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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Nov 04. 2018

한국 ‘시월드’가 겹쳐가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미국 내 아시아 콘텐츠의 부흥 속 우리의 과제


내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크레이지 리치’ 시가(媤家)로부터 사랑을 지켜내려는 닉 영(헨리 골딩 분)과 레이첼(콘스탄트 추) 커플의 고군분투, 미국 관객들에게는 독특한 시각이지만 우리에겐 지상파 채널의 아침을 깨우는 일일연속극의 단골 소재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내 아들은 안돼’라는 고전적 한마디와 함께 ‘김치 싸닥션’을 날리는 무시무시한 시어머니와 철없고 악독한 형제자매들의 악담이 눈에 선하다. 익숙한 이유는 가까이 있는 덕이다.


다행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그 정도로 악독하진 않다. 시어머니 위의 시할머니까지 가세해 ‘우리 손주 앞길 막지 말라’는 대목에서는 눈앞이 아찔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 물을 뿌리며 차갑게 돈 봉투를 건네는 우리의 미디어 속 ‘시월드’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러나 고부갈등에 이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불륜과 전 애인의 견제와 질투가 더해지면서도 꿋꿋이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갈등을 헤쳐나가는 커플의 모습은 갈수록 우리에게 잠재된 ‘그 스토리’와 비슷해진다.

다만 익숙한 전개라고 그 외관까지 같은 건 아니다. 싱가폴 부호 중에서도 ‘크레이지 리치’한 닉 영의 가문은 기껏해야 한식 장인, 빌딩 몇 채로 위세를 부리는 한국 시월드를 기죽인다. 뉴욕 최연소 경제학 교수인 레이첼을 ‘뉴요커’라 조롱하는 영 가문은 한 도시와 문화권 전체를 아우르는 수준의 부를 영화 내내 과시한다. SNS 소식을 통해 가끔 언론의 주목을 받던 ‘중화권 재벌 2세’들의 휘황찬란한 일상이다.


이렇게 비교도 되지 않을 규모의 부귀영화 속에도 그들이 중시하는 공동체의 가치가 유사하다는 점이 재밌다. 닉의 어머니 엘레노어 (양자경 분), 집안의 큰 어르신 아마(리사 루 분)는 오랜 타지 생활이 아들에게 ‘소중한 가치’를 잊게 했다며 한탄한다. 그 가치란 가족의 소중함, 대를 이어 지켜야 할 공동체의 철학이다. 집안을 튼튼히 내조하고 가족의 분열을 막는 임무가 며느리들의 몫이기에, 뉴욕에서 자란 ‘중국계 미국인’ 레이첼은 영 집안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요즘 애들은 자기를 숙일 줄 몰라...’라는 한탄이 귀에 스치는 것 같다.

이런 장르의 종주국(?)인 우리는 영화를 ‘자랑스럽게’ 봐야 할까. 케빈 콴의 원작 소설은 미국 베스트셀러 톱 텐 아래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히트작이 됐다. <나우 유 씨 미2>, <지 아이 조> 등 몇 퍼센트 부족한 블록버스터에 만족하던 존 추 감독은 이 영화로 평단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우리가 ‘삼류’, ‘막장’이라 이름 붙인 여러 가지 것들이 영미권 문화에는 ‘새로움’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결혼을 앞둔 사위 / 며느리가 장인 /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 스토리가 없던 것은 아니다.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는 전직 CIA 요원 장인과 간호사 사위 간의 갈등을 그려내며 흥행한 바 있다. 그러나 서양의 가정 갈등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강조하는 ‘아시안의 가치’와는 다른 범주에 있다. 전자가 취향의 차이, 개인 선호의 차이를 원인으로 둔다면 후자는 갑과 을 같은 시어머니-며느리의 관계,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이다. 일상 속 흔히 마주치는 아시안들의 생소한 시각이 평범한 로맨스 드라마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성공은 여기저기서 영미 문화계의 ‘아시안 파워’를 언급하게 했다. 공부 벌레, 범죄 조직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걷어내고 당당히 주류 문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미국 내 아시안들은 물론, 높은 교육 수준과 네트워크망을 갖추고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 활용하는 중화권 / 동남아권 아시안들의 결집과 지지는 더 큰 성공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다만 이것이 ‘주류 문화 속 하나’같이 일상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낙관이다. 개인보다 가족의 행복을 소중히 하고, 남녀 간 사랑을 위해 시어머니와 담판을 지어야 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독특한 타 문화권의 어떤 것’ 이기에 지금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아시안은 서구권의 고정관념에선 탈피했으나 소프 오페라(Soap Opera)의 서구적 틀로 다듬어진 아시안이다.

폭스, 뉴라인시네마같은 메이저 영화사부터 HBO, ABC, CBS 등 미국 TV 채널까지 아시아콘텐츠를 제작하는 세상이다. BTS의 성공이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손쉬운 시장 공략을 가능케 만든 것처럼, 아시아 콘텐츠의 확장이 한국의 아침 드라마를 세계적 인기 시리즈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마냥 허황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답습하는 시각에 그칠지, 혹은 문화 다양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어떤 가치를 형성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막장’이라고 무시할 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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