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트림이 주목하는 우탱 클랜의 화려한 귀환
지난 11월 9일 미국 방송사 ABC의 아침 프로그램 ‘굿 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는 전설의 힙합 공동체를 현실로 소환했다. 1991년 뉴욕에서 결성된 힙합 크루 우탱 클랜(Wu-Tang Clan)은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데뷔 싱글 ‘Protect ya neck’을 열창했다. 작년까지도 현재 진행형의 활동을 이어온 우탱 클랜이지만 최근 메인스트림의 주목은 이례적이다.
소니 뮤직 산하 미디어 그룹 서티파이드(Certified)는 ‘굿 모닝 아메리카’ 방영일에 맞춰 우탱 클랜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포 더 칠드런 : 엔터 더 우탱의 25년(For The Children : 25 Years of Enter The Wu-Tang(36 Chambers)’를 공개했다. 온라인 TV 서비스 ‘훌루(Hulu)’는 우탱 클랜을 소재로 한 10부작 미니시리즈 ‘우탱 : 아메리칸 사가(Wu-Tang : An American Saga)’를 제작, 방영할 계획이다.
우탱 클랜은 힙합 역사상 가장 중요한 랩 그룹 중 하나다.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이지 이 등이 결성한 엔더블유에이(N.W.A)가 미 서부를 대표하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꽃을 피우고 갱스터 랩을 대세로 만들었다면, 뉴욕 출신의 우탱 클랜은 미 동부 이스트코스트 힙합을 주류 시장에 선명히 새기며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 출신의 이 10인조 그룹은 스스로를 중국 무협 소설 속 무공 집단 무당파(한자)로 자청했다. 팀의 정신적 지주인 프로듀서 르자(RZA)는 나른한 신디사이저 리프 위 갱스터의 거친 삶이 유행이던 당대 힙합 씬에 저항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태동기의 거칠고 건조한 올드 스쿨 사운드를 주축으로 삼았다. 즈자(GZA), 올 더티 바스터즈(Ol´ Dirty Bastards), 래퀀(Raekwon), 메서드 맨(Method Man) 등 한 시대를 풍미할 재림 고수들이 보금자리 ‘우 맨션’에서 랩 무공을 갈고닦으며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다.
이렇게 탄생한 역사적인 데뷔 앨범 <Enter The Wu-Tang(36 Chambers)>는 힙합 역사 상 최고의 앨범으로 손꼽힌다. 팬들과 평론지의 일관된 호평을 획득한 이 작품은 철학과 쿵푸,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적나라한 삶을 혼란스럽고도 거친 랩으로 강하게 쏟아부으며 향후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나아갈 길을 개척했다. 실제로 그들은 ‘우탱 킬러 비즈’라는 300명의 ‘우탱 패밀리’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강력한 음악 공동체를 형성한 바 있다.
기념비적인 첫 작품의 명성에는 못 미쳤지만 우탱 클랜과 그 멤버들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1990년대 힙합 씬에 족적을 남겼다. 메서드 맨의 <Tical>과 래퀀의 <Only Built 4 Cuban Linx>(1995), 즈자의 <Liquid Swords>(1995) 등 개별 활동으로도 명반이 쏟아졌고 1997년 그룹의 차기작 <Wu-Tang Forever>도 성공했다. 다만 이후 두 앨범이 부진하고 멤버들 간 마찰이 발생하면서 개별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2004년 원년 멤버 올 더티 바스타드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간간이 팀 활동도 병행하며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더 발표했지만 전성기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2018년 음악 시장이 이 전설의 그룹을 다시 조명하게 된 데는 한 래퍼의 소박한 프로젝트가 큰 공헌을 했다. 1990년생 래퍼 로직(Logic)은 올해 발매한 네 번째 정규 앨범 <YSIV>에서 우탱 클랜 멤버 전원을 초청한 ‘Wu-tang forever’로 올드 스쿨의 귀환을 알렸다. 지난해 미국 자살 방지 상담 센터 전화번호를 제목으로 삼은 ‘1-800-273-8255’로 스타덤에 오른 로직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우상과의 협업을 추진했고, 이에 우탱 멤버들이 흔쾌히 응하며 신구의 컬래버레이션이 이뤄졌다.
팀을 상징하는 1979년 영화 <광동십호여후오호> 속 대사와 함께 장엄한 붐뱁 스타일 비트가 흐르는 ‘Wu-tang forever’는 올드 힙합 팬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몽환적 이미지를 위해 일부러 발음을 흐리는 최근 힙합 대세 멈블 랩(Mumble Rap)을 비판하며 여전한 랩 무공을 뽐내는 무림 고수들의 실력 또한 근래 듣기 힘든 빽빽한 랩으로 형형히 빛난다. <YSIV>보다 더 주목받은 이 곡을 통해 우탱 클랜은 다시금 메이저 시장의 주목을 끌었고, 그 파급은 공중파 프로그램 출연까지 이어졌다.
우탱 클랜의 도태는 힙합 씬 유행의 변화와 더불어 희미해진 멤버들의 공동체 의식을 상징했다. 같은 맨션에서 동고동락하자던 도원결의는 몇 년도 가지 않아 사건 사고로 흐지부지됐고, 수백수천에 달하던 우탱 문하생들도 그 위세를 상당 부분 잃었다. 그러나 아홉 멤버들과 팀은 숱한 갈등과 풍파 속에도 ‘우탱 포에버’를 외치며 끝까지 와해되지 않았다.
데뷔 25주년을 맞아 다시금 단결된 의지를 다지는 우탱 클랜. 인기 절정의 현 힙합 씬에 온고지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랩 고수들에게서 신비로운 기의 흐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