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뒤흔든 충격의 뮤직비디오로 현실을 저격하다
배우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ber), 뮤지션 이름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신곡 'This is America' 뮤직비디오는 끔찍한 악몽이다. 부드러운 기타 선율과 합창에 맞춰 웃통 벗은 주인공이 몇 번 몸을 흔드는, 기묘한 분위기의 초반 1분이 유일한 안식처다. 이후 바지 뒷주머니서 '우아하게' 권총을 꺼내 드는 감비노는 복면을 차고 손목이 묶인 기타리스트의 뒤통수에 방아쇠를 당기고, 처음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리고 급변하는 트랩 비트에 맞춰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게 바로 미국이야(This is America)'.
차일디쉬 감비노의 미국은 흥겨운 춤사위 속 폭력이 비일비재하는 게토(Ghetto)다. 황량한 철제 구조물 세트장에서 사람들은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바쁘다. 기타리스트의 싸늘한 주검은 거칠게 끌어내면서 정작 그를 죽인 권총은 붉은 천으로 고스란히 모셔 둔다. 2층 난간에서 누군가 몸을 날려 떨어지는데도 아무도 관심 없이 흥겹게 춤을 춘다. 미디어와 사회적 풍요 속에 사회적 문제는 가려진다. 흥겹게 춤추는 교회 성가대에 맞춰 춤을 추던 감비노는 돌연 표정이 굳더니, 어딘가로부터 던져진 기관총으로 그들을 난사해 죽여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읊조린다. '이게 바로 미국이야, 정신 바짝 차려'.
최신 유행 동작의 춤과 노래로 꾸며지는 일상 속 폭력은 건조하게 미국 아프로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라 외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대행진이 자그마치 55년 전이지만,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과 범죄는 2018년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2년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억울하게 총에 맞아 숨진 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 운동이 본격 태동했으나 그 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공권력의 부정한 폭력에 억울하게 희생됐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은 그 악명 높은 도널드 트럼프다. 민권운동에 대해 '모든 목숨이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빗나간 핀트를 고수하고, 심심찮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대통령이다.
영상은 그 모티브가 창작과 상상이 아닌, 실재했던 현실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 비극이다. 총탄에 쓰러지는 성가대는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작년 11월 텍사스 제일 침례교회에서 발생한 인종 혐오의 총기 난사 사건을 은유한다. 차일디쉬 감비노의 뒤를 따라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추는 학생들은 올해 2월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뮤직비디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은 모두 사라져 있다. 차일디쉬 감비노와 버려진 차들, 좀 전 총에 맞아 쓰러진 기타리스트와 정체불명의 여인뿐이다. (그 여인은 신인 가수 시저(SZA)로, 고통받는 이들을 방관하는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다.)
'This is America'는 이와 같은 사회적 이슈와 불평등한 폭력이 미디어를 통해 어떤 식으로 감춰지고 심지어는 소비되는지를 저격한다. '이게 미국이야, 정신 바짝 차려'뒤엔 '내가 무슨 차를 모는지 봐'라는 가사가 붙고, '동네에는 총이 널려있고 / 나도 하나쯤 쟁여놨어'라는 내용이 나오는가 하면 '돈을 챙겨둬, 넌 흑인이잖아'라는 냉소가 뒤따른다. 마약과 총기, 그리고 돈. 언제부턴가 아프로 아메리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것처럼 굳어진 이미지들이다.
성가대의 가스펠 합창으로부터 전환되는 트랩 비트도 허투루 선택한 게 아니다. 짙은 베이스와 808 드럼으로 대표되는 트랩은 미국 남부 애틀랜타를 주축으로 2000년대 성장세를 보이며 인기를 선도한 힙합 장르다. 릴 웨인(Lil Wayne), 투 체인즈(2 Chainz)와 미고스(Migos) 등 슈퍼스타들의 등장으로 대세가 된 이 장르의 주된 가사 내용이 마약, 총기, 권력, 그리고 돈이다. 도널드 글로버는 이미 2016년 본인이 직접 제작과 주역을 맡은 드라마 < 애틀랜타 >를 통해 흑인 슬럼가의 참혹한 현실로부터 트랩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자전적 블랙 코미디로 승화시킨 바 있다. 미국 연예 전문지 벌처(Vulture)는 'This is America'가 '트랩 뮤직의 대세를 입증하고 이 음악이 어떤 현실로부터 왔는가'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뮤직비디오는 공개 4일 만에 61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최고 조회수 기록의 '강남스타일'보다 증가세가 빠를 정도로 전례 없는 인기다. 영미권의 거의 모든 주력지가 뮤직비디오와 노래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고, 평론지들의 일치된 호평에 힘입어 이미 2018년을 대표하는 곡의 반열에 오르는 모양새다. 2005년부터 활동해온 뮤직비디오 감독 히로 무라이(Hiro Murai)에 대한 찬사 역시 당연. 배우와 아티스트 양면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도널드 글로버도 더욱 주목받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이처럼 짙은 사회적 메시지와 각성을 촉구하면서 대중의 취향까지 완벽히 사로잡은 곡이 있었나 싶다. 즉각적인 분노와 깊은 성찰, 현실 투영의 오싹함과 무기력 모두를 한 편의 모순적 비극으로 풀어냈다. 지칭은 미국이지만 차별받는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통용되는 메시지기에 남일처럼 방관할 수도 없다. 이것이 2018년의 미국, 2018년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