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 엘프리메로, AI시대 다락방에 숨겨야 할 것들

Zenith Chronomaster Revival Shadow​

by Z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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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후반, 제니스(Zenith)는 역사적인 매뉴얼과 부품들이 보관된 스위스 르 로끌 본사의 비밀스러운 다락방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관계자들은 197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검은색 크로노그래프 시계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계는 당시 판매되던 어떤 모델과도 달랐고, 카탈로그나 기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프로토타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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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추적해 본 결과, 제니스는 세계 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엘 프리메로(El Primero)를 발표한 직후인 1970년경, 케이스 전체를 검은색으로 마감한 수동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계획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틸에 검은색을 입히는 기술(PVD 등)이 초기 단계였고, 내구성과 시장성 문제로 인해 양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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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4월, 제니스는 이 미공개 프로토타입에 영감을 받아, 1969년의 상징적인 A384 케이스 디자인을 베이스로 Zenith Chronomaster Revival Shadow를 출시합니다.


비록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시계의 뒤에 숨어있는 비밀의 다락방, 정체불명의 프로토타입 등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과연 제니스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Single Roof


1865년, 스위스 르 로클(Le Locle). 당시 스위스 시계는 흩어진 장인들의 네트워크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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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톱니를 만들고, 누군가는 레버를 만들고, 누군가는 케이스를 가공합니다. 마지막 조립은 또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방식은 전통적이지만 비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정밀도 관리가 어렵습니다. 같은 설계여도 미세한 오차가 누적되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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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르주 파브르-자코(Georges Favre-Jacot)는 그 문제를 “기술력”이 아니라 “환경”에서 해결했습니다.

부품을 표준화하고, 공정을 통합하고, 생산과 조립, 검증을 한 지붕 아래로 끌어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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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매뉴팩처’라 부르는 개념, 제니스(Zenith)의 “Single Roof”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흩어져 있던 장인들이 한 공간에서 일하고 교류하며, 개선이 개선을 부르고, 실패가 다음 실험의 재료가 되는 구조. 지금의 언어로 말하면, 연구개발과 제조가 결합된 거대한 캠퍼스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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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이 노하우를 축적하고, 기술을 전승하며, “완성도”에 집착하는 일문화를 만드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쌓이고 뭉치면서 자신감이 되었고, 제니스는 더 높은 기술적 ‘정점(Zenith)’에 도전하는 브랜드가 됩니다.


1962년,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


1962년, 제니스는 창립 100주년(1965년)을 시계산업이 오랬동안 도달하지 못했던 목표를 새로운 프로젝트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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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이하 오토크로노). 그러나 단순히 기존 오토매틱 무브먼트 위에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는 ‘쉬운 길’이 아니라, 처음부터 크로노그래프 전용으로 설계된 완전 통합형 무브먼트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더 나아가 1/10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고진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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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표는 제니스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1960년대 기계기술이 성숙기에 이르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만들어낸 자신감이었습니다. 당시 항공, 자동차, 공업, 정밀기계가 경쟁하듯 “더 작고, 더 정확하고, 더 빠른”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무브먼트는 지금의 고성능 반도체처럼 ‘기계 시대’의 핵심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너무 높았기에 완성은 늦어졌고, 업계에 제니스가 오토크로노에 도전한다는 소문만 무성해지면서 경쟁자들을 불러옵니다. 세이코(Seiko), 그리고 호이어·브라이틀링·해밀턴 등이 연합한 크로노매틱 그룹(Chronomatic Group)이 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라는 타이틀을 건 기술전쟁이 됩니다.


1969년, 세 개의 발표와 하나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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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월 10일, 제니스는 고진동에 1/10초의 성능을 자랑하는 완전 통합형 자동 크로노그래프 “엘 프리메로(El Primero) 3019 PHC”를 곧 출시할거라는 발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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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마음이 급해진 호이어(Heuer)는 3월3일 제네바와 뉴욕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어 Calibre 11이 곧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해 5월, 세이코는 일본시장에서만 조용히 6139무브를 발표합니다. 시계를 국제적으로 출시하기에 앞서 남아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시장에서 먼저 테스트하는 단계를 진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크로노매틱 그룹은 8월에 Calibre 11를 글로벌시장에 발표하여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져갑니다. 엘 프리메로는 한 달 늦은 9월에 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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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69년에 발표된 3개의 오토크로노 중 엘 프리메로가 진정한 오토크로노였습니다.


Seiko 6139와 Calibre 11은 기존 무브에 크로노그래프를 얹은 데다 세계 최초 타이틀 경쟁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 해결하지 못하고 발표됐습니다.


Seiko는 기술적으로 과감한 시도를 했으나 완성도가 상당히 떨여졌고, Calibre 11은 기계적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69년에도 수정된 모델을 출시했다가 71년에 생산을 중단하고 Calibre 12로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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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에도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엘프리메로는 36,000vph에 1/10초까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고, 파워리저브는 50시간이었으며, 전통적인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보다도 얇았습니다.


이는 Seiko 6139과 Calibre 11의 성능과 크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르메니아(Lemania), 벨쥬(Valjoux)등 전통적인 무브먼트 강자들이 경쟁에 뛰어들어 지금도 유명한 Valjoux 7750도 탄생했지만 성능과 두께면에서 엘프리메로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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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제니스는 최초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시계업계와 시계역사에서 인정받는 El Primero(최초, the first)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이게 현재의 제니스를 만든 1969년 El Primero의 탄생이었습니다.


하지만, 1969년엔 El Primero만 탄생한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기계의 정점과 전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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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합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복합적인 기계 시스템이 지구를 떠나 39만 km를 건너 달에 도착한 사건. 그 자체가 “기계 문명의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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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해 10월 29일, ARPANET을 통해 최초의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login’을 보내려다 ‘lo’ 두 글자만 전송되었다는 일화는 상징적입니다. 우연이지만,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1과0이 첫 문장처럼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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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세이코는 오토크로노 경쟁에서 패한걸 분풀이 하듯 이 판을 뒤집어버릴 만한 폭탄, 세이코 아스트론(Seiko Astron)을 출시합니다. 이 시계는 압도적인 정확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모든 기계식 시계의 멸종을 부르는 쿼츠파동(Quartz crisis)의 신호탄이 었습니다.


이후의 연대표는 특정 업계만의 변화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큰 변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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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7.18.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Intel 설립

1969.7.20. 인류 최초의 달착륙

1969.08 Zenith El primero 발표

1969.10.29 인터넷(ARPANET)을 통한 최초의 메시지 전달

1969.12.25. 세이코 아스트론 발표, 쿼츠파동의 시작

1971. Intel,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4004 제작

1971 Zenith, 미국 전자회사 Zenith Radio Corporation에 매각

1972. 빌게이츠와 폴 알렌이 Microsoft설립

1973. Motorola,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개발

1975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사 Valjoux 파산

1975 Zenith Radio Corp., Zenith의 기계식시계 생산 중단

1975 Kodak,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개발

1975.9 IBM에서 최초로 휴대용컴퓨터 5100 상용화

1976.4.1. 스티브잡스와 스티브워즈니악, 로널드 웨인이 Apple 설립

1976 Zenith Radio Corp., Zenith의 기계식무브먼트 생산시설 폐기 결정

1977. 초기 PC인 Apple II가 판매를 시작, 상업적으로 성공

1978 Zenith, Zenith Radio Corp.에서 스위스 컨소시엄으로 매각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시대는 빠르게 전환됩니다. “정밀”을 만드는 장소가 쥐라 계곡에서 실리콘 밸리로 이동합니다.


쿼츠 시계는 그 거대한 전환 속에 포함된 하나의 파도였습니다. 하지만 시계 산업에겐 그 파도가 곧 ‘빙하기’가 됩니다.


쿼츠 쇼크, 산업의 대량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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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1983년 스와치 그룹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위스 시계 회사는 대규모로 사라집니다. 브랜드가 사라지고, 무브먼트 회사가 파산하고, 일자리가 증발합니다. 종사자 수는 9만 명에서 2만 8천 명으로 줄어들어 2/3가 날아갑니다. 이 변화는 단지 “시계가 쿼츠로 바뀌었다” 정도가 아닙니다. 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했고, 제니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엘 프리메로 개발에는 8년이 걸렸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지만 투자비를 회수하기도 전에 시장이 쿼츠로 이동하면서 경영 상태는 급속히 악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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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아니러니하게도 제니스는 같은 이름을 가진 미국 전자회사 제니스 라디오사(Zenith Radio Corporation)에 매각됩니다. 그리고 이 라디오 회사는 1975년에 제니스의 기계식 시계 생산 중단 결정하고 1976년에는 생산 설비 폐기를 지시합니다. 이때부터 제니스가 쌓아올린 기계시대 최고의 기술은 사라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엘프리메로의 기술이 창고로, 고철로, 경매장으로 흩어질 운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반응: 샤를 베르모(Charles Vermot)


샤를베르모는 제니스에 중간에 입사한 경력직 직원으로 에보슈(Ebauche, 반조립 무브먼트) 부서의 수석엔지니어였습니다. 그는 1962년부터 시작된 엘 프리메로 개발에 처음부터 참여했고, 나중에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개발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1969년에 엘프리메로 개발을 성공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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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하이비트 오토크로노’라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보다 4년이나 지연되면 회사에서 압박도 심했을 것이고, 세이코나 호이어 같은 모듈식 크로노라는 쉬운 길의 유혹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걸 극복하고 결국 엘프리메로를 개발해낸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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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쿼츠파동으로 기계식 시계의 주문은 점점 줄어들었고, 라디오 회사 임원들은 시계의 미래는 쿼츠에 있다고 판단하여 1975년에 기계식 시계사업의 철수를 결정합니다.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으로 수천 개의 만들다 만 시계와 무브먼트가 공장에 방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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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고 샤를을 비롯하여 세계 최고의 오토크로노 기술장인 36명은 재교육 후 쿼츠 생산라인에 투입하기로 결정됐습니다. 한마디로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평생을 쌓아온 경력과 세계 최고라고 믿어왔던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샤를은 큰 충격을 받았고, 회사의 이러한 결정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에 있는 경영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진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자주 다양한 순환을 겪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변덕을 부릴 것이고, 그때가 되면 수익창출의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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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이후엔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엘 프리메로 생산설비를 보관할 수 있는 권한을 요청했지만, 이 또한 답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경영진은 세상의 변화를 못따라가는 늙은 직원의 미련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1976년, 회사는 기계식 시계 생산시설의 폐기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엘프리메로를 개발한 건물은 폐쇄되었고, 기계식 무브먼트 생산을 위한 장비와 도구들은 버려지거나 매각되었습니다. 이에 샤를베르모는 더 이상 회사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본인의 신념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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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8개 건물로 구성된 매뉴팩쳐 중 가장 구석진 다락방을 골라 프레스, 캠, 절삭공구, 도면, 부품 등 엘프리메로 생산설비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가 생산시설 총 책임자로써 모든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프레스 부서에서 일하는 그의 형제가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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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은 엘프리메로의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두 관여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150여대의 프레스 장비가 있었는데, 이는 당시 가격으로 4만 스위스프랑, 요즘 시세로 환산하면 16억원에 무게는 1톤이나 됐다고 합니다. 이 프레스 장비는 제니스의 영업기밀로써 쉽게 재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만약 이게 그때 사라졌다면 엘 프리메론를 다시는 생산하지 못했을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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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은 낮엔 쿼츠시계를 조립하고 밤에는 묵묵히 기계식 시계 생산장비를 다락방으로 나르면서 관련 자료들을 바인더에 정리했습니다. 회사가 매각하라고 했는데 팔지 않고 숨긴 장비값만 몇 십억원 이었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가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까지 출근하자 바람이 났나 의심하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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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엘프리메로를 만들 때처럼 묵묵히 본인이 생각한 목표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에 걸친 정리가 끝나자 다락방 입구에 벽돌을 쌓고 벽을 만들어 비밀의 방을 봉쇄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오토크로는 세상에서 사라져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1982년, 전화 한 통


1980년대 초, 기계식 시계의 수요가 조금씩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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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2년 어느 날, 롤렉스(Rolex)로부터 데이토나(Daytona)에 들어갈 오토크로노를 공급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옵니다. 당시 로렉스는 밸쥬 72(Valjoux 72)를 사용해왔고,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2017년 경매에서 200억원에 팔린 Paul Newman Daytona입니다.


하지만 밸쥬는 이미 1975년에 파산해서 없어졌고 무브먼트 재고는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롤렉스는 이참에 Daytona를 현대화 하기 위해 오토크로노를 찾던 중 엘프리메로가 가장 뛰어나고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제니스에 생산문의를 해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니스는 이미 관련된 생산시설과 자료를 모두 폐기하고 인력들도 떠나고 없는 상태였습니다. 기계식 무브먼트의 생산시설을 재건하더라도 그간 쌓아온 노하우와 핵심인력 없이 엘프리메로 다시 개발한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고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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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제니스는 은퇴한 샤를을 찾아가 생산 재개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샤를은 조용히 사람들을 이끌고 매뉴팩처 한구석에 있던 다락방으로 가서 벽을 허물고 비밀의 방을 보여줬습니다. 이를 본 제니스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1986년, 제니스는 엘 프리메로 생산을 재개하고, 1988년 오토매틱 데이토나가 공개됩니다. 그리고 2000년 롤렉스가 자체 무브먼트 4130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12년 동안 “제니스 데이토나” 시대가 이어집니다.


샤를이 시카고에 보낸 편지는 결과적으로 ‘예언’이 됩니다.


세상은 변덕을 부렸고, 기회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AI 시대, 우리가 다락방에 숨겨야 할 것


그가 예언한 '순환'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1969년에 쿼츠가 등장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앞에는 AI가 서 있습니다. 인간이 평생을 바쳐야 했던 창작활동이 '딸깍' 한 번으로 대체되는 모습을 목격하며, 우리는 엘 프리메로의 서사가 던진 질문 앞에 다시 섭니다. "생산성의 기준이 바뀐 지금, 인간의 숙련과 노력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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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사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 자동차 한 대 값이었던 쿼츠 시계는, 생산 공정이 최적화된 지금 단돈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흔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반면 한때 고철 취급을 받으며 사라질 뻔했던 기계식 시계는, 1990년대 후반 화려하게 부활하여 이제는 수백만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예술품이자 인간 정신의 결정체로 대접받습니다.


물론 그 부활의 순간이 오기까지 우리는 많은 것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직업이 사라지고, 누군가의 평생이 담긴 기술이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시련의 계절을 지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끝내 살아남고 무엇이 영원히 사라질지 지금 당장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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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끝까지 살아남아 부활하는 것은 결국 '인간 정신세계가 도달할 수 있는 제니스(Zenith, 정점)'일 거라는 사실입니다. 효율이 대체할 수 없는 깊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고결한 집념만이 시대의 순환을 견디고 다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샤를 베르모도 그걸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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