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거장의 거침없는 재해석 속에서 놓칠 수 없는 노래들
밥 딜런이 다시 한국에 온다. 2010년 한국 팬들과 처음 인사를 나눴던 대중음악 거장의 두 번째이자 8년 만의 내한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밥 딜런은 2012년 < Tempest >를 시작으로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더 발매했으며, 2016년에는 대중음악가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더욱 고고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올해 만 77세가 된 가객의 월드 투어 이름은 언제나 그러했듯, 한결같은 ‘네버 엔딩(Never Ending)’이다.
다시 볼 날을 기약하기 힘든 전설이기에 내달 27일 올림픽공원은 분명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일생을 대중음악에 투신하며 흘러가는 바람처럼 노래해온 이 거장에겐 관객에 대한 배려나 ‘떼창’, 히트곡 퍼레이드를 기대할 수 없다. ‘Knockin’ on heaven’s door’나 ‘Like a rolling stone’은 당연히 없고, 그나마 유명한 곡들도 블루스 - 컨트리 로큰롤 스타일의 자연스러운 재해석 과정을 통해 해체되니 노래가 시작했는지 끝나는지의 경계도 모호하다.
그럼에도 무뚝뚝한 거장과 같은 공간에서의 경험을 남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선택은 하나다. 최소한 무슨 노래를 부를지는 알고 가는 것이다. 최근작들의 노래야 놓칠 수 있다 쳐도 전설적인 명곡이 지나가는데 음미조차 못하고 자리를 떠난다면 너무나도 아쉽다. 가장 최근의 이탈리아 투어 셋리스트를 통해 ‘예습’해보는, 밥 딜런의 고전 플레이리스트다.
포크 가수 양병집이 번안한 곡을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만 바꿔 우리에게 익숙한 곡이다. 부른 원곡이다. 밥 딜런은 이 곡의 멜로디와 가사를 미국 전통 민요의 구절을 가져왔던 폴 클레이튼(Paul Clayton)의 ´Who´s gonna buy you ribbons when i´m gone’이란 곡에서 따왔다. 최근 라이브 공연에서는 단출한 어쿠스틱 기타 한대의 원곡을 컨트리 밴드 구성으로 보다 폭넓게 펼쳐내는 모습이 보인다.
1965년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선 밥 딜런만큼 록의 역사상 중요한 장면을 꼽기란 어렵다. ‘Like a rolling stone’의 대히트를 통해 노랫말의 존재를 철학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린 1965년작 < Highway 61 Revisited>를 통해 밥 딜런은 대중음악의 기치를 저항과 성찰로 돌려놓았다. 물론 이 공전의 히트곡은 당연히 연주하지 않지만 동명의 수록곡 ‘Highway 61 revisited’는 단골 레퍼토리로, 흥겨운 로큰롤 사운드가 원곡과 가장 가까운 곡이다.
무려 11분에 달하는 이 곡은 밥 딜런이 창작한 소설 같은 이야기와 성경 구절, T.S 엘리엇 등 다양한 요소들의 혼합되어 정확한 해석이 어려운 곡이다. 2009년 펑크 록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가 히어로 영화 < 와치맨 >의 사운드트랙으로 리메이크하여 인기를 끌기도 하였으나 그 의미의 모호함을 정확히 살리지는 못했다. 최근 영상을 보면 직접 건반을 연주하며 11분 보다는 짧은 플레잉 타임으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975년의 명반 < Blood On The Tracks >는 부인 사라 로운즈와의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 속 밥 딜런의 고뇌가 담겼다. 1970년대 최고의 앨범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는 이 앨범은 날 서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과 모호하면서도 애잔한 메시지로 가득한 명반이다. 정겨운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다르게 떠나간 연인을 그리며 과거 뮤즈였던 수즈 로톨로를 연상케 하는 ‘Simple twist of fate’의 라이브 버전은 어떨까. 노장은 느린 블루스 리듬 위에 어두웠던 과거의 기록을 읊어간다.
2018년 4월 취리히 라이브 영상을 보면 경쾌한 어쿠스틱 리듬은 간데없다. 셔플 블루스 리듬 위에 건반 소리만이 공명하며 탁한 밥 딜런의 목소리를 보좌할 뿐. 외로운 남녀의 이야기를 뒤죽박죽 섞어 놓은 원곡의 외로움이 세월의 무게를 머금고 더욱 무겁게 침잠한다. < Blood On The Tracks >의 톱 트랙이자, 아픔을 노래하는 향후 노래들을 개괄하는 인트로 격의 명곡이다.
만 58세, 1997년의 밥 딜런은 5년 만의 새 정규 앨범 < Time Out Of Mind >를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에 올려놓으며 건재를 증명했다. 거칠어졌으나 연륜이 더해진 목소리, 역사적 위상의 무거운 압박을 벗어던지는 자유로운 메시지의 명반이었다. 라이브 셋 리스트에 포함된 ‘Trying to get to heaven’은 이 앨범의 5번째 트랙으로, 1960년대 미국 포크 아티스트들을 오마주하는 헌사로 가득한 곡이다. 과거를 찬찬히 반추하는 쇳소리의 최근 라이브가 훨씬 짙은 감동을 줄 트랙이다.
‘네버 엔딩 투어’의 단골 커버 트랙. 재즈 스탠더드로 영생을 누리는 ‘Autumn leaves’를 부를 땐 천하의 밥 딜런도 읊조리는 대신 노래를 부른다. 본래 1945년 프랑스 작곡가 조지프 코스마가 작곡한 ‘Les feuilles mortes’에 싱어송라이터 조니 머서가 영어 가사를 붙여 들어온 이 곡은 쓸쓸한 분위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1955년 로저 윌리엄스의 피아노 연주 버전은 미국 차트 넘버 원을 차지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 이브 몽땅의 ‘고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