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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11. 2018

로즈 티코는 미워도
켈리 마리 트란은 죄가 없다

스타워즈의 부진을 인종차별 / 성차별로 화풀이하는 '너드'들.

<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 >의 흥행 부진이 심각하다. 개봉 첫 주 8천4백만 불 수익으로 2002년 < 스타워즈 : 클론의 습격 > 이래로 최악의 출발을 보이더니 2주 차엔 무려 65% 좌석 드롭률을 보이며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프리퀄 격 영화라고는 하나 2억 5천만 불 제작비를 투자한 대작인데 같은 시기 개봉한 < 데드풀 2 >에게 완벽히 밀렸다. 이에 루카스필름의 새 주인 디즈니는 믿을 수 없는 성적에 특별 회의 팀을 꾸려 부진 원인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었다. 몇몇 올드 팬들이 <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에 출연한 베트남계 배우 켈리 마리 트란의 인스타그램에 각종 폭언과 욕설,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도배한 것. 이들은 켈리가 맡은 캐릭터 ‘로즈 티코’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며, < 한 솔로 >의 부진 역시 로즈 티코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잇따른 사이버 테러에 결국 켈리 마리 트란은 인스타그램을 폐쇄했다.



확실히 < 라스트 제다이 >의 로즈 티코는 어떻게 봐도 개연성 없는 캐릭터였다. 전멸 위기에 놓인 저항군을 구원하려는 비밀 작전의 핵심 인물로 꽤 높은 비중을 지니고 있었지만, 과도한 배경 설명은 전체 영화 테마와 엇박자를 냈고 마지막 전투 씬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오직 로즈 티코 하나 때문에 < 라스트 제다이 >가 비판받는 것은 아니지만 로즈 티코 때문에 영화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로즈 티코는 < 스타워즈 : 보이지 않는 위협 >의 악명 높은 캐릭터 자자 빙크스만큼이나 팬들에게 미움받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점점 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스타워즈만을 다루는 위키백과 우키피디아(Wookipedia)에선 한 때 로즈 티코의 이름이 동양인을 멸시하는 ‘칭총(Ching Chong)’으로 표기되었고, 개인 인스타그램엔 캐릭터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아시아 배우를 멸시하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댓글이 매일같이 달렸다.



이런 사이버 폭력에 맞서 할리우드와 미국 연예계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스타워즈의 상징,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배우 마크 해밀이 켈리 마리 트란과 함께 찍은 사진을 포스팅하며 ‘일상을 챙겨, 너드들아(#GetALifeNerds)’라는 태그를 달았다. 영국 영화감독 에드가 라이트와 아시아계 배우 일라이저 문 등 많은 이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영화와 실제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편견 어린 시선을 비판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미국 CBS의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가 내보낸 2019년 스타워즈의 가상 트레일러다. ‘인스타그램에 악플을 다는 인종차별주의 팬들을 화나게 할 심산’으로 만들었다는 이 영상에선 로즈 티코를 아예 메인 캐릭터로 상정하며,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분)과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작 분) 같은 남자 캐릭터들은 새로운 여자 제다이 기사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에게 거세당해 사라진다. 다소 극단적인 패러디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핵심이다. ‘비뚤어지고 역겨운 샌님들, 닥치세요.’.


혹자는 최근의 영화계가 정치적 올바름(PC)에 매몰되어 의도적으로 다양한 인종의 여성 캐릭터를 억지로 만든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영화 속 개연성 없는 캐릭터에 대한 비판은 영화 내부와 그 틀을 짠 감독, 각본가에게 돌아가야지 그 역을 맡은 배우의 인종이나 성별이 언급될 부분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맞는 구(舊) 시리즈의 불가피한 혁신 과정으로 봐야 한다. 


영상은 2분 26초부터 시작.


당장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는 핀(존 보예가)처럼 흑인 배우가 핵심 캐릭터를 맡으며, <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에서는 배우 견자단이 출연해 새로운 느낌을 불어넣기도 했다. 오리지널 시리즈부터 내려온 인물 랜도 칼리시안은 이번 < 한 솔로 >에서 ‘범성애’라는 성적 지향이 추가되어 논란이 되었지만, 정작 영화 속에선 그런 성적 편견을 비웃는 설정으로 묘사되었다. 당장 다양한 출신, 취향, 성적 지향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과거처럼 천편일률적인 캐스팅이 이뤄진다는 게 더욱 우스운 일이다. 


스타워즈 팬으로 로즈 티코가 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켈리 마리 트란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그 미워하는 이유가 ‘아시아계 여성’이라면, 팬들이 그토록 아끼는 ‘마지막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의 뼈 있는 한마디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일상을 챙겨, 너드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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