 마주쳤습니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드레스워치인데 러그의 이상한 컷팅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60년대 빈티지 스타일의 사이즈와 글라스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하나의 색깔로 구성된 다이얼과 케이스에서 빛의 반사와 그림자가 정교하게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모든게 Taro Tanaka의 디자인이었는데, 제가 그의 의도대로 빛에 끌렸고 시계의 형태가 아닌 빛 반사와 빛의 상호작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가 엄청난 디자이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점은 가벼운것밖에 못차는 손목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62mas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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