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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pr 13. 2018

바이럴 마케팅으로 음원 차트 역주행한 닐로 '지나오다'

닐로의 '지나오다' 역주행 논란이 보여주는 한국 음원 차트의 실태


2017년 10월 발매된 닐로의 '지나오다'. 알려진 이름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에 삽입되지도 않았던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너를 위한 뮤직 차트', '너만 들려주는 음악' 등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였다. '깔끔펄펙하게 일반인이 부른 '지나오다' (닐로)', '노래는 개좋은데 소속사가 일 안 해서 묻힌 노래. avi'라는 문구의 라이브 / 리릭 비디오가 다수 페이지에 노출되며 적게는 몇 천, 많게는 몇 만의 조회수를 얻었다. '대박..!!!!!!너들음 올라온 지 2시간 만에 닐로 역주행함......'같은 차트 생중계가 난립했다.   


4월 12일 새벽 1시 '지나오다'가 기어이 차트 1위에 오르며 이 '역주행 신화'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러나 이런 단시간의 급상승세는 곧바로 의혹에 부닥쳤다. 차트 상위권에 포진한 아이돌 그룹 팬덤이 '등수 사수'를 위해 단체 스트리밍하는 시간이 새벽 1시라는 점, 동시 다발적인 시기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다량의 홍보가 발생한 점 등은 이 '수상한 역주행'을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일련의 페이스북 페이지들은 모두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었고, 닐로는 바로 이 회사에 소속된 가수였다. 게다가 '그날처럼'의 역주행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3인조 그룹 장덕철이 바로 닐로의 동료 가수였다. '노래가 개좋은지'는 몰라도 소속사는 '열일'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의 음악 차트는 음악 그 자체의 인기보다는 인지도와 화제성의 지표다. 당장 미디어에 개근하며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는 아이돌 그룹들이 주로 상위권을 차지한다. < 쇼 미 더 머니 >, < 고등래퍼 > 등 TV나 미디어,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정상부의 단골손님들이다. 독보적으로 보이는 헤이즈도 < 언프리티 랩스타 >의 수혜를 입었다.


이렇게 한 번 순위에 오른 곡들은 각 팬덤들의 열렬한 스트리밍 릴레이 '스밍'으로, 주류 미디어의 대대적인 홍보로 공고한 인기를 다진다. 지난해 2월 '실시간 차트 개편안'이 시행되며 정오부터 오후 6시 사이 공개된 음원만이 순위에 오르게 되자 인지도의 힘은 더욱 막강해졌다. 한 번 차트에 진입하기만 하면 이용자가 많은 시간대에 힘입어 공고한 인기를 다지는 시스템이 형성됐다.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작법은 주류 미디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규모 기획사가 음원 차트를 공략하는 나름의 전략이다. TV, 라디오 등 주류 미디어가 요원한 인디 싱어송라이터나 밴드들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았다.


'딩고 라이브', '피키라이브' 등 메이저 아티스트들의 인지도를 향상한 플랫폼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학생층과 20대 초중반 사용자들을 주축으로 한 페이스북 홍보는 저비용 고효율의 결과를 불러오고, 특정 규제나 법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방법도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회사 대표가 음원 사재기 논란에 대해 내놓은 '노하우'다.


닐로의 '지나오다'는 SNS 바이럴 마케팅이 한국의 메이저 음원 차트를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전면에 보여준 사례가 됐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알고 보니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치밀하게 운영되는 조직이었고, 일반인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던 '미친라이브'도 그냥 가서 부르던 노래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기적의 역주행' 주인공들이 더 이상 기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방법이 조금 다를 뿐 그들의 차트 접근법은 메이저 시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이 큰 회사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방송에 나가지 않더라도 많은 분들이 듣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2018 04 13 [공식입장 전문] 닐로 소속사 대표 "사재기 방법도 몰라.. 뮤지션들에 미안"오쎈 ) 라 말한 소속사 대표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소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이 특정 바이럴로 차트 1위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다.


특정 연령대와 특정 감성, 특정 스타일로 다듬어진 '역주행 신화'의 곡들이 범람하고, 이 곡들이 마케팅으로 수없는 '역주행'을 달린다면? 순수한 대중의 평가나 인기 대신 마케팅 전략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음악 시장이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정직하게 음악 하나로, 노래 하나로 승부하는 아티스트들이 훨씬 많다. 노래의 가치를 떨어트림은 물론 다채로운 창작에도 악재인데다 음악인들의 노고를 헛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마냥 닐로와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를 탓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대형 회사나 미디어의 힘, 그를 뒷받침하는 팬덤 없이는 대한민국 음원 차트에서 이름 하나 비추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새벽 1시 집중 스트리밍으로 아이돌 그룹의 음원 순위를 '지키는' 행위, 가계정을 만들어 집중 반복 재생을 통해 순위를 올리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대중의 취향과 소비를 제대로 아우르는 차트가 없으니 음원 사이트의 차트가 공신력을 갖는 실정이다. 이 모든 바탕엔 아티스트나 팬덤이 아닌, 애초부터 경쟁을 종용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왜곡된 시스템이 있다.


5분 단위로 순위를 발표하고, 실시간 1위와 2위를 '경합 중', '지붕킥'이라는 이름으로 자극하여 소비를 부추기는 제도는 팬덤의 그릇된 경쟁을 불러오고 주류 차트의 고착화를 부르는 주범이다. 작금의 '지나오다' 논쟁도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선택한 SNS 바이럴의 무분별한 영향력을 지적하기보다는 '거대 팬덤도 없는 인디 가수가 1위를 차지했다'는 인신공격적 비판이 주를 이루는 모습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결국 웃는 건 음원 사이트일 뿐 음악인, 노래, 팬덤, 소비자는 모두 패배할 뿐이다.


닐로와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차트에서 음악이 사라진 현실 속 살아남는 방법을 뉴미디어로 찾았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논란이라 한들 'SNS 역주행 스타'들은 꾸준히 등장할 것이다. 논란 이후 6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오히려 성공적인 노이즈 마케팅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SNS, 팬덤, 대중 매체의 영향보다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종합 차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벽돌 차트'는 계속될 것이고, 제 2, 제3의 닐로가 소셜 미디어의 힘을 타고 '역주행 신화'를 광고할 것이다. 대한민국 대중 음악계에서 음악은 성공의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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