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태워버릴 것 같은 더위가 물러나고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닿는 대로 흔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사람 눈엔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도. 가을바람이다. 가을바람은 모든 것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여름의 바람과 다르다. 여름 바람은 뭐든 오래 멈추게 만든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가을바람이 먼저 왔고, 그다음 내가 걸음을 디뎠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입으로 ‘여름이 간다’ ‘가을이 온다’하고 소리를 뱉었다. 이마에 찐득한 땀이 조금 올라왔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다른 것.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워도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걸 써야 했다. 내가 써보지 못한 건 써본 것에 비할 수 없이 많으니까 쓰다 보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멋진 완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결이라는 유혹에 내내 시달리면서 생각했다. 그 끝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욕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욕구라고도 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들이 떠올랐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 답을 좋아하는 걸까) 완결에 닿지 못한 내가 답을 알 리가 없었다. 어쩌면 애초에 답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르고. 그런데도 글을 쓰는 시간보다 답을 찾는 시간이 점점 더 일상을 차지하면서 나는 글쓰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쓸 때마다 글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다 쓰레기가 되었다. 누가 내게 글은 잘 쓰고 있냐고 물으면 (굳이) 바보같이 웃으면서 ‘쓰긴 쓰는데 (낙서도 쓰는 거라면) 모르겠네….’ 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속으로는 그 사람의 입을 때리는 상상을 했다. 어느 날 쓰고 싶으니까 글을 쓴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는 그런 당연함이 없는 내가 불편했다.
소설이라고 불릴만한 것을 끝내고 나서 나는 아팠다. 고작 두 편을 쓰고 찾아온 한계 비스름한 실망감이 나를 덮쳤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쌀 한 톨만큼도 없는 내 안에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단단한 착각을 한 내가 우스웠다. 그래도 어떤 날은 꾸역꾸역 썼고 어떤 날은 컴퓨터만 켜 놓은 채 방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누워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훨씬 쉬웠다. 더 자주 눕게 되었다. 문장이 떠올라도 키보드를 누르지 않았다. 천장을 보고 있으니 생각과 말과 문장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어느새 잠이 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방바닥에 눕고 그러다 눈을 감고 그렇게 잠을 자는 게 생활이 되었다. 좋지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은 나날들이었다. 다만 거슬리는 게 있었는데 그건 무료함이었다. 규칙적인 생활 사이사이에 구멍이 나는 것 같은 허전한 기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 설명할 수 없어 행위가 되지 않는 공백의 시간 같은 거.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어 내버려 두었다. 왜인지 작아지진 않고 커지기만 하는 그 구멍을 보는 게 내 일인 것처럼 끊임없이 구멍만 봤다. 이러다 내 온몸이 구멍이 되든가 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든가 둘 중 하나는 하겠네 싶었다.
어떤 마음. 어떤 말. 어떤 행위. 모두는 대체불가능이다. 그리고 심심한 구멍은 필연 같은 거다. 슬쩍 고개를 돌리면 심심한 사람이 태반이다. 심심해도 슬프고 심심해도 아프고 심심해도 힘들다. 그리고 심심해도 웃고 심심해도 즐겁다. 속으로 그렇구나- 하고 겉으로도 두어 번 그렇구나 그렇구나 한다. 어느새 일터에 도착했다. 사실 어느 새는 아니다. 반복으로 도착을 아니까. 반복하다 보면 심심해지기 마련인데 견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복을 아니까. 그리고 심심해도 ‘즐겁다’에 포함되는 영역이라서. 그렇게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오랜만에 의심과 심심에 앞선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