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리가 창조해낸 캐릭터에 대한 뮤지션의 헌사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마블의 역사, 스탠 리(Stan Lee)가 향년 95세로 운명했다. 1939년부터 마블 코믹스에 입사해 스파이더맨, 헐크, 엑스맨, 판타스틱 포 등 저명한 슈퍼 히어로들을 만들어낸 그는 마블 편집장을 거쳐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명예 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2000대 마블 만화책 속 영웅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살아나 세계를 휘어잡으면서 스탠 리의 명성도 더욱 높아졌고, 2011년에는 할리우드가 그 공을 인정하여 2428번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그를 추모한다.
스탠 리가 창작한 캐릭터들과 세계관은 만화와 영화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행사했다. 음악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비틀즈의 멤버부터 뉴욕 펑크 록의 전설은 물론 대중음악의 저명한 작곡가들까지 마블 코믹스를 사랑했다. 스탠 리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노래들로 ‘스탠 더 맨’의 마지막을 기려본다.
평소에는 점잖은 과학자지만, 화가 나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대한 녹색 괴물로 변하고 마는 캐릭터 <헐크>. 1969년 발표된 ‘Nobody loves the hulk’는 마블 코믹스 캐릭터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중음악 노래로 꼽힌다. ‘꼽힌다’는 애매한 표현을 쓴 이유는, 이 곡을 녹음한 밴드 더 트레이츠(The Traits)가 이 한 곡만을 남기고 사라진, 틴에이지 밴드인 탓이다.
1960년대 후반 더 킹크스(Kinks), 퀘스천 마크 앤 더 미스테리언스(? And the Mysterians) 등으로 인기 정점에 오른 개러지 록은 간결한 로큰롤 사운드에 거친 로파이(Lo-Fi) 질감으로 대표된다. 트레이츠의 헐크 주제가 역시 빠른 템포에 저돌적인 에너지가 빛나는, 개러지 록의 특징을 잘 들려준다.
특수한 신체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돌연변이들의 이야기 <엑스맨(X-Man)>도 스탠 리의 작품이다. 비틀즈 해체 이후 본인의 밴드 윙스(Wings)를 이끌고 있던 1970년대의 폴 매카트니가 이 시리즈의 광팬이었다. 그 열정은 폴 매카트니와 윙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Venus And Mars>(1975)에 캐릭터를 주제로 한 곡을 수록하기에 이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5번 ‘매그니토와 티타늄 맨(Magneto and Titanium Man)’이다.
엑스맨 속 매그니토는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의 소유자로 유명하지만 티타늄 맨과 가사 속 등장하는 ‘크림슨 다이나모’는 생소하다. 이들은 ‘아이언맨’ 코믹스에 등장하는 악역으로, 아이언맨의 바디 슈트에 대항해 구소련에서 개발한 바디 슈트를 입고 싸우는 이들을 지칭한다. 이야기꾼 폴 매카트니는 이 세 캐릭터를 엮어 엘튼 존 스타일의 가벼운 로큰롤로 엮어냈다.
매끈한 몸체에 은색 서핑 보드를 탄 실버 서퍼는 <판타스틱 포> 히어로의 적이다. 1966년 스탠 리가 마블 코믹스의 또 하나의 전설 잭 커비와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다. 1956년생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Joe Sattriani)는 1987년 발매한 <Surfing With The Ailen> 앨범 커버에 실버 서퍼의 활공 모습을 삽입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타 고수 새트리아니는 스티브 바이, 메탈리카의 커크 해밋, 앤디 티몬스 등 시대를 풍미한 기타리스트들의 스승(Guru)이다. 재즈와 록을 오가며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과 톤을 들려주는 그의 별명은 ‘외계인’, 외계에서 날아온 실버 서퍼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겹쳐진다. 연주곡만으로 채워진 <Surfing With The Ailen>은 ‘기타 신’ 조 새트리아니를 대표하는 명반이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에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분)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에고(Ego)라는 이 남성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을 환영하며 그들을 자신의 행성으로 피난시켜주는데, 사실 그는 행성의 주인이 아니라 행성 그 자체, 살아있는 행성(리빙 플래닛)이다. 1966년 <토르>시리즈를 통해 첫선을 보였으니 꽤 오래된 캐릭터다.
미국 록 밴드 몬스터 마그넷은 이 캐릭터에 영감을 받아 ‘Ego, The living planet’이라는 제목의 곡을 헌사하기에 이른다. 팀의 리더 데이브 윈도프는 유명한 1960년대 코믹스 마니아로, 이 곡을 통해 마블 코믹스의 팬들과 소통하고자 했으나 정작 공연장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어 서운했다는 심경을 인터뷰로 털어놓은 바 있다.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뉴욕 빌딩 숲 사이로 거미줄을 뿜어내는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을 생각하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멜로디다. 뉴욕 펑크 록의 전설 라몬스는 1967년 처음 등장한 이 멜로디를 1995년 저돌적인 로큰롤로 커버하며 록 팬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이 곡은 라몬스의 14번째 정규 앨범 <¡Adios Amigos!>에 수록됐다.
언급한 대로 이 곡의 원작자는 라몬스가 아니다. ‘스파이더맨 테마’의 주인공 중 한 명 폴 프랜시스 웹스터는 저명한 영화음악 작사가로, 아카데미 어워즈에 16차례나 후보로 올랐으며 3차례 수상한 경력의 소유자다. 작곡가 로버트 해리스는 폴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1962년 영화 <롤리타>의 테마에 크레딧이 올라와 있다. 2007년 영화 <스파이더맨3>에는 캐나다 출신 유명 재즈 보컬 마이클 부블레가 이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