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공동 선언, 노래로 배가될 감동
드디어 ‘평화의 한반도 시대’가 오는가.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공동 선언은 너무도 파격적이라 상상 속 이야기, 혹은 가상의 시나리오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더 이상 이 땅에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종전 선언과 비핵화 이행의 약속. 2018 평창 올림픽 단일팀부터 평양 특별 공연, 정상회담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화합과 평화의 성과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급속한 통합의 길을 닦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축하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이 날의 유연한 태도대로 구두 합의한 여러 사안들을 진심으로 이행하길 바란다.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제주소년’ 오연준이 부른 ‘고향의 봄’과 회담 마무리를 장식한 ‘One dream, one korea’ 등 음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렇다고 매번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 ‘손에 손잡고’만 들을 순 없다. 역사적인 합의와 시차 폐기, 핵시설 폐쇄, 7월 27로 예측되는 종전 선언까지의 대장정을 함께할 새로운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하다. 팝 역사상 ‘통합’과 ‘반전(反戰)’, ‘평화’를 노래했던, 지금 이 순간 한반도에 가장 어울리는 열 곡을 추렸다.
평화와 반전 메시지에 빠질 수 없는 아티스트. 비틀즈 해체 전부터 오노 요코(Ono Yoko)와 함께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던 존 레논이 1971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발표한 캐럴이다. 영국 구전 노래 ‘Skewball’에 새 가사를 입힌 이 곡은 같은 해 먼저 발표된 앨범 < Imagine >과 더불어 평화를 사랑한 존 레논의 가장 상징적인 싱글 중 하나로 남았고,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울려 퍼지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Happy X-Mas’는 비틀즈 해체 후 솔로 멤버가 발표한 첫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기도 하다.
‘비핵화 선언’의 이행 과정에서 들어봐야 할 곡. 제목부터 ‘핵전쟁 반대’를 외치며 세계의 빈곤과 권력의 위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노래하는 이 노래와 동명의 앨범은 1987년 그래미 어워즈 레게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이 노래의 주인공 피터 토시는 모두가 ‘레게 = 밥 말리’라 생각하는 현실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인물로, 밥 말리의 밴드 더 웨일러스(The Wailers)의 멤버로 활동하다 1976년 솔로 데뷔 앨범 < Legalize It >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커리어를 걷는다. 조국 자메이카의 어두운 현실과 평화를 염원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1987년 자택을 습격한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유투의 ‘One’과 제목은 같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하나 되는 세계’의 의미인데 반해 메탈리카의 ‘One’은 1차 세계 대전(World War One)에 참전한 군인의 절규를 상상해 강력한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이다. 7분 28초에 달하는 서사시 속 주인공은 지뢰 폭발로 사지를 잃었으며 아무런 감각조차 느끼지 못하며 그가 애타게 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자신의 숨을 거둬달라는 절규뿐이다. 초반 잔잔한 멜로디가 숙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후 반전되는 스피드 메탈 사운드는 지옥과 같은 전쟁 참화를 온몸으로 울부짖는다.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
이승만, 남북한, 판문점... 해외 아티스트의 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국내에선 ‘Piano man’으로 기억되는 빌리 조엘의 1989년 히트송 ‘We didn’t start a fire’는 그가 태어난 1949년부터 1989년까지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쉼 없이 나열했다. 존 레논의 아들 션 레논(Sean Lennon)의 스물한 살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그는 한국전쟁과 수에즈 운하 사태 등 젊은 세대들이 역사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그 날로 도서관에서 책을 뒤져가며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딱딱할 수 있는 주제지만 곡 자체는 뉴 웨이브(New Wave) 스타일의 경쾌한 리듬이 흥겹다.
‘하나의 사랑, 하나의 삶’을 노래하는 ‘One’은 밴드 유투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노래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독일의 한자 스튜디오(Hansa Studio)에서 녹음된 이 곡은 통합과 사랑, 관용과 하나 되는 사회에의 염원을 따스한 록 발라드로 풀어내며 큰 울림을 안겼다. 싱글 수익금은 에이즈 치료 연구에 전액 기부되었으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곡’을 꼽을 때 항상 빠지지 않는 트랙으로 불멸의 명성을 얻기까지 했다. 이처럼 위대한 곡이지만 정작 밴드의 상황은 분열 직전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정통 록 노선을 지향했던 래리 뮬렌과 아담 클레이튼, 실험적인 전자음을 원했던 보노와 에지 파로 나뉘어 상호 간에 주먹을 날릴 지경까지 이르렀던 상황에서 ‘통합’을 노래한 ‘One’과 명반 < Achtung Baby >가 탄생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Too young to die’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젊은 세대의 절규다. < 지구별의 비상사태(Emergency On Planet Earth) >라는 데뷔 앨범으로 메이저 씬에 등장한 애시드-재즈 밴드 자미로콰이는 여유로운 베이스 리듬과 다채로운 세션 사운드 속에 냉소적인 반전 메시지를 녹여냈다. ‘아무도 전쟁을 바라지 않아 / 우린 죽기엔 너무 젊어’의 간결한 메시지 아래에는 ‘많은 친구들이 전 세계에서 튀겨지고 있어’라는 섬뜩한 가사와 핵폭발 구름, 안티-파시즘, 수많은 전사자들의 십자가로 새겨진 싱글 커버가 그 의미를 더한다. 가장 단순하고도 중요한 가치,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된다.
1995년 결성된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곡.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 밝고 신나는 사운드로 200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한 노래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계속되는 국제적 갈등으로 침울했던 시대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결국 우리가 추구할 단 하나의 사상으로 증오와 차별이 아닌 ‘사랑’을 제시한다. 1971년 마빈 게이(Marvin Gaye)의 ‘What’s going on?’의 메시지에 영감을 얻어 잔잔한 비트와 귀에 쏙 들어오는 랩,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한 후렴부가 어우러지며 평화와 사랑의 노래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으로 지위를 굳혔다.
세상은 분노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기성의 권력 시스템을 깨부수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겐 열정은 충분하지만 그만한 힘이 없다. ‘Waiting on the world to change’는 이런 무기력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희망의 노래다.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는 ‘아무런 주장도 없다고 말하지만 / 지금 세상과 지도자들의 모든 잘못된 점을 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언젠가 시간이 흘러 힘을 갖게 될 그들에게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자’며 힘을 북돋는다. 전쟁과 미디어 통제, 불공평한 권력추의 잘못을 직시하고, 훗날 기성이 되었을 때 그와 같은 우를 범하지 말자는 의지가 가벼운 블루스 코드와 짙은 목소리에 실려온다. 곡은 그 해 그래미 ‘베스트 남자 팝 보컬 부문’을 수상했다.
Green Day - 21 Guns (2009)
기억할 한 구절 : ‘무기를 내려놓아요, 싸움을 포기해요. 무기를 던져버려요, 너와 나.’
2004년 < American Idiot >으로 부시 행정부의 오만한 심장에 수류탄을 투척한 밴드 그린 데이는 5년 후 더욱 과감한 < 21 Century Breakdown >을 발매했다. 전쟁 위협과 핵무기로 인해 황폐화된 21세기를 경고한 이 앨범은 체계적인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히트 싱글 ‘21 Guns’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의전 행사 또는 전쟁 중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명하는 21발의 예포(禮砲)에서 영감을 얻은 밴드는 의미 없는 싸움이 가져오는 황폐한 결말을 절절한 록 발라드로 완성하여 반전의 가치를 널리 세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에 수록되어 더욱 익숙한 곡이기도 하다.
젊은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지난해 끔찍한 일을 겪었다.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공연이 끝나고 퇴장하는 관객들을 노린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하며 22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 본인은 무사했지만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아리아나에게 전 세계서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가 쏟아졌고, 피해자들을 위한 대규모 콘서트가 ‘원 러브 포 맨체스터(One Love For Manchester)’라는 이름으로 열리기도 했다.
‘No tears left to cry’는 이러한 시련에 굴하지 않으리라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신곡이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은 없어 / 극복하고 이겨낼 거야’라는 의지의 가사가 팝 씬의 터줏대감 프로듀서 맥스 마틴(Max Martin)의 현대적인 전자 비트 위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는다. 숱한 위기와 아픔의 역사로 얼룩진 한반도가 노랫말처럼 다시금 평화의 계기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지, 지속적인 주목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