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외면했다면 빛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를 팝스타들.
지난 6월 20일은 유엔이 공표한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2000년 유엔총회와 아프리카 통일기구가 함께 의논하여 결의한 이 날은 6천만에 달하는 난민에 대해 관심을 환기하고 편견을 누그러뜨리는 의미를 지닌다.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한국에서도 난민 문제는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당장 13일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 청원이 44만 명의 청원 인원을 기록하며 뜨거운 논쟁을 부르는 중이다.
단 한 번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난민 문제이기에 정부와 지자체, 시민 사회의 다양한 의견 개진과 심사숙고를 거친 대안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이슬람 공포증과 외국인 혐오로 대표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적 시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인종차별적인 태도와 막연한 배타주의, 난민 지위에 대한 의심은 '이슬람 사원을 몰아내자', '총기 소유를 허용하자'는 과격한 반응으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난민 공포증'이 나날이 확산되어가는 현실 속에 이 뮤지션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팝스타로 부와 명성을 누리지만, 한 때는 전쟁과 사회 혼란 속에 고국을 떠나 내일이 없는 타국에서의 삶을 견뎌야 했던 이들이다. 사회가 외면했다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높은 위치에서 희망과 인류애를 대표하는, 난민 출신 아티스트들을 주목해보자.
1980년대를 수놓은 라틴 디바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그의 밴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과 함께 쿠바의 전통 콩가 리듬을 전 세계에 알렸다. 'Conga'와 '1,2,3'같은 메가 히트곡은 물론 1990년대 가수 생명이 위태로울법한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Coming out of dark'로 감동적인 컴백을 일궈내기도 했다. 7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수상한 40년 커리어의 라틴 팝의 대모(大母), 그 역시 난민의 후손이다.
글로리아의 아버지 호세 파하르도는 쿠바 공화국 시절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의 군인이었으나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마이애미로 이민을 왔다. 이후 CIA가 주도한 쿠바 전복 시도인 피그만 침공할 정도로 쿠바 공산 정권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인사였다. 어린 글로리아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은 1974년 14살 때였다. 'Havana'로 슈퍼스타가 된 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도 글로리아 에스테판과 마찬가지로 쿠바 이민자의 후손이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의 흑인 독립 투쟁을 거쳐 탄생하였으나 막대한 채무와 긴 독재 통치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국이 되었다. 이에 수많은 아이티인들이 살 길을 찾아 이웃한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이주했고, 대부분이 불법 체류로 난민 같은 지위 속에서 고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레진 사샤뉴와 힙합 그룹 푸지스(Fugees)의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이 바로 아이티 난민 출신이다.
21세기 가장 성공한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레진 사샤뉴는 보컬이자 리더인 윈 버틀러(Win Butler)와 부부 사이다. 아이티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프랑수아 듀발리에의 통치를 피해 캐나다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데뷔작 < Funeral > 수록곡 'Haiti'에서 독재 정권을 비판한 바 있다.
1995년 < The Score >로 힙합 씬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푸지스의 리더 와이클레프 장은 9살 때 뉴욕으로 이주했다. 같은 흑인임에도 아이티 출신이기에 멸시와 조롱을 견뎌야 했던 그는 로린 힐(Lauryn Hill), 프라스(Pras)와 함께 푸지스를 결성하여 진중한 사운드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유명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고향에도 지속적인 애정을 쏟았던 그는 2010년 아이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가수 미카는 영국 국적이나 고향은 중동의 레바논이다. 1975년부터 지속된 내전으로 황폐해져 가던 수도 베이루트에서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그들 가족은 미국 군함을 타고 사이프러스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떠나야 했다. 이후 9살이 되던 해 영국으로 이주하여 교육을 받았고 2007년 첫 앨범 < Life In Cartoon Motion >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이 세계적으로 7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림과 동시에 이듬해 브릿 어워즈(Brit Awards)에서 신인상의 영예를 안기며 스타가 됐다.
여리면서도 힘 있는 미성의 보컬과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으로 퀸(Queen)의 카리스마 리더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연상케 하는 미카는 사회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식 커밍아웃한 그는 LGBTQ 커뮤니티를 대표하여 목소리를 내고, UN 난민기구의 홍보대사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
현재 영미 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 모델 출신의 훤칠한 외모와 허스키한 보이스로 지난해 싱글 'New rules'를 대히트시킨 두아 리파(Dua Lipa)는 영국에서, 마틴 개릭스의 'In the name of love'로 목소리를 알린 비비 렉사(Bebe Rexha)는 컨트리 듀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Florida Georgia Line)과의 'Meant to be'로 미국에서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특히 두아 리파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펼쳐진 '2017-201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절정의 인기를 뽐낸 바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알바니아계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것.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알바니아는 긴 세월 폐쇄적인 공산 독재 정치를 겪었고 유고 내전 시기 코소보 전쟁으로 수많은 알바니아계 난민이 발생하는 등 역사적 아픔이 있다. 두아 리파와 비비 렉사 모두 코소보 난민의 후손으로, 두아 리파는 얼마 전 스위스와 세르비아전에서 독수리 세리머니로 코소보를 기린 제르단 샤치리와 그라니트 자카의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하기도 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리타 오라(Rita Ora) 역시 코소보 혈통이다.
본명 마탕기 아룰프라가삼(Matangi Arulpragasam), 예명 엠아이에이(M.I.A)는 2000년대의 중요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토속적 리듬과 혼란스러운 일렉트로닉, 전설적인 록 트랙을 혼합해 전례 없던 충격적인 사운드를 선사한 그는 얼마 전 < NME >와의 인터뷰를 통해 '21세기 팝 음악은 나와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다 했다'며 자신감을 뽐내기도 했다. 국내에는 2007년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 슬럼독 밀리어네어 >에 수록된 'Paper Planes', 2012년도 싱글 'Bad girls'로 유명하다.
엠아이에이의 독특하고 거침없는 스타일은 그의 핏줄과 고향, 어린 시절의 상흔으로부터 온다. 인도 옆 섬나라의 스리랑카 타밀족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스리랑카 내전 속에 인도를 거쳐 영국에 정착하는 난민의 삶을 살았다. 타밀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아홉 살에는 스리랑카 정부군이 초등학교를 폭파해버렸다. 때문에 엠아이에이의 음악 세계는 전쟁, 게릴라, 난민 문제를 적극 다루며 인권 투쟁과 소수민족 문제에도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이란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가 있다. 본명 세브다 알리자데(Sevda Alizadeh)의 세브달리자(Sevdaliza)가 그 주인공.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온 가족이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농구에 소질을 보여 잠시 네덜란드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뛰기도 했다. 2014년 데뷔 싱글 'Claer Air'를 발표하며 본격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독특한 분위기의 일렉트로 팝을 선보이는 세브달리자의 음악은 중동의 선율을 적극 포용한다. 1990년대 영국의 우울한 트립합과 FKA 트윅스의 비주얼 충격을 혼합한 정규 앨범 < ISON >(2017)은 매체의 호평을 받으며 신인 가수의 앞날을 기대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