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올가니즘, 예지, 세이수미, 페기 구
2017년 하반기는 한국 아티스트들이 국제 음악 시장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받은 해였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톱 텐 안에 진입하며 싱글 차트 핫 100 (Hot 100)에도 'DNA'로 4주 동안 머무르는 대기록을 세운 방탄소년단, 우리 민요의 가락과 펑크(Funk)의 그루브를 접목하며 NPR 뮤직(NPR Music) 라이브 채널에 출연해 145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올린 씽씽(SsingSsing), 해외 유망 평단의 갈채를 받은 솔로 아티스트 예지(Yaeji)가 전에 없던 주류에서의 성공을 알렸다.
2018년 1분기가 지나가는 지금도 세계 무대에서 한국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독특한 스타일로 각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관심에 비해 고국의 관심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말의 '신한류 열풍'을 이어가는, 2018년 초 주목해야 할 한국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영국 국영 채널 BBC는 2003년부터 '올 해의 소리(Sound of...)' 코너를 통해 신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고 인터넷 투표로 그 대표를 선정해왔다. 코린 베일리 래(Corrine Bailey Rae), 프랭크 오션(Frank Ocean), 아델(Adele), 엘 굴딩(Elle Goulding) 등 굵직한 이름부터 처치스(CHRCHES), 무라 마사(Mura Masa) 등 인디 씬의 유망한 이들까지 아우르는 이 목록은 음악 씬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투영하는 좋은 가이드라인이다. 2018년은 특히 한국 음악 팬들에게 그 의미가 더 각별할 듯싶다. 한국 아티스트가 최초로 리스트에 진입했음은 물론 한 명이 아닌 두 명이기까지 하다.
먼저 소개할 슈퍼올가니즘(Superorganism)은 8인조 다국적 인디 밴드다. 뉴질랜드, 일본, 호주, 영국, 한국을 아우르는 멤버들은 유튜브(Youtube)와 스카이프(Skype) 채팅을 통해 일면식을 트고 밴드를 꾸렸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일본계 오로노 노구치(Orono Noguchi)가 메인 보컬, 제일 마지막으로 팀에 합류한 한국인 멤버 소울(Soul)이 백보컬을 맡고 있다.
국경 없는 인터넷 세계의 21세기를 상징하는 슈퍼올가니즘은 데뷔 싱글 'Something for your M.I.N.D'를 거쳐 올해 첫 앨범 < Superorganism >을 발매하며 평단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명 축구게임 '피파 2018(FIFA 2018)'에도 수록된 데뷔곡에서 '무엇인가 정신에 집어넣으세요'라는 코믹한 문구를 놓치지 말길.
슈퍼올가니즘과 함께 '2018년의 소리'로 선정된 예지는 사실 지난해부터 뜨거운 이름이었다. 1993년생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낸 예지 케이티 리는 EP 두 장으로 하우스 / 일렉트로닉 씬은 물론 해외 인디 씬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인디 음악의 성지 해외 웹진 피치포크(Pitchfork)는 2017년 10월 인터뷰에서 '하우스 뮤직의 짜릿한 새 목소리'로 그를 소개하더니 싱글 'Drink I'm sippin on'을 '베스트 뉴 뮤직(Best New Music)'으로 꼽으며 호평했고, 이어 발매된 < EP2 >에는 10점 만점에 8.1점을 선사했다.
예지는 DJ지만 그의 음악은 단순 하우스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전자 음악을 기반으로 한 그의 음악은 랩을 더한 힙합이 되기도, 직관적인 멜로디 라인의 팝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스타일을 비주얼 아트를 전공을 통해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로 영상화하는 예지의 세계는 분명 흔해 보이지만 흔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보이지만 독창적이다. 그 중심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메시지가 위치한다.
처음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메시지를 숨기기 위해 사용했다는 한국어는 여러 곡에서 차근차근하게 그의 음악 세계를 설명한다. 한국의 뷰티 유튜버들을 패러디한 'Last breath'는 낮은 랩으로 화장 과정에 우울과 한숨의 감정을 싣고, 'Drink I'm sippin on'은 '그게 아니야'를 반복 배치하면서 거듭되는 부정과 불안, 저항을 읊어 나간다. 미국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의지로 기억 없는 모국(母國)으로 돌아갔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과거를 가진 예지는 한국어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특한 감정과 개성을 확보했고, 그 이름은 점차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부산 출신 4인조 밴드 세이수미(Say Sue Me)는 최근 팝의 거장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2018년 투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Elton John)이 애플뮤직 비츠원(Beats1)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들의 노래 'Old town'을 선곡한 것. 'Introducing Say Sue Me'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인디 밴드를 소개한 엘튼 존에 힘입어, 이후 빌보드(Billboard) 지를 포함한 다수의 유력 해외 매체들이 세이 수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4년 데뷔 앨범 < We've Sobered Up >을 발매한 세이수미는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부산의 향취를 1960년대 서프 록(Surf Rock)으로 담아내는 밴드다. 지난해 2017년에는 영국의 인디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와 계약을 맺으며 국제무대에도 이름을 알렸고, 두 번째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둔 지금은 5월까지 네덜란드와 독일을 포함하는 유럽 투어 일정이 잡혀있다. 넘실대는 리듬의 낭만 록을 만끽하고 싶다면 세이수미의 음악을 놓치지 말 것.
페기 구(Peggy Gou)의 이름은 패션 스타로 먼저 유명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던 페기 굴드(Peggy Gould)는 독특한 믹스 & 매치 스타일링을 통해 패션 SNS 상에서 유명 스타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사실 그는 2009년부터 디제잉을 배우며 음악의 꿈을 키웠던 뮤지션이었고, 패션 스쿨 졸업 후 취미로 삼던 음악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새로운 이름 페기 구로 활동을 시작했다. 테크노의 성지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기며 독특한 디제이 셋으로 점차 주목을 받은 그는 고국인 한국에선 2015년 엠넷(M.Net)의 DJ 서바이벌 < 헤드라이너 >의 심사위원으로, 배우 유아인이 설립한 아티스트 공동체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지난달 2월 14일 영국의 인디 레이블 닌자 튠(Ninja Tune)을 통해 EP < Makes You Forget (Itgehane) >를 발매한 페기 구는 9월까지 빼곡한 월드 투어 일정을 잡으며 명실상부한 라이징 스타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하우스와 디스코, 테크노를 교배하며 독특한 리듬감 위에 중독적인 샘플과 독특한 보컬을 섞은 음악은 은근한 바운스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는 한국어 가사는 신선함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해준다. 이미 '월드 스타'에 가까워지고 있는 페기 구, 더 늦기 전에 꼭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