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하고 부른다. 아이는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는 듯하다. 언니도 이모도 사장도 아니고 ‘저기요’라고 부르는 아이를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그 자리에 선 채로 아이를 위해 높이도 낮추지 않은 채 ‘왜’ 하고 되려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나를 어떤 눈으로 볼까. 가지고 싶은 만화책이 있나 보다. 멀지도 않은 거리를 뛰어와 어서 달라 재촉한다. 아마 엄마가 만화책 사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할 꿍꿍이겠지. 하지만 엄마는 아이의 걸음만 봐도 알 것이다. 그건 안된다며 큰 소리로 대신 거절한다. 아이는 풀이 죽어 인사도 까먹고 돌아선다. 엄마를 지나쳐 가버린다. 아이는 어디로 가는 걸까. 조금 오래 눈에 담아본다.
아이에게 어른이 필요할까. 보호자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닐까. 냉소가 자꾸 묻어나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인다. 이런 어른이 되려고 한 건 아닌데 내가 원하지 않던 모습의 어른이 되어버렸다. 사실 몸만 컸지 내가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사전에 어른을 검색해 본다.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와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어디에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내가 정말 어른인 걸까.
살면서 내가 만난 어른들은 대부분 책 속에 있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와 내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건넸다. 대부분이 옳고 재치가 넘치고 친절했다. 적어도 문장 안에서는 모두가 완벽했다. 그러나 책 밖의 어른들은 질문보다 답이 많았고 옳고 그른 것보다 옳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열거했다. 웃음은 물정을 모르는 사치로 치부되었고 분노만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였다. 나는 동조자였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넘치는 말, 끝없는 분노와 이유가 사실은 꼭꼭 숨겨놓은 나약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나약함이 어떤 혐오로 다가오면서 나는 영원히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원망만 내 안에 남겼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늘같이 아이의 뒷모습을 오래 볼 때면 그때만큼은 아이의 곁에 서서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귀찮아하지 않고 질문하고 이유 모를 웃음을 시도 때도 없이 터뜨리고, 언제라도 용기 있게 화해를 청할 수 있는 어른으로 남겠다 섣부른 다짐을 한다. 아이가 자라면 어른이 되고 어른이 잘 자라면 아이가 된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은 ‘저기요’라 불리지만 언젠가 아이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으로 불리길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