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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15. 2018

스트리밍 시대,
'혐오 콘텐츠'에 칼을 든 스포티파이

논란의 중심이 된 스포티파이의 신규 정책. 플레이리스트 노출을 금지하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5월 10일, 세계 최대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의 결정이 음악 시장에 화두를 던졌다. 이른바 ‘혐오 콘텐츠(Hate Content)’라는 새로운 규정을 제정한 그들은 ‘종교, 인종, 젠더, 정체성, 민족성, 국가성, 퇴역 군인, 장애에 대해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고 촉진하는’ 노래를 강력히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컬트적 인기를 누리는 힙합 뮤지션 엑스엑스엑스텐타시온(XXXTentacion, 이하 텐타시온)과 알앤비 / 소울 계의 슈퍼 스타 알 켈리(R Kelly)로, 그들의 모든 노래가 공식 플레이리스트에서 제거되었으며 ‘추천(Recommended)’ 영역에서 삭제됐다. 노래는 계속 서비스하지만 노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올 3월 새 앨범 < ? >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텐타시온은 강도, 주택 침입 등으로 6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데다 가정폭행, 교살, 매수, 감금 혐의로 재판 중이다. 작년에는 동거녀를 감금, 폭행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잔혹한 성폭행까지 저지른 그는 최대 77년 형 징역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미성년자 성관계와 아동 포르노 제작으로 물의를 빚은 알 켈리는 지난해 애틀랜타 저택에서 여성들을 감금, 성노예로 부린 혐의로 또다시 고발당한 바 있다.   


스포티파이는 총 회원 1억 5천에 유료 고객만 7100만 명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스트리밍 기업으로, 음악 산업의 소비문화를 CD, MP3에서 스트리밍으로 옮겨놓은 상징적인 서비스다. 스트리밍이 만든 또 다른 감상 환경은 ‘플레이리스트’로,  ‘~할 때 듣기 좋은’, ‘~년대 음악’과 같이 체계적으로 짜인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대중은 모르는 음악을 애써 찾지 않아도 좋아하는 취향의 노래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게 됐다. 당장 스포티파이의 수입 중 2~30%가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오고,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플레이리스트가 히트곡을 만든다는 속설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규제는 꽤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결정이다.    


소셜 미디어로 대표되는 모바일 플랫폼의 확장과 새로운 문화 소비 행태 속 그에 따른 공익, 공공성 또한 요구되는 현실이다. 스포티파이의 ‘혐오 콘텐츠’ 정책은 대중문화 전반의 편견과 차별, 범죄와 모욕에 대한 기업 단위의 첫 공식적 제재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물의를 빚은 아티스트에 대한 대중의 보이콧, 무관심은 종종 있었으나 기업이 직접 규정을 정하고 혐오 반대의 철학을 들고 나온 것은 최초다. 당장 수익이 줄어들어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가겠다는 태도다.    



반박의 여지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기에 스포티파이의 결정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반대 측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당장 텐타시온의 대변인은 데이비드 보위, 제임스 브라운, 지미 페이지, 마이클 잭슨, 마일스 데이비스 등 구설수에 올랐던 전설들을 모두 플레이리스트에서 제거하겠냐며 결정을 비꼬았고, 알 켈리는 고소 의사를 밝혔다 (물론 텐타시온 측의 주장일 뿐이다.). 이미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Apple Music)이 ‘혐오 콘텐츠’ 규정 등장 수개월 전부터 알 켈리와 텐타시온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서 제거하고 있던 정황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저(SZA)와 피프티 센트(50 Cent)는 SNS를 통해 ‘음악 규제’라며 반대의 의사를 보였다.    


지금의 텐타시온을 키운 것 역시 스포티파이라는데서 오는 의아함도 있다. 2014년 말 빌보드가 스트리밍을 공식 차트 집계에 포함하면서 과거였으면 컬트적인 인기에 그쳤을 이들이 ‘무한 스트리밍’을 통해 높은 순위에 오르는 광경이 잦아졌다. 그 서비스의 가장 큰 수혜집단이 텐타시온과 릴 펌(Lil pump), 식스나인(6ix9ine)같은 ‘뉴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으로, 이들은 음악 공유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를 통해 자체 녹음 후 공개하는 열악하고 자극적인 곡으로 미국 십 대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어 주류 차트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때문에 넷상에서는 텐타시온의 재판이 무죄로 끝난다면 스포티파이가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그의 노래를 추가해야 하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이 판단할 영역을 기업이 규제한다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물론 ‘혐오 콘텐츠’ 정책은 빈곤 센터, 종교 단체, 인권 단체 등 다양한 사회단체들과 함께 만든 노력의 결과지만, 그에 해당되는 아티스트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과연 명확한가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다. 아티스트와의 논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출 빈도를 줄여버리는 모습이 썩 긍정적이지만도 않다.   


그래서 결국 이 문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판단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정의로운 사회, 범죄와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사는 훌륭하다. 다만 그 방법이 옳은지, 덧붙여 실효성이 있는지는 본격적인 정책 시행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새 시대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회 정의를 확립하려는 스포티파이의 ‘선별’ 정책이 향후 음악 산업계, 그리고 디지털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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