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평탄한 전기 영화를 빛내는 퀸의 명곡들
노란 가죽 재킷과 왕관, 오만한 콧수염과 힘있게 치켜드는 오른팔, 관능적인 몸짓으로부터 폭발하는 천상의 목소리. 퀸은 1970~80년대 대중음악을 지배했고 팀의 프론트맨 프레디 머큐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와 보컬로 기억된다.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의 10만 관중, 전세계 15억 시청자 앞의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를 준비하는 영화 속 브라이언 이노가 ‘넌 이미 전설이야’라 말하는 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설의 생애를 스크린에 올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역사가 완전한 고전의 영역이라면 <아마데우스>처럼 흥미로운 창작을 끼워도 무방하지만, 20세기 중후반을 기록한 예술가들을 다룸에 있어선 성실한 고증이 진부할 수 있다. 존 레논, 밥 딜런, 쟈니 캐쉬의 유산은 현재 진행형으로 일상 속 존재할 뿐 아니라 시시콜콜한 일화와 언행, 라이브 등은 1980년대 케이블 채널 MTV부터 작금의 유튜브 영상까지 ‘살아있는 백과사전’으로 언제든 접할 수 있다. 대다수 아티스트와 그들의 유산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또한 새로운 해석을 어렵게 만든다.
토드 헤인즈는 <아임 낫 데어>로 밥 딜런이라는 거목을 서로 다른 여섯 페르소나로 나눠 제시했다. 쟈니 캐쉬의 열정과 사랑을 그린 <앙코르>는 호아킨 피닉스라는 불세출의 배우가 존재감을 보였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과 <존 레논 비긴즈 - 노웨어 보이>는 ‘대영제국의 계관시인’ 모리시와 비틀즈의 존 레논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 전 연약한 유년기에 주목했다. 전개와 결말이 이미 정해져있는 전기 영화는 인물의 어떤 시기에 초점을 둘 것인가, 어떤 스타일과 기법, 시선을 둘 것 인가에 따라 그 몰입의 정도가 달라진다.
프레디 머큐리의 위상이 워낙 높은 탓인지 <보헤미안 랩소디>의 제작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2010년부터 언급된 첫 계획은 3년이 다 되도록 첫 삽을 뜨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에 캐스팅된 사챠 바론 코엔이 하차했다. 2017년 TV 시리즈 <미스터 로봇>으로 에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라미 말렉이 빈자리를 채웠지만 감독 브라이언 싱어와 잦은 마찰을 빚어 제작사 폭스의 경고를 받는 지경에 이르더니, 급기야 촬영 마지막 2주를 남겨두고는 잦은 지각을 이유로 감독이 해고됐다.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10만 관중과 전 세계 15억 명 시청자 앞으로 향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아티스트의 긴장된 발걸음을 빌려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만 같다.
영화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 공항 수하물을 나르는 잔지바르 이민자의 아들 파로크 불사라가 프레디 머큐리로 거듭나는 과정은 슈퍼스타로의 당연한 행보로 잠시 스쳐 가는 정도에 그친다. ‘록 오페라’ 이전의 저돌적인 초기 작품과 초창기는 간략하게 요약되고, 중간마다 굵직한 이벤트를 통해 커리어 결정적 순간을 짚어주며 부침의 시기가 있고 삶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는 아티스트의 정체성, 사명감을 투영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제작 과정 (250번이 넘는 오버 더빙)과 제작사와의 충돌,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 꺼렸던 프레디의 사생활과 이로부터 불거진 멤버들 간의 갈등, 충격의 에이즈 선고까지 물 흐르듯 무던한 전개는 일련의 사건 나열에 가깝고 트리뷰트 다큐멘터리 정도에 그친다. 인물의 입체적인 면모가 일상의 연인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에 그치는 부분도 더욱 파고들 수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생략하였거나 깎여내진 모습이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장면에서는 마치 프레디의 동성애 정체성이 그를 부침하게 했다는 묘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대신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과 퀸의 위대한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미스터 로봇>에서의 우울한 천재 해커 라미 말렉은 슈퍼스타로의 자아와 연약하고 순수한 영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프레디를 섬세하게 묘사하다가도, 무대 위에서는 역사 속 그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이집트계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는 프레디 머큐리가 되기 위해 모형 앞니를 부착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히 모사했다.
극의 시작 ‘Somebody to love’부터 퀸의 커리어를 총망라하는 히트곡 퍼레이드는 앞서 언급한 상당수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스토리는 끊기더라도 음악이 끊기는 일은 없으며, 그 곡들이 모두에게 익숙한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와 ‘보헤미안 랩소디’, ‘Killer queen’부터 ‘Fat bottom girls’, ‘Keep yourself alive’ 같은 숨겨진 명곡들까지 22곡에 달하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음악 팬들에게는 이 영화가 추억의 히트 송을 극장에서 듣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그 백미는 <라이브 에이드> 실황 무대를 최소한의 편집으로 재현하는 마지막 20분이다. 10만 관중의 압도적인 열기와 그 위에서 ‘세계를 훔친’ 퀸의 퍼포먼스를 실황 라이브 필름 그대로 완벽히 옮겼다. 유년기 로큰롤의 마니아라면 수십 수백번 돌려 봤을, BBC 선정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정수이자 동시에 이 영화가 상당 부분 퀸의 명곡에 의존하고 있음을 은근히 고백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로큰롤, 퀸, 라미 말렉, 라이브 에이드. 프레디 머큐리를 기억하고 프레디 머큐리로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이런 간단한 장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이 시대의 아이콘과 위대한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겼을 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어떤 정의나 색다른 시각, 재평가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힘 없이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호평받는 것은 영화 자체의 힘보다 프레디의 위대한 존재감 덕이다. 집단의 의식 속 잠재하고 있는 불멸의 존재를 다시금 살아 숨 쉬게 만든 공은 인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