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Heuer S/EL & 6000
2009년, 영국의 자동차 전문지 《Autosport》가 F1 드라이버 2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대 최고의 드라이버' 설문에서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드라이버가 선택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미하엘 슈마허와 후안 마누엘 판지오를 제친 결과였습니다.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한 루이스 해밀턴이 등장한 이후에도 세나는 여러 조사에서 선두를 놓고 해밀턴과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객관적인 우승 기록만 보면 세나는 역대 공동 7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슈마허와 해밀턴이 7회 우승을 달성하고, 막스 베르스타펜이 20대에 이미 4회 우승을 거머쥔 것에 비하면 세나의 3회 우승은 다소 초라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전문가들과 동료들은 주저 없이 세나를 '드라이버의 드라이버'로 꼽을까요?
그 답은 머신의 성능과 드라이버의 실력이 함께 작동하는 F1의 특징에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승패의 65%가 드라이버의 실력에 좌우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승부의 무게추는 급격히 머신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2016년 챔피언 니코 로스베르크는 "승부의 80%는 차량이 결정한다"고 말했고, 머신의 영향력이 88%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세나가 활약하던 1980~90년대 초는 드라이버의 기술과 머신의 성능이 50:50 정도의 가장 완벽한 균형을 이뤘던 황금기였습니다.
루이스 해밀턴은 세나의 상징과도 같은 1,200마력 괴물 '맥라렌 MP4/4'를 시승한 후, 세나의 시대를 "오직 수동 기어와 타이어 그립, 드라이버의 순수한 기술만으로 다뤄야 했던 진정한 드라이버의 시대"라며 경외감을 표했습니다.
머신의 성능이 부족했던 과거와, 머신이 너무 중요해져 기계들의 싸움처럼 보이는 이후의 F1 사이에서 세나는 드라이버의 실력을 그대로 전달하는 아날로그 머신으로 가장 멋진 경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세나의 진가는 머신의 성능 차이가 무력화되는 극한의 상황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노면이 미끄러운 우천 경기(Wet Race)와 좁고 정교한 브레이킹이 요구되는 도심 서킷(Urban Circuit)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강력한 엔진 출력은 오히려 독이 되지만, 세나는 이를 압도적인 컨트롤로 극복하며 '레인 마스터(Rain Master)'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도심 서킷의 상징인 모나코 GP에서는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1984년 데뷔 시즌, 약체 팀 '톨먼'의 머신으로 13위에서 출발해 폭우 속 선두를 랩당 3~4초씩 추격하며 2위에 오른 장면은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실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세나를 단순한 레이서가 아닌 드라마 속 영웅으로 만든 것은, 그의 연대기가 유럽 중심의 기득권 세력에 맞선 처절한 투쟁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세나는 F1을 시작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출신의 라이벌 알랭 프로스트와 그를 비호하는 FIA 회장 장 마리 발레스트르라는 거대한 벽에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그가 태그호이어의 앰버서더로 활동할 때의 슬로건 "Don't crack under pressure(압박에 굴하지 말아라)"는 그의 투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한 1984년 모나코 GP는 세나가 프로스트를 추월하기 직전 경기가 중단되어 세나가 2위에 머문 사건이었습니다. 1989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세나는 충돌 후에도 끝까지 달려 우승했지만, 시케인 우회를 이유로 실격 처리되어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습니다.
1990년에도 편파적인 그리드 배정에 항의하며 고의 충돌로 맞대응하는 등, 세나는 불의라 생각되는 시스템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악연의 끝은 뜻밖의 곳에서 왔습니다. 당시는 드라이버가 감각으로 조종하는 아날로그 머신에서 최첨단 전자장비로 차량의 밸런스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는데, 이 기술을 가장 잘 흡수한 팀은 윌리엄스(Williams)였습니다.
프로스트는 이 머신을 타고 1993년 시즌 월드챔피언에 오릅니다. 이후 세나가 윌리엄스로 이적하기로 결정하자 프로스트는 그를 피해 은퇴를 선언했고, 발레스트르는 회장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1993년에 F1에서 전자장비 사용을 전면 금지시켜버립니다.
전자제어를 전제로 설계된 윌리엄스의 FW16은 밸런스가 무너졌지만, 이적이 이미 결정된 세나는 이 머신을 타야만 했습니다. 1994년, 세나의 머신은 경기 도중 제어불능에 빠졌고, 산마리노 GP의 탐부렐로 코너에서 벽을 들이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필 숙적 프로스트와 극적인 화해를 나눈 직후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드라마틱한 슬픔으로 남았습니다.
오늘날 F1 드라이버는 안전 규정과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보급으로 경기 중 시계를 차지 않습니다. 오직 경기가 끝나고 포디움 세레모니 등에서 마케팅 목적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은 랩타임 측정이나 레이스 운영을 위해 크로노그래프를 실질적인 도구로 착용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문화가 일부 남아 있었고, 세나는 레이스 중 시계를 착용했던 마지막 세대의 드라이버였습니다.
1984 / Toleman / Casio TS-1000
데뷔 시즌, 세나의 선택은 카시오 TS-1000이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온도계가 탑재된 이 모델은 노면 온도에 따른 타이어 운용 전략이 중요한 F1 환경에서 실질적인 도구였습니다. 쿼츠 기술이 정점을 찍던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선택이었으며, 폭우 속 모나코에서 선두를 맹추격하던 그의 손목 위에서 레이서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1985–1987 / Lotus / Seiko Speedmaster A828
로터스 시절 그는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세이코 스피드마스터 A828 블랙&골드 모델을 애용했습니다. 당시 세이코는 혼다 엔진의 공식 스폰서였고, 로터스가 혼다 엔진을 탑재한 인연으로 선택된 이 시계는 랩타이머 등 레이싱 특화 기능을 갖춘 고성능 디지털 워치의 정점이었습니다. 기능과 형태 모두에서 시대를 앞선 모델이었습니다.
1988–1993 / McLaren / TAG Heuer S/EL
맥라렌으로 이적하며 세나는 태그호이어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쿼츠 파동으로 위기를 겪던 호이어가 맥라렌 팀을 소유하던 TAG 그룹에 인수된 후, 세나라는 아이콘을 만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이적 초기인 1988년에는 전화번호 저장 등 현대의 스마트워치 개념을 담은 Casio DBT-70W를 착용했습니다. 이 때 그의 머신이 그 유명한 MP4/4입니다.
이후 태그호이어의 공식 앰버서더가 되면서 가장 상징적인 시계인 태그호이어 S/EL(Sports and Elegance)이 등장합니다. 아날로그 핸즈와 디지털 창이 결합된 '아나디지' 모델로, 그는 경기 중에는 다크그레이를, 일상에서는 크림색 모델을 착용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세 번 중 두 번의 월드챔피언이 되었고, 독특한 링크 브레이슬릿을 가진 S/EL을 차고 포디움에 오르면서 이 시계는 오늘날 '세나 시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1994 / Williams / TAG Heuer 6000
커리어 마지막, 세나는 윌리엄스로 이적했지만 태그호이어와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태그호이어의 플래그십인 '6000 시리즈'를 착용했으며, 이 모델을 기반으로 자신의 'Senna S' 로고가 새겨진 한정판 출시를 준비하며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 유작은 1995년 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현재 태그호이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나의 시계는 시대를 반영하듯 쿼츠 시계로 시작했지만, 경력의 최전성기와 마지막을 레이싱 시계의 대명사인 태그호이어와 함께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쿼츠 파동으로 몰락할 뻔했던 태그호이어는 세나를 통해 부활했고, 지금까지도 레이싱은 태그호이어의 가장 중요한 DNA로 남아 있습니다.
"나와 시간. 그게 전부다. 레이서는 항상 시간과 싸워야 한다."
— 넷플릭스 시리즈 《세나》
그에게 시계는 화려함을 뽐내는 장신구가 아니라,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전장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마지막 '워치 드라이버'였던 그의 시계를 통해 '드라이버의 드라이버'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팬들이 그의 시계에 열광하는 가장 낭만적인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